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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성인이 되기를 기다린 후 이혼한 부부들: 그때 자녀들이 했던 생각

성인 자녀들도 부모의 이혼에 큰 정신적 영향을 받는다

ⓒtorwai via Getty Images

부모의 이혼이 어린 자녀에게 미치는 감정적 영향에 대한 연구는 꽤 많았으나, 자녀가 성인이 된 후 부모가 이혼했을 때 그 자녀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이 자녀들은 부모들의 이혼 전에도 여러 해 동안 부모의 결혼 생활에 따른 영향을 받아왔을 이들이다.

자녀의 발달에 중요한 시기, 또는 그렇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격동이 심한 십대 시절을 위해 이혼하지 않고 기다리는 부모들이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지금, 자녀들을 출가시킨 뒤 이미 소원해진 배우자와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혼을 미루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비교적 나이가 많은 자녀에게 이혼이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결혼이 줄어드는 까닭에 50세 이하 젊은 세대의 이혼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반대로 ‘황혼이혼’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USC 사회학 명예교수이며 ‘좋은 이혼’의 저자인 콘스턴스 아론스는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부모들은 ‘지금의 결혼생활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라고 자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혼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혼하지 않을 경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18년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같은 경험을 한 다섯 명의 이야기를 아래 모았다. 자신이 배우자이자 부모가 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날벼락 같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와 형제들은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싸움도, 별거도, 아무것도 없었다. 날벼락 같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부터 계획해왔던 것 같다. 다음 날 바로 가서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준비해 두었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나와 형제들이 18세를 넘을 때까지 기다리면 자녀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19살 때 떠났지만, 내가 어렸을 때 떠났다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을 것 같다. 가끔은 그랬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버지는 ‘어머니의 날’ 주말에 떠났다. 왜 하필 그 날을 골랐는지 묻자, 아버지는 더이상 일상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나와 형제들 모두 성인이 되었지만 부모님의 이혼은 나와 아버지, 나와 어머니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아버지와 13년 동안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와 같이 살고, 내 아이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가끔 우리가 모였을 때면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는 자신이 뭘 놓치고 있는지 알까?”라고 말한다. - 로라(34), 매사추세츠

 

어렸을 때 한 친구는 “너희 집에 오면 정상적인 가족이 어떤지 볼 수 있어서 좋아.”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과 아주 친했다. 어렸을 때 한 친구는 “너희 집에 오면 정상적인 가족이 어떤지 볼 수 있어서 좋아.”라고 말했다. 내가 대학원에 있을 때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너희 아버지와 나는 별거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여동생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22세, 동생은 16세였다. 동생은 “여기 상황이 안 좋아졌어. 많이 싸우셔. 엄마가 정말 슬퍼해.”라고 말했다.

별거는 했지만 이혼은 2년 전에야 했다. 이혼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상황이 꽤 험악해졌다. 부모님은 같은 방에 있을 수가 없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함께 자란 가족이고, 우리는 늘 함께였고, 뭐든 같이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는 두 분이 불행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감정적으로 발달한 아이라 해도 못 보는 것이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부모님은 문제를 감추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학교를 마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우선 우리가 졸업하길 바랐다. 그건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뒤늦게 죄책감도 든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하는 결정의 시간과 기회 비용을 더 잘 알게 되니 더욱 그렇다. 이를 경험한 나로서는 사람들은 이혼할 준비가 되었다면 이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질질 끌지 않는 게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 닉(34), 캘리포니아

 

ⓒtakasuu via Getty Images

 

“나는 부모님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의 나이였다. 그래서… 공황 발작을 겪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와 남동생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혼했다. 두 분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늘 그냥 우리가 어렸을 때 이혼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통제가 심했다. 어머니도 재택 근무이긴 해도 일을 했지만, 아버지는 집은 깨끗해야 한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어머니는 돈을 모으며 나와 동생의 출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동생보다 2살 많기 때문에 먼저 나왔다. 동생이 집에서 나오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났다. 나는 부모님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의 나이였다. 그래서 정말 힘들었고 나는 공황 발작을 겪게 됐다.

성인인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이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지만, 내 아이들을 해로운 가족관계 속에 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남편과의 관계에서 내 행동이 딸에게 주는 영향을 고려하려고 하지만, 내 행동을 바꾸기란 아주 어렵다. 남편과의 관계는 좋지만 그럼에도 노력할 부분들이 있다. - 익명(42), 플로리다

 

“이혼이 더 빨랐길 바라지는 않는다.”

내 부모님은 늘 헤어지기 전에 손을 잡고 “사랑해.”라고 말했다. 12살이 되기 전까지는 나는 문제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어느 날 학교에 가려고 일어나 보니 어머니가 소파에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아프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는 게 뻔해 보여서 나는 캐물었다. 아버지가 출장을 다녀와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몇 년 전부터 그랬어.”라고 말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몇 번이나 바람을 피웠고,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처음 그랬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나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왜 어머니가 결혼 상태를 유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끝난 다음 물어봤더니 어머니는 다른 여성이 “내 아이들을 키우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혼이 더 빨랐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사랑받지 못하는 결혼 생활을 했다는 건 슬프지만, 그건 어머니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공포도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어머니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었으며, 부모님을 이해하고자 한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터놓고 이야기한다. 엄마 아빠의 의견이 가끔 다를 때는 있지만, 늘 대화로 해결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준다. 가끔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걸 아이들이 볼 때도 있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할 때도 있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집에서는 한 명이 소리를 지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내 어조에 아주 주의한다. - 익명(31), 덴버

 

“두 분 세대의 문화에 따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랄 때 부모님은 “우리 이혼해!” “우리 이혼 안해!”라는 대화를 많이 했다. 5, 6학년 무렵 부모님은 나를 할머니 댁에 데려가 앉혀놓고 이혼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힘들었다. 학교에서 자제력을 잃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뒤로도 집에서 이혼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여러 해 동안 듣다보니 둔감해졌고, 나는 부모님이 보다 빨리 이혼했길 바란다.

나는 “대체 왜 결혼한 상태죠?!”라고 묻곤 했다. 엄마는 막내인 내 남동생이 두 부모가 있는 집에서 자라길 원했다고 말했다. 내가 21살이고 대학에 가 있던 중 두 분이 드디어 이혼한 것은 놀랍지 않았다. 나는 두 분 세대의 문화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혼 후 10년은 정말 힘들었고 다들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두 분은 대화도 하고 문자도 주고받는다. 내 아이의 다섯 번째 생일 파티에는 두 분 다 왔다. 함께 지낼 때보다 훨씬 낫다. 이 지점에 더 빨리 다다를 수 있었을 테니 더 빨리 이혼하는 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크리스티나(38), 뉴저지

 

*허프포스트 미국판의 Their Parents Stayed Together ‘For The Kids.’ Here’s How It Felt.를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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