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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이 2020년 미국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제 레이스가 시작됐다.

바이든은 경쟁자들의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할 전망이다.

  • 허완
  • 입력 2019.04.26 16:33
  • 수정 2019.04.26 18:40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020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020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NurPhoto via Getty Images

″이 나라의 핵심 가치, 세계에서 우리의 지위, 우리의 민주주의, 미국을 미국으로 만든 모든 것이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제가 미국 대통령 후보직 출마를 발표하는 이유입니다.”

오랜 출마설 끝에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이 25일(현지시각) 마침내 2020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진보적이고, 젊고,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경선후보들로 북적이는 이번 민주당 경선 레이스에서 바이든은 경륜과 경험, 안정감,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이념과 정당을 초월해 합의점을 이끌어내고, 트럼프 시대가, 또는 트럼프 시대를 낳은 깊은 분열을 치유해 낼 인물로 스스로를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일찌감치 경선 레이스에 뛰어든 다른 후보들은 그동안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두고 논쟁해왔다. 반면 바이든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나라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날 바이든이 공개한 3분29초짜리 출마 선언 영상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미국의 가치’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바이든이 소환한 사건은 바로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시위였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대신 ”양쪽에 모두 아주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샬러츠빌은 지난 몇 년 동안 이 나라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2017년 8월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KKK의 회원과 백인우월주의자들, 네오 나치들이 광장에 나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횃불에 비춰진 그들의 발광하는 얼굴들, 핏대를 세우는 모습, 인종주의의 뱀이빨을 드러낸 것을 봤습니다. 1930년대 유럽 전역에서 울려퍼졌던 반(反)유대주의 증오와 똑같은 외침이었습니다. 용감한 미국인들이 그들에게 맞섰고, 폭력적 충돌로 인해 용감한 젊은 여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이 나라의 양심에 충격을 선사한 말을 미국 대통령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는 ”양쪽에 모두 아주 좋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쪽에 아주 좋은 사람들이 있다고요?

그런 말들을 통해, 미국 대통령은 증오를 퍼뜨리는 이들과 용감하게 이에 맞선 사람들에게 동등한 도덕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이 나라에 가해지고 있는 위협이 제 평생 봤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바이든은 또 이렇게 말한다.

″훗날 역사는 4년 동안 이 대통령과 그가 추구한 것들을 돌아보며 이를 시대의 일탈적인 순간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 백악관에서 8년을 보내게 해준다면, 그는 영원히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 나라의 성격, 우리의 정체성을 바꿔버릴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조 바이든은 상대 정당과의 협의와 협력을 강조하는 '초당파주의(bipartisanship)'를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공화당 원로 정치인이자 그의 오랜 동료였던 존 매케인의 추도식에서 바이든이 추도사 도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 2018년 8월30일.
조 바이든은 상대 정당과의 협의와 협력을 강조하는 '초당파주의(bipartisanship)'를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공화당 원로 정치인이자 그의 오랜 동료였던 존 매케인의 추도식에서 바이든이 추도사 도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 2018년 8월30일. ⓒJustin Sullivan via Getty Images

 

출마를 선언하기 전부터 바이든은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려왔다. 1998년과 2008년에 대통령직에 도전했을 때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비록 그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두 차례 선거운동을 펼치긴 했지만, 자신이 만든 주요 정치적 작품에 배우로 출연했던 적은 없었다”고 적었다.  

주목할 부분은 바이든의 출마 영상에 구체적인 정책이나 이념에 관한 언급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감한 진보적 정책들과 선명한 구호들을 앞세우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나머지 민주당 대선주자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어쩌면 이는 바이든의 오랜 이력 때문일지 모른다.

올해 76세인 바이든은 40년 가까이 상원의원을 지내는 동안 오늘날 민주당의 기준으로 보면 부적합해 보이는 법안들을 지지했다. 대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했고,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를 분리하는 오랜 인종차별적 제도를 폐지(school desegregation)하는 데 미온적이었으며, 이른바 ‘부자 감세‘에 찬성했다.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소위 ‘복지 개혁’, 은행 규제완화 등에서도 공화당 의원들 편에 섰다.

바이든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인 1994년에 통과된 강력범죄 처벌 강화법을 직접 발의하기도 했다. 공화당 닉슨 정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범죄 예방에는 처벌 강화가 최선‘이라는 정책 기조를 충실히 계승하는 법안이었다. 이는 교도소를 수감자들로 가득 채워넣은 ‘대량 투옥(mass incarceration)’ 흐름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흑인 등 유색인종들에 대한 더 가혹한 법 집행을 부추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바이든은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과 어울리지 않는 법안들에 찬성표를 던졌다. 사진은 자신이 발의한 강력범죄 처벌 강화법이 상원을 통과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조 바이든. 1994년 8월25일.
조 바이든은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과 어울리지 않는 법안들에 찬성표를 던졌다. 사진은 자신이 발의한 강력범죄 처벌 강화법이 상원을 통과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조 바이든. 1994년 8월25일. ⓒASSOCIATED PRESS

 

이런 이유들 때문에 민주당의 진보적 당원들 중에는 바이든을 시대에 뒤쳐진 구시대 인물쯤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있다. 이 지지층이 보기에 바이든은 충분히 개혁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를 막아내는 데 실패한 민주당의 낡은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나쁘게 말하면 ‘적폐 세력‘, 좋게 봐줘도 ‘기득권 세력’일 뿐이다.

