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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늙어 간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괜찮아, 안 죽어

ⓒ21세기북스

나이가 들면서 시원찮은 구석이 하나둘씩 생겨나는 건 세상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눈도 흐려지고 귀도 가물가물해지고 이도 약해지고 허벅지 굵기도 점점 슬림해진다. 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있는 그대로 힘들어하거나 애쓰지 않고 받아들이면 좋을 테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조금 짠해지기도 한다. 세수하다가 턱에 하얀 먼지가 묻은 게 보여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그게 먼지가 아니라 흰 턱수염임을 알았을 때도 그랬고, 휴대전화의 작은 글씨를 보려고 나도 모르게 전화기 잡은 손을 눈에서 한 뼘쯤 멀리 떨어뜨리는 것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고, 거실에서 조용히 TV를 보고 있는 나에게 물 마시러 주방에 가던 딸아이가 밤도 늦었는데 볼륨 좀 줄이라는 말을 했을 때도 그랬다. 잠시 서글프지만 어쩔 수 있나, 뭐. 그게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을.

진료라는 것, 특히 동네 의원에서의 진료는 대화가 거의 전부다. 환자는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를 말하고, 의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궁금하거나 중요한 부분을 묻는다. 그리고 의사의 질문에 환자가 다시 대답하는 이 반복 과정이 진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진단하고 로봇이 수술하는 시대라지만 진료의 기본인 문진은 여전히 꼭 필요하며,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오늘따라 보청기를 안 끼고 와서 결국 내 목을 쉬게 만든 할매가 있다. 겨우 진료(라고 쓰고 샤우팅이라고 읽는다)를 끝내고 한숨 돌리려는데 이 할매 내 손을 잡더니 미안하단다. 다음엔 보청기를 꼭 끼고 오겠다며 거듭 사과를 한다. 나는 그런 할매를 다시 의자에 앉힌다. 목이 아파 더는 큰 소리로 말을 할 수 없던 나는 결국 이면지와 사인펜을 집어 든다. 이 할매는 눈도 침침해서 글씨도 진짜 크게 써야 한다.

‘할매, 차가 쌩쌩 다니고 골목에 오토바이도 막 다니고 그러는데 그 소리 못 듣고 돌아다니다가 사고 나요. 불편해도 꼭 보청기 끼고 다녀요!’라고 길게 쓰고 싶지만 실제 종이에 쓴 것은 ‘차, 오토바이, 꽝, 사고, 다쳐, 보청기, 꼭!!!’ 일곱단어가 전부다.

제대로 이해한 건지 못 한 건지 알 수 없지만 할매는 눈을 꿈벅꿈벅거리며 이면지를 한참 내려다본다. 그러고는 알았다며 내 어깨를 토닥토닥하고는 진료실을 나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대기실이 잠시 조용해진 사이 진료실로 들어온 직원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누런색 종이봉투를 책상 위에 놓는다. 안에 든 것은 붕어빵이다.

“언제 나가서 사왔대?”, “아뇨, 아까 그 할머니가….”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무는데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하다. 늙음에 적응해 간다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조금은 서글프고, 또 조금은 따뜻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붕어빵을 한참이나 호호 불어 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한때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 살기가 녹녹지 않다고 투정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아, 안 죽어’라는 결론을 내어 주는 것이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고 믿었다. 그렇게 제한된 결론 속에 스스로를 가두며 끊임없이 벽을 쌓는 동안 세상은 더욱 넓어졌고, 나는 점점 좁아지는 틈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나를 살려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서 ‘괜찮아, 안 죽어’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찾아와 ‘힘들어 죽겠다’는 말로 나를 흔들어 깨웠고 마침내 ‘우리 죽지 말고 같이 살아가자’며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어쩌면 여기 모여 있는 글들은 죽을 듯 나락으로 떨어지던 나를 살려낸 내 사람들이, 나를 시켜 써놓은 소생 기록인지도 모른다.

* 에세이 ‘괜찮아, 안 죽어’(21세기북스)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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