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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08일 14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08일 14시 07분 KST

세계에서 요즘 '핫'하다는 현대통화이론(MMT)이란 무엇인가

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정치인, 투자 대가들까지 논쟁에 뛰어들었다.

한겨레

국제 경제학계와 미국 정치권에서 벌어진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MMT)에 대한 논쟁이 투자 대가들 사이로 번지며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설립자 레이 달리오는 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이 새로운 통화정책으로 현대통화이론을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그가 이런 언급을 한 이유는 미국 경제가 또다시 위기에 빠지면 현대통화이론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달리오는 미국도 일본과 유럽의 길을 따라 금리가 0%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게 되면 위기 때 금리를 더 낮추기 어렵고, 양적완화는 사들일 채권이 부족해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같은 기존 통화정책이 ‘낙수효과’를 유발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교육, 인프라, 연구·개발 같은 좋은 투자를 유발하지는 못하고 자산 가격을 높여 고액자산가만 도왔다”는 비판이다. 이런 이유로 다음 경기 침체기에는 통화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본 그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연결된 현대통화이론을 대안으로 꼽았다. 이 이론은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없다면, 정부가 재정적자 규모에 얽매이지 말고 필요한 만큼 통화를 발행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반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는 지난 3월 “재정적자는 금리를 끌어올려 지속 불가능한 상태를 만들 것”이라며 이 이론을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워런 버핏칼 아이칸은 인플레이션 위험을 들며 손사래를 쳤다.

한겨레

 

현대통화이론은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고 있지만, 케인스의 화폐이론에 기반을 둘만큼 ‘족보’가 있다. 2020년 미국 대선 출마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의 정책 자문을 맡은 스테파니 켈튼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교수, <균형재정론은 틀렸다>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된 현대통화이론 입문서의 저자 랜덜 레이 미주리대(캔자스시티) 교수, 제임스 갤브레이스 텍사스대 교수 등이 주창하고 있다.

이 이론이 과감한 재정적자를 불사하는 것은 정부 지출이 늘어나야 민간의 현금 보유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외 금융거래를 0으로 가정하면, 정부 지출이 세입보다 커서 생겨난 재정적자(국가부채)의 규모는 민간의 금융자산 총액과 같아진다. 나의 예금이 은행의 부채가 되는 원리와 같다. 기업과 가계가 늘어난 현금을 투자하거나 소비하면 경제가 활기를 띤다. 거꾸로 흑자 예산을 짜면 정부 금고에 현금이 쌓이는 만큼 민간은 부채를 떠안는다. 정부 지출은 세수를 넘어설 수 없다는 ‘균형예산’을 이 이론이 비판하는 이유다.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정부 차입, 즉 적자국채 발행이 늘어나도 괜찮다고 말한다. 정부는 화폐를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어서 자국통화 표시 채무의 과다로 파산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필요하다면 적자재정을 편성해 완전고용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비자발적 실업의 존재는 재정지출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겨레

 

이에 대해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지금 미국 경제처럼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상황에서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 재정적자를 확대하면 급격한 물가상승을 부를 것이라고 비판한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기축통화 국가에서는 재정적자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반면 현대통화이론의 지지자들은 놀리는 설비와 실업이 있을 때 재정지출로 이를 가동해 생산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생산능력 이상의 통화량으로 물가상승 움직임이 보일 경우 세금을 올려 화폐를 거둬들이면 안정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일본 사례를 자주 거론한다. 켈튼 교수는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미국의 3배를 넘는데도 물가 급등이나 채무불이행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통화이론을 20년 넘게 실천해 온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세를 불렸다. 이들은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지출하고 중앙은행이 금융자산을 사들이는 양적완화를 통해 엄청난 돈을 풀었지만, 과연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느냐고 반문한다. 화폐발행을 통해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과 양적완화가 닮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달리오는 “적어도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헬리콥터 머니’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짚었다.

지금은 되레 물가가 오르지 않아 걱정하고 있다. 미국은 1분기 깜짝 성장률에도 연준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근거로 삼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물가는 목표치인 2%를 계속 밑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현대통화이론을 ‘사회주의 악몽’이라고 공격했지만 실제로는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실업률 하락에도 재정지출을 늘려왔다. 올해 들어서는 연준에 통화완화를 압박하고 있다. 그는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1%포인트 정도의 금리 인하와 약간의 양적완화를 한다면, 놀랍도록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로켓처럼 올라갈 잠재력이 있다”고 트윗을 날렸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현대통화이론은 본격적인 조명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의 샛별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 의원은 그린뉴딜 정책의 재원 방안으로 이 이론을 앞세웠다. 그린뉴딜은 10년 내 온실가스 배출 제로, 모든 전력 수요를 재생에너지로 충당, 녹색 일자리 1000만개 창출 등을 담았다. 비용은 10년간 무려 51조~93조달러로 추정된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 이 이론에 근거해 정책공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