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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동물국회가 아니라 불법국회다

그들이 입법한 '국회선진화법'에 의하면...

  • 백승호
  • 입력 2019.04.26 12:25
  • 수정 2019.04.26 13:23

국회의장이 집단 항의를 이기지 못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국회 의안과(의원들이 법률안을 접수하는 곳)는 봉쇄됐다. 새로 보임된 채이배 사개특위 위원은 사무실에 감금됐다. 지난 24일부터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싸고 자유한국당이 벌인 일들이다. 자유한국당의 회의장 봉쇄는 26일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6일 새벽 “오늘 아주 격렬한 몸싸움을 해서 기진맥진해서 병원으로 실려 간 사람들도 있고 상당히 놀라운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는 것 같다”며 “원내대표와 협의해서 더 이상 불상사가 있어선 안 되겠다 싶어서 철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5일 저녁, “국회에서 여야 4당이 법안을 만들어 제출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회 사상 처음일 것”이라며 “국회 선진화법은 오늘과 같은 이런 불법 폭력사태를 다시는 국회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은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 발생했다. 국회선진화법은 지난 2012년 개정된 국회법을 의미한다. 이 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해서는 안된다.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누구든지’에는 당연히 국회의원도 포함된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7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이 ‘7년‘은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시간을 의미한다. 그 이전 국회 상황을 돌이켜보자. 최근 언론들이 ‘동물 국회’라고 부르는 그 시절이다.

국회선진화법의 핵심은 ‘직권상정‘의 무력화다. 직권상정은 종종 ‘날치기‘란 단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특정 법안에 대해 국회의장(다수당에서 뽑힌다)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올리고 과반 정당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모인다. 이를 막기 위해 소수 정당은 ‘몸으로’ 저지한다. 본회의 의장석을 점거하거나 국회의장의 동선을 가로막아 직권상정을 방해한다. 다수당은 방해를 막기 위해 회의장 문을 걸어잠그기도 한다. 가까운 예로 2008년 사례가 있다. 당시는 본회의 직권상정이 아니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단독 상정하기 위해 문을 걸어잠그자 야당 의원들이 망치를 들고 문을 부수기도 했다.

 

ⓒ한겨레

 

국회선진화법은 지난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가 강력하게 추진해서 그해 5월에 입법됐다. 취지는 좋았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날치기, 폭력을 지양하고 여야가 잘 합의해서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것이었다. 이때 같이 도입된 것이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다.

국회법 제106조의 2 - 재적의원 3분의 1이 동의할 경우 무제한 토론이 가능하다

국회법 제85조의 2 - 해당 상임위 의원의 5분의 3 이상, 또는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하면 해당 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최대 330일 이내에 본회의에서 표결처리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법안의 도입 취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전 작업’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2016년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법안 통과가 계속 발목잡히자 “정부·여당이 아무리 법안을 만들고 노력해도 야당이 작심하고 발목잡기에 나서면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는 현실에 국민도 답답할 것”이라며 “새누리당 주도로 18대 국회에서 잘못된 법을 통과시킨 것을 사과하고, 20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가 되도록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 대해 당시 이종걸 원내대표는 ”친박 의원들이 2012년 총선에서 패배를 예상하고 정치보험적 성격으로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했다”면서 ”선거결과가 좋게 나오자 태도가 표변했던 것이라면, 그야말로 안면몰수 정치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싱황을 부연설명하자면 이렇다. 당시 비대위원장이자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권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발목을 잡힐 것으로 보았다. 야권이 과반을 차지하게 되면 오히려 정권과 반대되는 법안을 과거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직권상정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래서 국회선진화법을 강력하게 추진했다는 게 이종걸 원내대표의 설명이자 김무성 대표의 해명이다.

법안이 도입된 이후였던 2016년 2월, 당시 야당의원들은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 도입 저지를 위해 장장 192시간의 필리버스터를 실시한다. 당시는 20대 총선 직전이었고 새누리당이 다수당이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은 테러방지법 지연이 ‘국가 비상사태‘라며 직권상정 예외조항을 적용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국회법을 위반한 대신 국회법에서 보장하는 ‘무제한 연설’을 선택해 저지했다. 테러방지법은 필리버스터가 끝난 직후에 통과됐다.

25일, 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채이배 의원을 감금하며 ”저희 다 감옥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국회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듯하다. 국회에서 회의장을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국회법 위반으로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자는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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