″민주당의 구세력은 트럼프 당선을 막는 데 실패했으며, 오늘날 트럼프의 분열-정복 정치에 맞서는 싸움을 그들이 주도할 수는 없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같은 진보적 정치 신인들을 지지하며 민주당 내 ‘좌파 바람‘을 주도해 온 그룹 ‘정의 민주당원(Justice Democrats)’이 바이든의 출마 선언에 대해 밝힌 입장이다.

 

이들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민주당에는 2016년 대선에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민주당 텃밭 유권자들을 열광하게 할 대담한 비전을 가진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누가 되더라도) 우리는 민주당 대선후보 당선자를 지지하겠지만, 조 바이든 같은 이른바 ‘중도파‘가 민주당을 분열시키고 ‘아냐, 우리는 그렇게 못해’ 정당으로 바꾸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조 바이든은 오늘날 민주당에 활기를 불어넣은 중심과 거의 정반대편에 서있는 인물이다. 민주당원들은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Mecare for All), 그린 뉴딜(Green New Deal), 대학 무상등록금 같은 진보적 포퓰리스트 정책을 중심으로 점점 더 단합하고 있으며 기업의 후원금과 대량 투옥 및 추방을 거부한다.

이라크 전쟁, 대량 투옥, 파산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동성결혼, 여성의 재생산권, 인종별 학교 분리정책 폐지에는 반대표를 던졌던 사람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조 바이든은 8년 동안 부통령을 지내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두 사람의 모습. 2017년 1월20일.
조 바이든은 8년 동안 부통령을 지내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두 사람의 모습. 2017년 1월20일. ⓒBloomberg via Getty Images

 

바이든은 ‘오바마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바이든은 8년 동안 부통령을 역임하면서 오바마 정부의 성공과 좌절, 성과와 실패를 함께했다. 바이든은 때로는 답답할 만큼 고집스럽게 협치를 추구했던, 그래서 어쩌면 기대와는 달리 ‘덜 개혁적’일 수밖에 없었던 오바마와 닮았다. 물론 오바마는 다수의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다. 바이든이 오바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 내 진보 세력들은 ‘오바마 때로 돌아갈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파리 기후협약을 뛰어넘는 더 강력한 기후변화 대책(‘그린 뉴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2008년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가 금융 자본가들에게 더 강하게 책임을 묻지 못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뿐만 아니라 바이든은 오바마 정부의 가장 큰 실패라고도 할 수 있을 대상과 싸워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다. 민주당의 2020년 대선후보는 (여러 경고 신호에도 불구하고) 결국 트럼프에게 빼앗겼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들을 되찾아와야 한다. 중서부 쇠락한 공업지역의 노동자들, 저학력 백인들이다.

바이든은 스스로를 ‘중산층 조(Middle-Class Joe)’라고 지칭하곤 했다. 월스트리트 금융자본가든, 공장 노동자든, 그 누구와도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탈한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반면 바이든은 민주당 중도 지지층에 속하는 기득권 엘리트와 자본가들의 후원을 거의 독차지할 게 유력한 백인 엘리트 남성 후보이기도 하다.

조 바이든이 'Stop & Shop'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을 방문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2019년 4월18일.
조 바이든이 'Stop & Shop'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을 방문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2019년 4월18일. ⓒMediaNews Group/Boston Herald via Getty Images via Getty Images

 

NYT는 바이든이 처음 상원의원에 당선됐던 1972년의 민주당과 2019년의 민주당이 매우 다른 정당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다만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전통적 지지층과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새로운 진보적 지지층 사이에서 어떤 후보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인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 자료에 따르면, 바이든이 처음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40%에 달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서로 다른 인종끼리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80% 가까운 이들은 마리화나 합법화에 반대했고, 동성 간 성관계는 잘못된 일이라고 봤다. 대체로 민주당 지지자의 75%는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이었고 절반 가량은 중도 혹은 보수 성향의 대학 학위 없는 백인이었다.

(중략)

오늘날 민주당은 과도기에 있다. 전반적으로 당은 민주당의 과거와 민주당의 미래로 분열되어 있고, 학위가 있거나 학위가 없는 백인들로, 50세보다 많거나 적은 유권자들로,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여기는 유권자와 중도파로 여기는 유권자들로 각각 엇비슷하게 나뉘어져 있다. 비백인 유권자들의 비중도 42%로 (백인 유권자 비중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꽤 정확하게 반반으로 나뉘어진 이 상황은 중도파든 민주사회주의자든, 어느 특정 세력의 후보가 경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게 만든다. (뉴욕타임스 4월25일)

바이든의 출마 선언으로 이제 비로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구도가 완성됐다. 앞으로 1년 반 동안 펼쳐질 본격적인 레이스의 막이 올랐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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