국제
2019년 05월 09일 17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09일 17시 52분 KST

영국 메이 총리 : '나도 리버풀처럼 유럽에서 대역전승을 거두겠다'

영국 의회에서는 종종 축구가 대화 소재로 등장하곤 한다.

Handout . / Reuters

영국 의회에서 총리와 야당 대표가 때아닌 ‘축구 논쟁’을 벌였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이견과 갈등, 그 모든 혼란 속에서 피어난 매우 영국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발단은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8일(현지시각) 총리와 의회의 정례 질의응답(Prime Minister’s Question) 도중 느닷없이 축구 얘기를 꺼내면서 시작됐다. 

이날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된 리버풀(Liverpool FC)이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우주 최강’으로 불리는 FC 바르셀로나(스페인)를 4대 0으로 꺾는 역사에 남을, 믿을 수 없는 대역전극을 선보이며 결승 진출을 확정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의장님. 의회가 저와 함께 위대한 축구팀에게 축하를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빈 대표가 운을 뗐다.

″맨체스터 시티가 여자축구 FA컵 우승을 거뒀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뒤, 아스날 팬으로 유명한 그가 말했다. (아스날 경기장은 코빈의 지역구에 있다.) 

의원들의 야유(?)와 웃음이 쏟아졌다. 

 

물론 비록 라이벌 팀이라 하더라도 코빈 대표가 리버풀의 놀라운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어젯밤 리버풀의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면서, 어쩌면 총리께서는 어떻게 하면 유럽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리버풀 감독) 위르겐 클롭에게 약간의 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메이 총리가 유럽연합(EU)과의 협상 끝에 가져온 브렉시트 합의안을 썩 좋아하지 않는 코빈 대표가 슬쩍 태클을 시도했다.

메이 총리는 이 난데없는 ‘공격‘에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역습’을 벌였다.

요약하면, ‘리버풀처럼 모든 의원들이 힘을 모으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도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존경하는 의원님께 우선 한 가지만 먼저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오히려 어젯밤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리버풀이 승리를 거둔 걸 보면,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끝났어, 유럽 상대팀이 이겼다고. 시간도 얼마 없고 이제 패배를 인정해야 할 때야’라고 말했지만, 모두가 단합한다면 우리가 여전히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한 트위터 이용자는 총리가 강조한 ‘모두가 단합’의 보다 정확한 의미에 주목했다. 바르셀로나 경기에 선발·교체로 출전했던 리버풀 선수 및 감독의 명단과 그 다양한 국적을 나열한 것이다. 여기에는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EU 회원국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국 의회에서는 종종 축구가 대화의 소재로 등장한다. 또 하나의 아스날 팬으로 유명한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농담 삼아 라이벌 팀 지역구 의원들의 신경을 긁거나 은근히 자신의 팀을 자랑하곤 했다.

″토트넘 팬으로서, 1987년 FA컵 (결승전) 패배로 여전히 고통스러워 하는 제가 (상대팀이었던) 코벤트리에 대해 긍정적인 무언가를 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2015년, 토트넘 팬으로 잘 알려진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부 장관(보수당 의원)이 의회에서 코벤트리 의원과 질의응답 도중 농담을 섞어가며 꺼낸 말이다.

그러자 버커우 의장은 (굳이) 끼어들어 이렇게 말했다.

″아스날 팬인 저로서는, 단 한 순간이라도 토트넘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기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편 토트넘이 8일 아약스(네덜란드)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확정하자 코빈 대표는 (이례적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라이벌인) 아스날 팬이라 하더라도 지난 이틀 밤에 걸쳐 리버풀과 토트넘이 펼친 믿기 힘든 퍼포먼스를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약체로 평가됐던 두 팀이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둬) 잉글랜드 팀끼리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마련됐습니다. 결승에 진출한 두 팀 모두에게 축하드리고 행운을 빕니다. 

그러자 토트넘을 지역구로 둔 노동당 데이비드 라미 의원은 코빈 대표에게 특별한 부탁을 남겼다.

대표님, 북런던의 연대 정신으로 부탁드립니다만 테레사 메이 총리가 결승전이 치러지는 날에 또 한 번의 표결을 소집하지 않도록 해주시겠습니까. (결승전 장소인) 마드리드에 갈 거라서요. 감사.

축구의 나라 영국의 그저 평범한 어느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