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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사나의 '헤이세이' 인스타그램에 대한 비난과 그에 대한 반박들

"헤이세이 고마워. 레이와 잘 부탁해."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 출신 멤버 사나가 아키히토 일왕의 퇴임을 두고 “(아키히토 시대의 연호인) 헤이세이가 끝난다는 건 쓸쓸하다”고 발언한 뒤 일부 누리꾼들이 “전범국가 출신이 한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거센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이 과잉된 민족주의 정서에 기반한 비약 혹은 외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로 해석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고 일본 연호가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바뀐 지난달 30일, 사나는 트와이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연호가 바뀐 것에 대한 심경을 담은 짤막한 글을 일본어로 올렸다. 사나는 글에서 “헤이세이 출생으로 헤이세이가 끝나는 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 헤이세이 수고했다.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헤이세이 마지막 날인 오늘을 깔끔한 하루로 만들자. 헤이세이 고마워. 레이와 잘 부탁해”라고 썼다. 헤이세이는 아키히토 전 일왕이 즉위한 1989년부터 사용해 온 일본의 연호다. 나루히토 일왕이 1일 즉위하면서 일본의 연호는 레이와로 바뀌었다. 사나는 헤이세이 시대인 1996년생이다.

일부 한국 누리꾼들은 “전범 국가 국민이 군국주의를 연상시키는 연호를 언급한 것은 경솔한 행동”이라며 사나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해당 게시글에는 “우리는 일본에 당한 뼈아픈 과거가 있기 때문에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면 반일감정이 생긴다. 글을 안 지우면 한국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것”, “역사를 모르면 사과를 해야 하는데 역사도 모르고 사과도 모른다”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자신을 강제징용 피해자 최장섭씨의 외손녀라고 밝힌 오혜수씨는 트와이스 소속사인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박진영씨의 인스타그램에 “(사나의 글이) 참담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오씨는 댓글에서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일본 우익세력의 근간인 연호에 대한 사나씨의 글은 전범국 국민으로서 일말의 죄의식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낯부끄러운 글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이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게 일고 있다. 일본 국민으로서 연호가 바뀌는 것에 대한 소회 정도는 충분히 밝힐 수 있는 것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지 못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트위터 등 SNS에는 “난 또 사나가 무슨 대단한 글을 올린 줄 알았다.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21세기가 되었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고 하는 거랑 똑같은 말일 뿐이다”, “일본인인 사나가 일본어로 일본 연호가 바뀌었다는 글을 올린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욕을 먹을 일이냐”, “일본이라면 무엇이든지 불편한 사람들이 괜히 (이 일을) 화젯거리로 만든 것”, “그냥 한국에서 돈 버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꼬운 것 같다. 거기에다가 여자라서”와 같은 지적이 이어졌다.

대중문화 평론가들도 “연호가 바뀌는 것에 대한 일본인의 일반적인 감상을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와 연결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입을 모았다.

TV칼럼니스트 이승한씨는 “사나는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나 헤이세이로 살다가 갑자기 레이와로 연호가 바뀌는 상황에 놓인 1996년생 청년”이라며 “그런 청년이 한 시대가 지나갔다고 느끼는 것을 두고 일본 전체주의에 대한 동의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오랜 연호 체제 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개인에게, 연호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설사 책임을 묻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일본 체제 자체를 비판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씨도 “사나의 발언엔 천황제나 연호에 대한 가치 판단이 없다. 그냥 1996년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헤이세이 시대가 간다’와 같은 이야기를 한 거다. ‘가을이 가는구나’ ‘봄이 오는구나’와 같은 말을 한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런 발언에 비난이 쏟아지는 현 상황에 대해 “우스꽝스러움을 넘어 우려스럽다”며 “오도된 열정이자 민족주의의 과열”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여성을 향한 혐오가 애국심을 핑계로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대중문화평론가 문영민(필명 미묘)씨는 “애국심을 빌미로 한 외국인 여성을 향한 혐오이자 ‘트롤링’(trolling·온라인에서 무례한 댓글 등으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행위)”이라고 비판했다. 문씨는 이어 “일본인이 일본에 소속감을 느끼고 일상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트집 잡는 건데, 이는 ‘너는 우리 집에 시집 왔으니 친정에 상이 있어도 가지 말라’는 식의 사고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이승한씨도 “연예인을 대중이 훈계해도 되는 대상이라 여기는 아이돌에 대한 뿌리 깊은 무시와 멸시가 여성 아이돌에게 증폭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며 “이낙연 총리도 일왕 퇴위와 관련해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이 총리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우리가 주체가 되어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고, 한국 땅에 와서 돈을 버는 외국인 여성이 자국의 연호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이상한 논리”라고 꼬집었다.

사나를 둘러싼 이번 파동은 2016년 1월에는 같은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몇달 전 문화방송(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홍기’를 흔들었다가 중국인들에게 “(쯔위가) 대만의 독립을 부추긴다”며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던 사건과 비견된다. 당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등 중국 관영언론들은 일제히 쯔위를 비난하고 나섰고, 쯔위와 소속사 대표 박진영씨는 거듭 사과해야 했다.

이런 식의 비난이 향후 강도를 더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문영민 평론가는 “과거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가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가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그땐 욱일기였는데 이젠 연호에 대한 심경 표현이 욕을 먹는다”며 “일상적 인사까지 검열 대상이 된 상황인데, 혹시 사나가 여기에 사과까지 한다면, 앞으로 검열 대상엔 더 사소한 것도 포함될 수도 있다. 유니클로 옷을 입었다가 사과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결국 피해자들만 계속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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