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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들썩인 백두산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최근 지진 발생 횟수가 늘어나고 온천수 수온은 여전히 상승을 멈추지 않고 있다.

  • 김도훈
  • 입력 2019.04.22 10:17
  • 수정 2019.04.22 14:33
ⓒbtrenkel via Getty Images

1980년 한국 광주에서 정부군이 시민을 학살하는 비극이 벌어진 5월18일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에서는 세인트헬렌스 화산이 폭발해 암석과 화산가스, 화산재가 순식간에 서울시만 한 면적을 뒤덮었다. 세인트헬렌스 화산은 123년 동안 잠들어 있다 화산분화지수 5 수준으로 폭발해 57명의 인명피해와 3조원의 재산손실을 남겼다. 화산분화지수는 화산 분출물의 부피를 기준으로 화산 크기를 나눈 것으로, 지수 5의 분출물 규모는 1~10㎦이다. 세인트헬렌스 화산은 분화 두달 전 규모 4.2의 지진으로 전조를 알리고 보름 전에는 북쪽 사면이 부풀어 오르면서 하루 1.5~2.5m씩 북쪽으로 움직여 폭발이 멀지 않았음을 경고했다. 하지만 분화 한달 전 화산 10㎞ 외곽에 관측기기를 설치했을 뿐 충분한 예측 장비가 확보되지 않아 현장에서 연구 중이던 화산학자 데이비드 존스턴조차 부지불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지진과 달리 화산은 계속 모니터링을 하면 언제 폭발할지 예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 분화 징후를 보인 백두산은 지금은 지진과 화산가스 등 징조들이 크게 잦아들었지만 최근 지진 발생 횟수가 늘어나고 온천수 수온은 여전히 상승을 멈추지 않고 있다. 중국 장백산화산관측소 연구팀이 2012년 <지구물리학연구회보>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평상시 한달 평균 7건이던 지진 발생 횟수가 2002~2005년에는 한달 평균 72건(모두 3천여건)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2003년 11월에는 지진이 무려 243번이나 났다. 대부분의 지진은 천지 아래에서 발생했으며, 지진 규모도 평상시보다 컸다. 이 기간에 백두산은 천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평균 4㎝, 최고 7㎝가 팽창하고 수직으로도 7㎝나 상승했다.

지강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백두산은 2008년 이후 수직 하강하기 시작했지만 지진과 팽창은 또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분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세인트헬렌스 화산의 경우 감시소 활동 부족으로 분화를 예견하는 데 실패한 것을 교훈 삼아 백두산에 상시 화산감시소가 설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도 “백두산 주변 지진 횟수가 2002~2005년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2017년 10회, 2018년 20여회로 증가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주변 온천수 온도는 최근 38도까지 오르는 등 2000년대 초 이후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은 백두산이 분화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지역으로 북한의 양강도와 함경도 일대를 꼽고 있다. 윤성효 교수 연구팀이 올해 3월1일 0시에 백두산에서 화산분화지수 5~6의 폭발이 일어나 10㎦의 분출물과 높이 25㎞의 분연주가 발생한 것으로 가정해 컴퓨터 수치계산을 한 결과를 보면, 6시간 만에 백두산 인근에는 30㎝의 화산재가 쌓이고 멀리는 일본 홋카이도까지 낙진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정됐다. 윤 교수는 “천지 칼데라 호수 안에 20억t의 물이 존재하고 백두산의 과거 이력으로 보아 분화구 주변에 고온의 화산쇄설류가 발생해 칼데라 외륜산을 부수거나 넘쳐흐를 경우 대홍수가 발생해 ‘라하르’(물과 암석·토사가 섞인 화산이류와 토석류)가 주변지역을 매몰시킬 수 있다. 미리 사방댐 건설 등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두산 폭발 때 치명적인 재해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양강도에는 2만여명, 함경북도에는 23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인구 300만명의 함경남도도 부분적으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산 분화 때 화산가스도 인명피해를 낳은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현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1986년 8월 아프리카 카메룬 북서부의 니오스 호수 인근에서 1700여명의 주민과 3500여마리의 가축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휴화산의 분화구인 니오스 호수에서 하룻밤 사이에 10만~30만t의 이산화탄소가 갑자기 방출돼 빚어진 비극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2002~2005년 백두산 인근에서 포집된 화산가스 시료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평균 96%, 최고 99%가 측정됐다. 또 맨틀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헬륨 농도도 높아졌다. 2015년 중국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백두산 서쪽 0.2㎢ 토양을 조사한 결과 하루 1㎡당 20g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현우 교수는 “백두산의 화산가스 방출 수준은 일본 이와지마화산이나 카메룬 니오스 호수와 비슷한 위험 등급”이라고 말했다.

백두산의 분화 조짐이 계속되면서 북한 쪽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몇 차례 남북 협력을 제안해 와 중국에서 학술회의를 진행해 왔음에도 미사일 발사 등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공동연구로까지 발전하지 못해 왔다. 최근 남북 정세 변화 속에 한국 연구자들이 지난해 3월 북한 쪽에 제안서를 보내 12월 베이징에서 학술전문가회의를 열고 남북국제공동연구를 추진하자는 의견을 교환했다. 이윤수 포항공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북한 쪽에서 민간 차원의 연구는 한계가 있으니 정부 채널로 추진할 것을 제안해왔다. 이럴 경우 유엔의 대북제재를 넘어야 하는데 최근 국제백두산연구그룹(MPGG)의 사례에 비춰 백두산 연구를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인도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면 풀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 영국, 중국 연구자들은 2013년부터 북한 쪽 백두산 현지에서 화산지진관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엠피지지를 이끌고 있는 제임스 헤이먼드 영국 런던대 교수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깨어나는 백두산 화산,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영국 유엔대표부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백두산 연구는 분화 때 발생할 재해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2017년 6월15일 백두산 연구가 대북제재 예외조항에 해당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북한과 7년 동안 긴밀하게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신뢰로, 엠피지지는 그동안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통해 북한과 남한의 새로운 연결을 구축하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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