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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08일 14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08일 14시 45분 KST

‘살찐 고양이’,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최고임금 제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기대한다.

numismarty via Getty Images

‘살찐 고양이’란 부유한 경제 권력층의 상징이다. 이들이 받는 고액 보수는 최저임금과는 달리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대한항공 사태를 계기로 재벌총수의 퇴직금이 수백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소간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 3월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연임 안이 부결되었을 때, 조 회장이 대한항공을 퇴직하면 700억 원이 넘는 퇴직금을 받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 조양호 회장은 지난해만 해도 대한항공과 한진칼 등 그룹 내 5개 계열사에서 107억 원의 급여와 상여금을 받았다.

기업 고위직의 엄청난 고액 보수

기업 내에서 상위직으로 갈수록 보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예는 흔하다.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게시된 자료를 보면 최고경영자 연봉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8년 연봉 최고액 직위는 엔씨소프트 대표(김택진)로 138억 원, 임직원 평균의 약 155배라고 한다. 이 평균에는 임원들의 고액 연봉도 포함되기 때문에, 임원을 제외한 일반 직원들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최저임금이든 최고임금이든 임금 규제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다.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면 경제 효율에 지장을 준다고 한다. ‘규제의 역설’이라는 경제 용어도 있다. 경제적 약자를 위해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더라도 일자리를 줄이거나 영세 자영업자의 인건비 지출을 증가시키는 등 부작용 때문에 오히려 서민을 괴롭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필자도 ‘원론적으로’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교과서에서 전제하는 것처럼 현실시장에서도 참가자들이 대등한 지위와 교섭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염려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정부는 임금에 직접 간섭하기에 앞서 공정한 시장 질서를 조성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현실시장이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운동경기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된다. 당연히 공격 방향을 공평하게 교체해주거나 그게 안 되면 팀의 유불리에 따라 점수를 가감해야만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현실시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최고임금 제한해야

기업 고위 간부의 초고액 연봉을 평평한 운동장에서 치른 공정한 경기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최고경영자와 그를 떠받치는 임원들이 기업 내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보수와 퇴직금은 결국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즉 시장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기업 전체의 생산이 일정할 경우, 고위직의 보수가 너무 많으면 그만큼 중하위직의 보수는 부당하게 줄어들게 된다.

제대로 된 시장경제에서는 각자의 소득을 그 생산성에 비례하여 지급하게 된다. 조직 내 개인 간의 생산성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참고로, 2019년 공무원 월급은 최고액(1급 23호봉, 6,798,400원)은 최저액(9급 1호봉 1,592,400원)의 4.27배이다. 국립대 교원 월급은 최고액(33호봉 5,565,900원)이 최저액(1호봉 1,988,700원)의 2.80배이다. 협동조합의 모범 사례로 흔히 거론되는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최저임금 대비 최고임금의 배율을 1 대 6 이하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경제 권력, 정경유착으로 이익을 누리는 정치권, 현실시장과 교과서 시장 간의 괴리에 눈을 감는 학계 등에서 다양한 구실을 대면서 최고임금 제한에 반대할 것이다. 한 예로, 스위스는 2013년 3월 기업 경영진의 연봉을 최저 연봉자의 12배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안을 11월 국민투표에 붙이기까지 했지만 아쉽게도 부결되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44%였으나 최종 결과는 34%로 내려갔다. 스위스 재계가 엄청난 광고 공세를 퍼부으면서 ”이런 식으로 경영진의 임금을 제한하면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 다른 나라로 떠나갈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임금 격차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저임금 인상만이 아니라 최고임금도 제한하여 임금 격차를 줄이려는 긍정적인 움직임이 최근에 많아지고 있다. 2016년 6월 심상정 의원(당시 정의당 상임대표)은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각각 30배와 10배로 제한하는 내용의 ‘살찐 고양이 법’(정식 명칭은 최고임금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부산시의회도 지난 3월 29일, 부산시의 공사·공단과 출자·출연기관의 대표이사 연봉이 법정최저임금 환산액의 7배를, 대표이사를 뺀 이사·감사 등의 연봉은 6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조례를 의결하였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에서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임원은 자치단체장이 임명하므로 공공기관 임원의 보수 결정권도 자치단체장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다. 행정안전부는 현행법에 따라 해석했다지만 그 바닥에는 현실시장에 대한 무시 내지 무지가 깔려있지 않을까?

외국의 움직임도 있다. 앞에서 소개한 스위스 사례 외에도, 2012년 프랑스는 공기업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20배를 넘을 수 없도록 법으로 못 박았다. 2015년 유럽연합은 은행 임원의 보너스가 급여의 2배를 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2017년 영국 여론조사에서는 ‘사내 최저임금의 20배를 넘는 임원 급여에 상한선을 두자’는 의견에 57%가 찬성이었고 반대는 30% 정도였다고 한다.

시장경제를 방임경제라고 오해하면 약육강식의 정글경제가 되어 사회정의도 경제효율도 무너지고 만다. 진정한 시장경제를 위해 최고임금 제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대구지역 인터넷 매체 ‘평화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