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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03일 16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03일 16시 04분 KST

[뉴디터의 신혼일기]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은 완전히 다른 남자가 됐다

마치 제임스 본드 같던 그 남자는 어째서 애교 많은 고양이가 되었나

Getty Images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신랑은 원래 상남자였었다. 터프했고 마초마초했었다. “나만 믿고 따라와!” 이런 느낌. 그야말로 박력분같은 남자였었었었다.

여기서 잠깐, “-였었었었다”라는 표현은 사실 우리 국어에서 쓰지 않는 잘못된 표현이지만 여기에서는 불가피하게 쓸 수밖에 없다. 꽤 아주 오래 전에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평생 자의 1/3 타의 2/3으로 리더병에 걸려 학창시절 내내 반장 회장 등을 맡아온 나에겐 선택은 숙명같은 일이었다. 오늘의 점심 메뉴 선정에서부터 내년 학생회비 개편 방안까지 내가 내려야 하는 선택에는 끝이 없었다.

선택에는 늘 책임이 따르는 법. 그래서 나보다 훨씬 강한 누군가를 만나 기대고 싶었다. 어떤 선택은 나 좀 쉬게 해줬으면, “나만 믿어”하면서 사회에서 겪는 선택의 책임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 줄 강한 남자를 꿈꿨는데, 신랑은 그런 남자였’었었었’다.

“뭐 먹고 싶어?”

“나 한식 종류.”

“그럼 부대찌개로 하지. 따라와.”

마치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는 이 확신에 찬 짧고 굵은 대답이란! 그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놓아도 늘 명확한 결론을 내는 사람이었다. 아니 었었었다.

그 모습에 반해 시간이 흘렀다. 연애가 깊어지고 동거가 시작되고 결혼을 해버린 긴 시간 동안 그는 변했다.

007에서 애교 많은 고양이로 말이다.

Polite Cat Ollie/Instagram

“여봉~ 밥 머거야징~ 먹꾸 시푼거 이써용? 파스타? 어떤 파스타? 난 여보가 좋아하는 건 다 좋아용~ 여보가 정해봐용~”

그는 우유부단한 남자가 되었다. 더없이 부드럽다못해 흐물흐물해져버렸다. 세상천지에서 선택의 책임을 등에 짊어지고 사는데, 이제는 집에 와서까지 내가 모든 걸 결정해야 하다니.

며칠 전 여름휴가 계획을 짜던 중 결국 나는 폭발했다. 우선, 나는 여행이 아닌 휴양을 선호하는 편이다. 비행 시간 6시간 이내인 따뜻한 어느 남쪽나라의 호텔에서 천쪼가리만 걸치고 쾌적한 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음식을 시켜서 와구와구 입에 넣는 걸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견은 이전부터 충분히 피력해 왔으며, 신랑은 늘 거기에 동조했다. 나와 달리 “여행을 많이 다녀서 이제 감흥이 없다”라는 이유를 대긴 했지만.

어쨌든 휴가 얘기가 나온 그 날, 같이 TV를 보는데 남편이 돌연 “유럽에 가는 건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다. 나중에 아기를 낳고 키우다 보면 앞으로 은퇴를 하기 전까지 유럽엔 평생 갈 일이 없을 것 같다는 거였다. 당연히 사랑하는 내 남편이 가고 싶다면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는 우유부단했다.

슈렉2 스틸컷

“근데 음... 사실은 꼭 가고 싶은 건 아냐.”

“오빠가 가고 싶으면 가자.”

“아니야 여보. 별로면 안 가도 돼. 내가 다른 곳 찾아볼게.”

“아냐;; 오빠 가고 싶으면 거기 가.”

“아냐아냐. 여보가 별로이면 안가도돼.”

“나 별로라고 한 적 없어.”

“아냐 여보. 여보 가고 싶은 곳 가야지. 여보 의사가 제일 중요해요. 나는 여보가 하자는 대로 따를 뿐이야.”

결국 나는 다다다다다 쏘아붙였다. 뭐가 이렇게 우유부단한 것이며, 나는 별로라고 말도 안 했는데 왜 혼자 지레짐작해서 판단하고, 중요한 문제는 왜 자꾸 선택지를 나한테 떠넘기는 거냐? 좀 그런 건 하고 싶은 걸 강하게 좀 어필하면 내가 왜 싫어하겠냐!!!!!!!

그러자 남편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옛날에 계속 나 배려심 없다고, 당신 입장을 고려 안 한다고 해서 더 신경쓴 거야... 그리고 진짜로 당신이 싫은 건 나도 싫어.”

돌연 과거의 대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본인 생각밖에 안 하지? 내 기분은 생각도 안 하냐?” “내가 무슨 인형인 줄 알아, 하자는 대로 다 따르게?” 기타 등등. 난 내가 기분 좋을 때만 ”와 정말 내가 기댈 수 있는 남자야. 멋있어”라고 반응했었던 것이다. 결국 나의 수많은 흐름 모를 지적들이 쌓이고 쌓여 우유부단하기 그지없는 남자가 된 셈이다.

괜히 미안해진 나는 괜히 스카이스캐너를 켜서 괜히 런던 가는 비행기편을 검색해보았다. 괜히 한국인 종특, 흥얼대면서 “아이구~~ 아시아나는~~ 누가 사가려나~~~”라고 혼잣말 하면서.

으응... 기분 풀리면 말해...

그 후 한동안 우리는 계속 어디를 갈 지 논의했다. 차분하게, 서로의 목소리를 존중해주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도 종종 내면서 말이다. 과도한 배려가 나올 것 같으면 서로서로 조금씩 톤을 조절했다. 그 결과, 휴가지는 대충 비행 시간 6시간 이내에서 남편이 정한 지역으로 결정됐다. 차곡차곡 쌓아온 배려심을 발휘하면서도 선택은 남편의 몫으로 돌린 것이다.

아마 그는 다시 마초 같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분명하다. 그래도 뭐, 옛날과는 다른 지금의 모습이 그 나름대로 괜찮은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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