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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무모한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

ⓒ한겨레

예상은 이 정도였다. 선거제 및 개혁법안들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패스트트랙)하기 위해 위원회 회의가 소집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회의장 앞에 드러누워 구호를 외친다. 질서유지권이 발동된다. 국회 경위들이 출동하고 의원들이 차례로 들려 나간다. 단, 절대 폭력은 쓰지 않는다. 그저 소란스럽게 들려 나갈 뿐이다.

이른바 ‘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때문이다. 이 법은 회의 방해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형량이 워낙 세서 의원들은 배지를 잃을 수도 있다. 이 조항 도입은 자유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이 주도했다. “선진화법 때문에 (폭력 소지가) 많이 줄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폭력)이 벌어진다면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김태흠 새누리당 의원, 2013년 6월24일 국회 운영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형량이 너무 세다’는 야당의 주장을 반박하며 한 말이었다. (심지어 새누리당은 회의 방해죄에 관해선 국회의장에게 고발 의무를 부과하고, 고발 취하를 할 수 없도록 국회법에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덕분에 2013년 8월 국회법에 회의 방해죄가 신설됐고, 몸싸움은 사라졌다. 2016년 2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기억하는지? 새누리당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사태라며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지만, 야당은 192시간 동안 ‘떠들기’만 해야 했다. 새 국회법은 그만큼 무서웠다.

예상을 깬 움직임은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작됐다. 한국당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성사의 열쇠를 쥔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감금했다. 채 의원은 112 신고까지 했고, 경찰이 출동하고도 2시간 이상 더 갇혀 있었다. 국회법의 회의 방해죄는 ‘회의장과 그 부근’에서 회의 방해를 위해 이런저런 행위를 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감금이다. 의원회관이니 ‘회의장 부근’이 아니라고? 회의 방해죄를 피해 간다 해도 형법의 감금죄가 남아 있다.(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

다음 무대는 국회 본관 7층 의안과 사무실이었다. 이곳은 패스트트랙의 출발지다. 패스트트랙은 법안이 소관 위원회에 ‘회부’되어야 지정 여부를 묻는 투표를 할 수 있다. 회부되려면 ‘접수’되어야 한다. 접수처가 의안과다. 한국당 의원들은 의안과 사무실을 안팎에서 봉쇄했다. 국회 경위들도 밀쳐냈다. 회의 방해죄 아니어도 공무집행방해 등 적용할 죄목이 넘쳐났다.

다음 무대는 위원회 회의장이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소집되자 한국당 의원들은 다른 당 의원들의 회의장 출입을 힘으로 막았다.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 등을 하거나 이런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국회법 제166조)

국회의원은 일반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직을 잃는다. 국회법의 회의 방해죄로 벌금 500만원 이상을 선고받아도 마찬가지다. 이종걸 의원은 25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21대 총선 출마가 어려운 의원도 많아질 것이다. 오늘 사태는 ‘기해대란’인 동시에 ‘기해년 집단자해 사건’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다”고 적었다.

한국당 의원들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 지난해 12월15일 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5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행 선거제보다 민심에 따른 국회 의석수 비율을 만든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면 좌파 연합세력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다.”(27일 광화문 집회) ‘초과의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실토한 셈이다.

제 것이 아닌 걸 오래 갖고 있다보면 원래 제 것인 양 착각하게 된다. 그 착각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무모한 용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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