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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23일 15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23일 15시 02분 KST

진주 방화·살인 사건, 국가의 책임을 묻다

분석은 모두 조현병을 향하고 있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 발생 일주일 남짓. 안모씨의 범행이 그가 앓고 있던 조현병과 직접 관련 있는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쏟아지는 분석은 모두 조현병을 향하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16년까지 서울과 6대 광역시 법원 1심을 기준으로 형사재판 건수는 51만5650건이고 이 중 조현병으로 인한 심신 장애 인정은 0.01%인 76건이다. 통계만 보더라도 조현병을 성급하게 문제의 핵심으로 다루기엔 무리하다. 또한 안씨는 범행 당시 힘없고 약한 사람만을 골라 공격하는 분별력을 보였다. 심신 상실을 내세우기 힘든 정황이다. 병이 있든 없든, 그는 위험했다. 자활센터 직원 폭행, 층간소음 시비, 오물 투척, 주민과의 다툼, 술집 주인 폭행 등 올해 경찰에 신고된 것만 7차례였다.

안씨의 형은 병원, 검찰, 법률구조공단, 동사무소를 찾아다녔고 유가족들은 “경찰서, 파출소의 조치가 없어 관할 동사무소와 LH 본사, 관리실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번 사건은 국가기관이 방치해 일어난 인재”라 설명했다. 누구나 위험이 곁에 있다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위험은 방치되고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사람들이 죽었고 다쳤고 가족을 잃었다.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줄 국가는 기능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국가의 책임’에 눈이 머물렀다. 진주경찰서장은 분향소를 찾아 “그동안 경찰 조치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 뒤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경찰에게 묻고 나면 국가는 모든 책임을 다한 것일까? 강남역과 진주에서 벌어진 사회적 약자를 향한 살해는 중단되는 것일까?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은 늘 도마 위에 먼저 오른다.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도 따랐다. 하지만 경찰 내부는 예방 권한 자체가 제한적이라고 설명한다. 수사 이후 단계는 검찰과 사법부를 거치는 촘촘한 프로세스를 정하고 있는 반면 예방에 관해서는 경찰에 의무로만 명시해둘 뿐 구체적으로 어떤 기관들과 협의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정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한국형사정책학회의 <형사정책>(2014년 8월)에 실린 ‘우범자 관리 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연구’를 들여다보자. “우범자 관리는 경찰청 내부 규칙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따른 대상은 4만명에 이르지만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본질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부작용을 드러낸다. 기본권 침해 논란뿐 아니라 재범 방지라는 목적보다 첩보 수집에 머물고 있어 실효성 있는 운영이라 보기도 어렵다. 단지 실무 담당자에게 책임만 지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으니 이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관련 법률의 근거를 마련해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필자는 말한다.

법적 근거와 제도, 시스템이 마련된다고 기본권 침해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필자 견해에 모두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위 주장대로 직면한 위험을 다스릴 법은 취약하다. 스토킹을 예방할 법률이 없는 것처럼. 뿐만 아니라 위험 예방은 기관별로 다르고 협력은 원활하지 않다. 경찰관인 지인은 말한다. “범죄 예방은 어느 한 기관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주민들과 생활치안의 문제로 같이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경찰과 지자체, 복지, 의료 등이 서로 어떻게 협조를 할 건지가 핵심이다.”

여전히 나는 문제 해결에 대한 분명한 견해를 밝히기 어렵다. 다만 먼저 반성한다. 인권침해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범죄 예방과 안전 보장에 대해 얼마나 공부하고 주장했는가. 묻는다. 교정시설은 교화기능을 하고 있는지, 경찰은 치안정보보다 범죄정보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는지, 형사사법기관들은 범죄 예방을 위한 관리체계에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할 것인지,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방어 이전에 치료와 보호를 위해 어떤 의무를 할 것인지, 시민들은 전과를 가진 사람과 정신 장애인을 편견 없이 사회에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 대안 없이 질문만 던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경찰만 두들겨 대고 동사무소 직원 몇명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해결해서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이 모든 질문들이 국가의 실체이며 책임의 시작 아니겠는가. ‘안씨라는 괴물’과 ‘조현병’ 말고 국가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희생을 막을 수 있다. 국가의 모든 ‘누군가’들은 지금 답해야 한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