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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그저 반대를 하는 게 아니다

황교안의 우려에 진심이 담겨 있다.

  • 서복경
  • 입력 2019.04.25 11:58
  • 수정 2019.04.25 12:09
ⓒ뉴스1

여야 4당이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을 국회법 제85조의2에 따른 ‘안건의 신속처리’ 절차로 처리하겠다고 합의하자, 자유한국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는 행동에 나섰다. 자유한국당의 강경한 태도는 이미 예고되었고 놀라운 일은 아니다. 궁금한 점은 그 이유다.

설득력 있는 가설 중 하나는 ‘총선용’이라는 것이다. 현행 선거제도로 2020년 총선을 치르는 것이 자유한국당에 더 많은 의석을 보장해줄 수 있고, 현재 4당이 합의한 안대로 개정되면 지역구 축소가 불가피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공수처 신설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라, 공약 이행을 보장하게 되면 정부 심판 선거로 가야 할 총선이 불리해진다. 더하여 원내 4당 간 정책연대가 힘을 받으면 원내 주도권을 놓치게 되고 선거를 앞둔 정당 간 이합집산 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다음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제1야당 입장에서 다수 의석 확보를 위한 전략은 중요할 것이고, 총선을 1년 남겨둔 시점에서 이런 요인들은 강경대응을 낳은 주요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뿐일까?

지난 23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황교안 대표는 두 법안의 신속처리절차 개시를 막아야 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거법 개정으로 원내 지형이 바뀌면) 반기업 규제 법안, 귀족노조 우대 법안, 원전 폐기 법안 등 이념 법안이 일사천리로 통과”될 것이며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체제 수호 법도 줄줄이 폐지될 것”이고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개헌이 이뤄질 것”이라고. 또 공수처가 신설되면 “지금 야당만 괴롭힐 것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5년 전, 10년 전 과거 사건들을 죄다 끄집어내어 수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개헌을 하고 남북연방제로 가려는 단계를 밟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황 대표가 통과를 걱정하는 ‘반기업 규제 법안’은 무엇일까?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복합쇼핑몰 규제 법안 등을 말하는 것 같다. 상법 개정안은 기업지배구조 개편 관련 내용을 담고 있고,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법 제정 38년 만에 전면 개정된 안이 정부안으로 제출되어 있는 상태다. 복합쇼핑몰 규제 법안은 골목경제의 주체인 소상공인들의 요구를 담은 것으로, 역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정기국회에 즈음하며 재계는 이 법안들을 ‘반기업 법안’으로 정의하고 통과 저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귀족노조 우대 법안’은 뭘까? 아마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의 건을 말하는 것 같다. 국제노동기구는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유엔 전문기구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국제노동기구로부터 핵심협약 비준을 요구받고 있으며, 유럽연합(EU)으로부터도 협약 비준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비준 요구를 받는 것은 노동자들의 결사권을 보장하고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4종의 협약으로, 재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황 대표가 ‘좌파 이념 법안’으로 지목한 또 하나의 범주는 ‘원전 폐기 법안’이다. 자유한국당은 일관되게 원자력발전을 지지해왔고, 지난 강원도 산불 원인에 대해서도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대통령이 주도하는 탈원전·태양광 정책으로 화재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었다.

나는 황 대표가 밝힌 이런 우려들이 자유한국당 의원 다수의 진심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지배구조를 바꾸고 현행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바꾸고 노동자의 결사권을 보장하고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훼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한국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집권당이 되어야 하며 다음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되어야만 한다. 자유한국당은 그저 반대를 하는 게 아니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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