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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20일 16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20일 16시 29분 KST

‘조장풍’의 판타지 아닌 진짜 정의로운 사회는 언제쯤 올까

“꼭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어야 하나”

상습적인 임금체불, 부당해고, 휴게시간 미보장에 초과근무 강요를 일삼는 버스회사에 운행정지 명령을 내리고 돌아온 근로감독관에게, 고용노동부 진상조사위원들이 질문을 던진다. “운행정지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이 확신하십니까?” 권한남용을 의심받자, 근로감독관은 확보한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증거로 제시하며 이유를 설명한다. “이거부터 좀 봐주시죠. 법적으로 고속·전세·시외버스 운전자 두 시간 이상 연속운행 금지, 운행 후에는 15분 이상 휴식 보장하게 되어 있는데, 상습적으로 위반이 발생했고 이는 버스 운행을 30일 이상 정지할 수 있는 위법 사항입니다.” 화면 속 운전기사는 덮쳐오는 졸음을 쫓지 못해 고개를 꾸벅이고, 버스가 급정거하자 자리에 서 있던 승객들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군다.

 

 

“꼭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어야 하나”

근로감독관은 말을 잇는다. “그리고 이건 얼마 전에 대하리에서 일어났던 엔진 폭발 사고 영상입니다. 다행히 구조대가 빠르게 출동해서 인명사고는 면했지만, 자칫하면 정말 큰 재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고로….” 영상을 보던 진상조사위원이 근로감독관의 말을 끊는다. “아니 뭐 그렇다고, 무슨 큰 사고가 일어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버스는 시민들의 발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냐 이 말입니다.” 방금까지 운전대를 잡은 기사가 반쯤 잠든 채로 도로를 달리고, 승객들이 쓰러지고, 달리던 버스의 엔진이 터져 뭉게구름 같은 연기를 뿜어내며 화급히 갓길에 정차하는 영상을 보여줬는데도 ‘무슨 큰 사고가 일어난 건 아니지 않냐’고 따져 묻는 질문에, 근로감독관의 눈에 불꽃이 인다. “꼭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어야 됩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그래야 됩니까?” 문화방송(MBC) 새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한 장면이다. 해당 회차가 방영된 것은 2019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이하는 날이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우선 무엇이 왜 잘못된 건지부터 밝혀야 한다. 그러나 참사 5주기를 맞이한 우리는 아직 많은 것을 모른다. 우리는 아직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정확하게 모르고, 통영함은 왜 두번이나 구조 명령을 받고도 출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더 많은 이들을 구조할 수 있는 자원을 지니고 있었던 해경이 왜 구조에 소극적이었는지, 방송사들이 ‘전원 구조’ 오보를 내도록 만든 정보원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없다.

5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한가지다. 응당 작동해야 했던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고, 그것이 참사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황해서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대신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대피 안내에 따라 질서 있게 피난하는 것은 합리적인 매뉴얼이다. 그러나 세월호에는 승객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재난을 대비할 시스템이 부재했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선내 안내방송을 믿고 침착하게 기다렸던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무슨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누군가 나서서 잘못을 지적하고 시스템을 바로 세울 것을 요구했다면 그날의 기억은 다른 방식으로 쓰였을지도 모른다.
2015년 문화방송 드라마 <앵그리맘>에서 세월호 참사를 직설적으로 다뤘던 김반디 작가는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는 어떻게든 상식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근로감독관 조진갑(김동욱)을 내세워 시대를 바라본다. 사람을 썼으면 그에 맞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상식, 정해진 시간보다 더 오래 일하면 초과근로수당을 받아야 하고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휴식시간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들. 그러나 이런 상식을 어긴다고 한들 사용자 측이 지게 되는 책임은 그리 크지 않다. 기껏해야 벌금형이 대부분이고, 회사 자산들을 빼돌린 뒤 위장 폐업 후 명의를 바꿔 재개업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피해가는 회사들도 태반이다. 시스템 안에서 싸우자니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김반디 작가는 훌쩍 판타지의 세계로 도약한다. 조진갑은 과거 자신의 제자였던 추심 전문 흥신소 사장 천덕구(김경남)의 도움을 빌려 뒤가 구린 ‘갑’들의 뒤를 캐고 함정수사를 펼친다. 정의를 구현하고 상식을 지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판타지를 택한 것이다.

 

‘조장풍’ 나오기 힘든 시스템

존재하는 시스템이 빈틈투성이이고, 그나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들만이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판타지. 그런데 이 판타지가 동시간대 ‘2049 시청률’(20~49살 연령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수도권 기준. 8회 4.2%. 조사기관 닐슨코리아) 그만큼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지닌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동시간대 2049 시청률 1위를 다룬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은 시청자들의 현실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세상 어느 근로감독관이 저렇게 노동자의 편에 서는가? 판타지 드라마구만.” “깨끗한 근로감독관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드라마니까 보지.” 드라마를 보는 그 누구도 현실 속 근로감독관이 저렇게 정의 구현에 앞장서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실제로 2018년 12월 ‘직장갑질 119’의 조사를 보면, 노동자의 77.5%는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 ‘고용노동부가 회사 편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이들이 59%였다.

설령 의지와 선의를 가진 근로감독관이 발 벗고 나선다 해도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처럼 한 사업장을 오래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2018년 2월 광주지방고용노동청으로 전보된 지 12일 만에 스트레스와 적응장애를 호소하며 세상을 떠난 근로감독관 최아무개씨 한명이 담당해야 했던 사업장은 4971곳, 담당 노동자는 3만7931명이었다. 담당 사건은 83건이었고, 처리기한 내에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12일 중 5일을 초과근무에 시달려야 했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도 정시에 퇴근을 못 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근로감독관들끼리 서로에게 “우리부터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신세 한탄을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현실의 시스템은 더 조악하기 그지없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대놓고 코미디적 과장과 판타지 요소를 섞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시스템과 매뉴얼대로라면 정의와 상식이 구현될 일이 너무 요원한 나머지, 이와 같은 노골적인 판타지를 그리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 현실 말이다.

 

Reuters

 

돈이 중하다고는 하나 사람의 존엄과 생명보다 중하진 않다. 시스템이 그 점을 분명히 세우는 데 실패하면 인명피해는 필연적이다.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수많은 요소 중 2012년 개정되었던 수난구조법은, 구조 현장에서는 특정 민간 구조업체들에 독점 혜택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재해 예방과 구조와 같은 국가의 책무가 사실상 민영화되면서 “동원 가능한 모든 민간 잠수사를 투입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이 공수표가 된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시스템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을까? 2018년 12월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하청노동자 김용균씨는 홀로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안전을 위해 반드시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현장이었지만 하청업체 직원에게까지 그 원칙이 지켜지는 일은 없었다. 고 김용균씨 사고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한 첫날이었던 2019년 4월3일 새벽, 충남 서천 한솔제지 공장에서 20대 노동자 황모씨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역시 3인 1조로 일해야 하는 현장이었지만 설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혼자 점검에 나섰다가 생긴 변이었다.

참사 후 5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멀고, 시스템은 여전히 사람의 존엄과 생명을 우선순위로 여기지 않는다. 정의 구현을 부르짖는 드라마는 시스템의 빈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판타지의 세계로 도약한다. 여기는 아직도 돈 때문에 사람의 생명이 죽어가는 땅임을,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 이야기 지겹다”고 말할 권리 따위는 없음을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속 조진갑의 대사를 들으며 다시 깨닫는다. “꼭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어야 됩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그래야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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