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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경험한 출산율 감소의 나비효과

핀란드 이모저모

  • 홍지현
  • 입력 2019.05.08 17:18
  • 수정 2019.05.08 17:51

핀란드에도 봄이 오긴 오나보다. 시시때때로 다시 추워지긴 하지만, 햇살의 따스함이 넘실거리는 날이 조금씩 늘고 있다. 햇살이 눈부신 날에는 왠지 나가서 햇빛을 쬐야 할 것 같아 엉덩이가 들썩인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결국 햇살을 즐기지 못하는 게 부지기수인데 그럴 때는 너무너무 억울하다.

겨우내 부쩍 자란 딸은 발도 자라 가을에 신던 신발이 작다. 봄에 신을 신발이 없다. 미루고 미루다 부활절 주말에 신발을 사러 딸과 함께 시내로 나갔다. 아이 신발이 있을 법한 몇몇 상점을 가봤다. 계절을 앞서가는 상점에는 벌써 여름 신발이 대부분의 선반을 채웠다. 봄에 신을만한 가벼운 운동화가 딱히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신발 전문점에서 마지못해 고어텍스 소재의 봄 신발을 샀다. 봄에는 방수 기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서 굳이 비싼 방수 기능의 신발을 살 필요가 없는데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딸아이 신발 사는 게 왜 그리 힘들까?

첫째인 아들이 어렸을 때는 다른 상점에는 가지도 않고 백화점에서 신발을 샀는데, 딸 신발은 왜 백화점에서 못 샀을까? 백화점의 아이들 신발 코너가 상당히 작아져서 선택의 폭이 확 줄었다. 백화점의 아기 용품 코너도 크기가 줄었다. 장난감 코너는 오히려 커졌는데, 백화점이 직접 운영하지 않고 에스토니아의 장난감 판매 회사가 들어와 있다. 다른 백화점에선 아이 용품을 파는 매장 전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작년 말에 핀란드는 물론이고 북유럽 전역에서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던 덴마크 회사가 파산해서 가끔 장난감을 사던 장난감 가게가 없어졌다. 그러고 보니 시내의 한 쇼핑센터의 아이 용품 상점도 몇 개 없어졌다.

헬싱키에서 아이 용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조금씩 사라지거나 규모를 줄이고 있다. 선택의 폭이 줄어, 원하는 신발이나 물건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자신이 자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귀농해서 시골에서 소 키우는 친구가 있다. 근처에 상점 하나 없는 농장과 조용한 자연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친구는 아이들 물건을 주로 인터넷에서 구매한다. 자연과 가까워지면서 얻게 된 불편이다. 그런데 자연과 가까워지지도 않는데, 출산율 감소로 아이들 생필품을 파는 상점이 점차 사라져서, 핀란드에서 제일 큰 도시인 헬싱키에서조차도 아이들 물건을 인터넷에서만 구입해야 할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겠다.

ⓒpexels

아이 신발 구매와 출산율의 이상한 상관관계, 그리고...

핀란드의 출산율(2018년 기준, 1.4명)이 8년 연속 감소하고 있어서 핀란드의 성장 잠재력과 복지 혜택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아기를 적게 낳아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대상으로 한 상점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딸의 신발을 사느라 애를 먹고 나서야, 아이를 생일 파티에 초대한 아이의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을 사느라 고생하고 나서야, 출산율이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어린아이가 없는 남들보다 일찍 출산율 감소의 영향을 체감했다.

