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5월 07일 16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07일 16시 30분 KST

48년째 삼시 세끼 ‘라면’만 먹은 91세 할아버지 이야기

지금까지 먹은 ‘라면’ 개수만 약 7만 7,000개다.

1972년부터였다. 당시 44세였던 박병구(91) 할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먹는 족족 게워내 버렸다. 먹은 것이 없으니 기운이 없었고, 자연히 일도 손에서 놓게 됐다. 사람들이 권유한 갖가지 약이나 음식도 소용없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살린 것이 ‘라면’이었다. 48년째 1일 3끼, 박 할아버지의 라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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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째 라면만 먹는 박병구(91세) 할아버지

1972년, 할아버지를 살린 ‘라면’

“젊을 때부터 장이 안 좋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먹는 대로 토해버렸어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 4리에 사는 91세 박병구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들은 갖은 민간요법을 실천해보고, 약초를 달여 먹기도 했지만, 박 할아버지는 약마저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의 통로가 좁아져 음식을 소화할 수 없는 질병인 ‘장협착증’ 진단이 내려졌다. 어려운 형편에 수술까지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묽게 쑨 미움조차 죄다 올려버려 그야말로 곡기가 딱 끊긴 상황. 박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라면’이었다. ‘라면’을 먹으면 속이 확 풀어진다는 지인의 말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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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끼 박 할아버지의 주식은 오로지 라면뿐이다.

신기하게도 ‘라면’이 특효약이 됐다. 박 할아버지는 거짓말처럼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과 몇 년만에 처음으로 포만감을 느꼈다고. 그 순간 ‘살았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잊고 있던 삶의 희망도 되살아났단다. 그렇게 ‘라면’과 함께한 지 벌써 48년째다. 간식도 밥도 전혀 먹지 않고 오로지 ‘라면’으로만 살아온 세월이다.

 

30여년 ‘안성탕면’과의 인연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지난 48년째 할아버지가 먹은 라면은 오로지 ‘농심’ 제품이었다는 것. 지금까지 먹은 라면 개수만 약 7만 7,000개에 달하는데 모두 ‘농심’ 라면이었으며, 대부분이 ‘안성탕면’이었다. 박 할아버지에 따르면 처음 맛 본 라면이 농심의 ‘소고기라면’이었고, 이후 ‘해피라면’에서 ‘안성탕면’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기간이 확실치 않으나 ‘안성탕면’ 출시가 1983년이고, ‘해피라면’ 단종 시기가 1990년대 초임을 감안해도 박 할아버지가 ‘안성탕면’을 먹은 지 30년 남짓 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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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소고기라면’(1970), ‘해피소고기’(1982), ‘안성탕면’(1983)

같은 라면을 매일, 삼시 세끼 먹는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한데도 할아버지는 다른 라면은 도통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다른 회사 라면보다 ‘농심’라면이 가장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아 계속 고집할 수밖에 없다는 것. 농심 측은 “안성탕면이 시골 장터의 우거지 장국을 재현해 만들어진 제품이라 부드러우면서도 구수한 맛이 박 할아버지가 오랜 시간 부담 없이 라면을 드실 수 있었던 비결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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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끓일 준비를 하는 박 할아버지.

젊은 시절엔 한 끼에 2봉씩, 하루 6봉지를 거뜬히 먹었는데 요즘은 나이가 있어 끼니당 1봉지만 먹는다. 먹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일전에는 농사일로 바빠 끼니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면을 끓인 후 찬물을 부어 스프를 뿌려 비벼서 먹는 할아버지만의 독특한 레시피가 있었는데, 최근 2~3년 사이엔 조리법 그대로 먹는다. 여전히 라면에 밥조차 말아 먹을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지금으로도 족하다고.

 

1994년, 농심으로 날아온 한 장의 편지

사실 지금에야 ‘라면’이 저렴한 식사 대용 음식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싼값이 아니었다. 네 식구가 한 달 먹는 쌀값보다 할아버지 혼자 먹는 라면값이 훨씬 비쌌다. 게다가 마을에서 십 리(약 4km)나 떨어진 다른 마을까지 가야만 살 수 있을 정도로 ‘라면’은 도회적인 음식이었다. 

그렇게 라면으로만 산 지 스물두 해째였던 지난 1994년, 할아버지의 사연은 농심 본사까지 흘러 들어간다. 당시 이장이자 마을의 유일한 가게를 운영하던 정화만 씨가 박 할아버지의 사연을 농심에 제보하면서부터다. 정화만 씨의 친동생이자 현재 광덕4리 이장인 정화철 씨는 “박 씨 할아버지의 사연이 안타깝고, 농심에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형님이 직접 편지를 보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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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간 라면만 먹고 살았지요> 1994년 '서울경제'에 실린 박병구 할아버지 관련 기사다. 농심에서는 당시 정 씨가 보냈던 편지는 없지만, 26년 전의 신문 기사들을 스크랩해 보관 중이다.

농심 또한 이를 단순 장난으로 치부하지 않고 직접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이웃집 수저 개수도 알았을 시절, 세 끼 라면만 먹던 독특한 식습관을 가졌으니 동네 주민들이 입을 모아 할아버지의 사연을 증명해줬단다. 농심은 고심끝에 할아버지의 건강한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평생 무상으로 라면을 제공하겠노라 약속한다. 이 소식은 여러 신문에 날만큼 유명해졌는데, 약속을 지킨지 벌써 26년째가 됐다.

 

26년째 화천군을 찾는 농심 춘천점 직원

3개월마다 안성탕면 9박스, 1년에 총 36박스를 화천군으로 배달하는 일은 농심 춘천 지점의 중요한 업무다. 화천지역 담당 영업사원이 할아버지에게 직접 안성탕면을 전달하게 되는데, 인수인계 사항 1호로 꼽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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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춘천점의 강한솔 대리가 3년째 박 할아버지 댁으로 라면을 배달 중이다.

현재 배달은 농심 춘천 지점의 강한솔 대리가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월 해당 지점으로 발령받은 이후부터 3, 6, 9, 12월의 말일에 할아버지 댁을 방문한다. 그는 “다른 영업사원은 하지 않는 특별한 일을 하기 때문에 매우 뿌듯하다”며, “할아버지를 찾아뵙는 날은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날”이라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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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병구 할아버지의 아내 최정숙 씨, 박병구 할아버지, 농심 춘천 지점의 강한솔 대리

그의 소원이 있다면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사시는 것. 라면을 드리러 갈 때마다 커피 한 잔을 끓여주며 먼 길 오는 사원을 손주처럼 예뻐해 주는 할아버지를 뵈면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든단다. 다행히 박 할아버지 또한 올해로 91세지만,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외에는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낸다. 라면도 본인이 직접 끓여 먹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밭에 나가 일도 한다. 농심 측은 할아버지의 건강만을 기원하며, 오래오래 라면 배달을 해드리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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