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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도 빅뱅도 이제 다시는 5명이 될 수 없어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그들은 다시는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 김현유
  • 입력 2019.05.03 15:00
  • 수정 2019.05.03 17:26
ⓒ뉴스1

10년쯤 전, 고등학교 때 이야기다. 쎄씨봉 멤버들이 재결합을 했고, 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JYJ 멤버들이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고, 동방신기가 속칭 이방신기와 삼방신기로 분리된 지 몇 달쯤 됐을 때였던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추억에 취한 눈빛으로 쎄씨봉의 재결합 무대를 지켜보는 걸 보면서, 나는 동방신기 생각을 했다. 언젠가 몇십 년이 흐른 뒤엔 동방신기도 저렇게 재결합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도 자식들과 함께 텔레비전으로 재결합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12시 34분‘이나 ‘넌 나의 노래’ 등 그들의 명곡을 눈물과 함께 흥얼거리며 ”엄마 시대를 풍미한 가수였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동방신기만큼 2000년대 중후반을 물들였던 그룹으로는 빅뱅이 있다. 색깔이 상당히 달랐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재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여성들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학창시절 한 번이라도 동방신기를 좋아했거나 한 번이라도 빅뱅을 좋아했거나 혹은 둘 다 좋아했거나. 여기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자신한다.

나는 동방신기 쪽이었다. 뭐 어마어마하게 소문난 카시오페아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시오페아가 아니었더라도, 만화책을 찢고 나온 비주얼을 가지고서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 싶다”던 다섯 소년의 데뷔무대를 보고 심장이 내려앉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다. 책상에 붙은 시간표에는 컬러 프린트로 뽑은 오빠들의 얼굴이 있었고, 볼펜에 덕지덕지 붙인 볼펜띠에는 ‘♥유천 님의 마누라  XX  꺼예요!’ 라는 글귀가 귀여운 폰트로 쓰여 있었다. 2004년을 뒤흔든 명곡 ‘마이 리틀 프린세스’ 간주 중에 나오는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니? 늘 내 곁에 있어줘”라는 믹키오빠의 목소리를 아이리버 MP3의 구간반복 기능을 써서 연달아 들었고, 오빠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다쳤을 땐 같이 울었다. 나만? 아니. 우리 모두 다.

이후 ‘트라이앵글’ 같은 특유의 사회비판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은 조금 비주얼 쇼크이기도 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미로틱‘을 부르며 소년이 아닌 남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모든 소녀들의 심장을 흔들었다. 정말 ‘모두’ 다. 팬카페 회원은 80만을 돌파했다. 그 시절엔 동방신기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파멸 직전이 가장 아름다웠던 걸까? ‘미로틱’을 내놓고 연말 시상식에서 등짝신기로 레전드를 찍었던 그들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동방신기’와 ‘JYJ’로 찢어졌다. 소녀팬들은 슬픔에 잠겼다. 그게 동방신기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비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그때까지만 해도 몇십 년 뒤 그들이 한 무대에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있었다.

그때까진 이 짤을 쓸 날이 언젠가는 올 줄 알았단 말이지

당시 소녀팬들의 필통에는 5-1=0이라는 문구가 많이 쓰여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그들 사이 오해와 갈등이 해결될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절대로 그 다섯명은 한 무대에 설 수 없는 사람들이 됐다. 우리들 학창시절 추억 한 조각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우데쵸(우유에 데친 유쵸니)‘에서 박유천으로, 그리고 ‘변기유천’에서 끝내 ‘마약유천’이 된 그의 마지막 사진을 보고 있자니 세상일 정말 모를 일이다 싶다. 슬프다가도, 그가 그렇게 슬픈 눈으로 하늘을 바라본 이유가 5-1=0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저지른 범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또 얼탱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고 그렇다.

ⓒ뉴스1

이런 동방신기 팬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줄 것은 바로 빅뱅 팬들일 것같다. 며칠 전 소문난 VIP(빅뱅 팬클럽)였던 내 친구 S는 빅뱅 앨범을 전부 버렸다. 그 날 우리는 각각 박유천과 승리에 대한 집단적 독백을 나누었지만 마음만은 같았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그들은 다시는 완전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 몇십 년이 흐른 뒤 ‘토토가’ 같은 프로젝트가 시행되더라도 절대, ‘Love in the Ice’를 다섯  명이 함께 부르는 그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이 다시 뭉치기만 한다면 나는기꺼이 10대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빨간 풍선을 흔들며 그들을 응원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예 그럴 수가 없어졌다.

사실 동방신기는 다섯 명으로 활동한 기간보다 두 명이 활동한 기간이 더 길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인지했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다섯 명이었던 동방신기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이제는 진짜 다시는 다섯 명의 동방신기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려고, 내 나름 그들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다섯 명이었던 그 시절의 동방신기 무대 영상을 계속 보면서 말이다. 2004년 2월, ‘뮤직캠프’를 통해 데뷔했던 그 날부터 혈기왕성한 여고생들의 목에서 익룡 소리를 나게 했던 등짝신기까지. 지금은 범죄자이지만 그때는 열정이 넘치던 박유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하기도 하고, 이해도 안 가고 그런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가 불렀듯, 슬픔의 시간도 노래처럼 꼭 끝이 있는걸. 보다 보면 나도 지쳐서 마음 정리가 되겠지... 어쨌든 정말 이 말만은 하고 싶다. 대체, 왜(Keep Your Head Down) 그랬어 정말...?

*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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