다른 이들은 언제 어떻게 출산율 감소의 영향을 체험하게 될까? 핀란드의 경우 젊은 층의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는 지방의 출산병원이 출산율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듯하다. 1975년, 핀란드 전역에 62개였던 출산병원이 현재 23개로 줄었다. 출산병원으로 가다가 태어난 아기의 수가 지난 20년간 두배나 늘었는데,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인다. 일부 지역에서는 조산사를 구급차의 대원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헬싱키에서 230 km 떨어진 핀란드 남부에 위치한 도시 Mikkeli(믹께리)의 출산병원에서는 2018년에 전년보다 90명이 줄어든 732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2015년에 제정된 사회보건부의 규정에 따르면 특별한 허가 없이 출산 병동이 운영이 되려면 1년에 1000명이 출생해야 한다. Mikkeli의 출산병원은 벌써 두 번이나 예외 신청을 했지만, 다시 특별 허가를 받지 못하면 내년에 문을 닫게 된다. 러시아에 근접해 있는 출산병원은 러시아 산모의 출산 (일종의 의료 관광)에 기대어 1년에 1000명 출산을 채워 병원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출산병원이 멀리 떨어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산모나 폐업 위기의 출산병원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아이 용품 구매의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출산율 감소의 영향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이 낳기 힘들어서 부모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출산율 감소가 이대로 지속되다 보면,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우려대로 납세자의 감소로 고령화 사회를 부양할 수 없게 되어 사회가 무너지는 것이다.

ⓒpexels

출산율, 모두의 문제, 젊은 층이 삶의 여유를 느껴야

아이가 둘이나 있기에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출산율은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문제로 치부해버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반성한다. 사회 구성요소 하나가 균형을 잃으면, 그 영향이 사회의 다른 분야까지 서서히 퍼지고 언젠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출산율 감소도 가임 연령 여성이 단순히 출산을 기피해서 생긴 일이 결코 아니다. 출산율 감소가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듯이, 다른 사회 문제들이 직간접적으로 출산율 감소를 유도했다.

이상하게도 한국 사회의 일부는 출산 문제를 가임 연령 여성이나 젊은 층 탓으로만 한정하려는 성향이 있는 듯하다. 출산율 감소는 전 세계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모든 선진국이 당면한 문제이다. 사회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여러 가지 문제가 원인인데, 출산율 증가를 위해 가임 연령의 여성들에게만 압박을 가하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절대 아니다. 더욱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다양한 노력이 요구되기에 궁극에는 개인의 선택 문제로 그 선택이 존중되어야 한다.

헬싱키 대학의 가족정책 및 빈곤 연구원에 의하면, 출산율은 젊은 층의 소득 및 고용안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핀란드의 경제위기로 인해 젊은 층의 고용이 불안정해져서 아이 낳기를 꺼려한다는 해석이다. 올 초 핀란드 국영방송 Yle의 분석에 의하면 복지국가인 핀란드지만 여전히 아이를 키우는 것이 상당한 금전적 부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육아는 여성의 사회생활 단절을 의미하기도 해서 고학력 여성의 출산 기피를 부추기기도 한다. 핀란드의 육아 관련 복지 혜택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누릴 수 있지만 사실상 여성이 그 혜택의 대부분을 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실상 육아 휴직 동안의 소득 감소는 물론 복귀 후의 공백으로 인한 손해 및 은퇴 후의 연금 감소로 이어져 한시적인 손해가 아닌 장기적 손해를 초래한다.

헬싱키 대학의 가족정책 및 빈곤 연구원은 출산율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 전반적인 육아비 지원과 여성의 육아로 인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가족정책의 개선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어린이집의 보육비를 줄이고, 여성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룬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아빠의 육아 참여를 더욱 독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이를 양육하기 좋은 나라로 손에 꼽히는 핀란드가 엄마들에게 여전히 불공평해서 출산율 감소를 부추기고 있다는 현실을 보면 한국의 최악 출산율은 어쩌면 자명한 일이 아닐까 싶다.

글을 마치며...

아이러니하게도 과도한 인구 증가를 걱정하던 인류가 출산율 감소를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꼽고 있다. 큰 그림으로는 인구과잉을 조절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저출산 현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도한 인구 변화는 기존 사회의 틀을 크게 흔들어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정 집단을 탓하기보다는 그 집단을 그렇게 만든 사회 구조에 주목하여 생산적인 해결책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인터넷 쇼핑만으로 아이 용품을 구매하게 되는 상황을 넘어, 인터넷에서 아이를 가상으로 키우는 상황까지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을 잠깐 해본다.

* 북유럽연구소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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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출산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