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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시대를 보내며 : '무릎 꿇는' 일왕 아키히토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제 일본은 '레이와'의 시대다

  • 박세회
  • 입력 2019.05.02 11:44
  • 수정 2019.05.02 13:33

2019년 4월 30일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로 ‘헤이세이‘가 막을 내리고 5월 1일부터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해 ‘레이와’의 시대가 열렸다. 

일본의 왕을 칭하는 ‘덴노‘(天皇)는 과거에는 ‘현인신‘(現人神), 즉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았으며 군국주의 시대에는 ‘만세일계(萬世一系)‘에 군림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인 1946년 1월 1일, 쇼와(昭和) 시대의 히로히토 일왕이 ‘인간선언(人間宣言)’을 하며 공개적으로 덴노의 신성을 부정했다.

후대인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아키히토 일왕의 일생은 ‘만세일계’에 군림하는 존재로서의 천황 마저 부정해온 역사라 부를만 하다. 

아키히토 일본 상왕(전왕이 살아 있을 때 붙이는 호칭)은 일본 내에서는 ‘처음 국민에게 무릎 꿇은 왕’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Issei Kato / Reuters

1989년 거품 경제의 막바지에 즉위한 아키히토 일왕은 경제 몰락과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일본 국민을 위문하는 일에 매진했다. 

‘인류의 역사 이래 최고’라는 호황기를 누리던 일본은 아키히토의 즉위 직후인 90년 초 거품이 꺼지며 땅값과 주가가 완전히 곤두박질쳤다. 버블 시대에 사 놓은 부동산이나 채권이 이익을 낼 수 없는 휴짓조각으로 변했다. 어려운 시기에 자연재해까지 터졌다. 

즉위 이듬해인 1990년 11월17일 일본 규슈의 운젠 국립공원에서 대규모 화산 분화가 일어나 43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아키히토 당시 일왕은 재해 피난처 바닥에 무릎을 꿇고 피해자들의 말을 들었다.

그 이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피난민 대피소를 찾아 여러 차례 무릎을 꿇는 장면이 보도되어 일본 내에서는 ‘국민과 황실의 울타리를 부쉈다’는 평가를 받는다. BBC는 ‘국민에게 무릎 꿇는 천황’은 당시 일본의 보수충에게는 충격적인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했으며, 일각에서는 심지어 비판까지 일었다. 

ⓒPOOL New / Reuters

그는 평화를 강조하고 한국과의 관계 회복에 중점을 두는 발언을 여러차례 하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둔 시점인 2001년 12월 18일 아키히토 당시 일왕은 자신의 생일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아키히토 일왕은 ”개인적으로는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 천황(50대 천황·737∼806·재위 781∼806년)의 생모(生母)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기자회견 어록 전체를 보면 과거 백제 무령왕과 일본의 문화·종교 교류 등을 예로 들어 한일교류의 역사성을 강조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과의 교류는 이런 교류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을 저희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 쿠나이초(궁내청) 홈페이지

이는 일제강점기를 우회적으로 언급하며 반성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헤이세이 시대에 일본이 전쟁이나 무력 분쟁에 휘말리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평화주의자 아키히토는 베이징, 자카르타 마닐라 스페인 등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아버지 시대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후 60주년이었던 지난 2005년 미국 자치령인 사이판을 방문한 아키히토 당시 일왕은 원래 일정을 변경해 예정에 없이 한국인 전몰자 위령비인 ‘한국평화기념탑’에 참배를 올리기도 했다. 일왕이 한국인 위령자비에 참배를 올린 것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는 당시 군국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아베 정권에 경고를 보내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사히신문 등은 사설을 통해 ‘일왕의 위령비 방문을 계기로 역사를 돌아보자’라며 당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려던 아베 정권을 비판했다. 

한편 지난 30일 이낙연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일 일본이 ‘헤이세이’ 시대를 마치고, ‘레이와’ 시대를 엽니다”라며 ”한일관계를 중시하셨던 아키히토 천황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밝혔다. 

1989년 왕세자 시절의 아키히토와 미치코 왕세자비. 
1989년 왕세자 시절의 아키히토와 미치코 왕세자비.  ⓒ- via Getty Images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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