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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16일 11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16일 11시 29분 KST

세월호 참사 후 5년, 나는 언니의 죽음을 다시 통과했다

살면서 배워야 할 것 중에 애도하는 법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Aleksandr_Vorobev via Getty Images

언니와 형부는 2006년 2월에 결혼했다. 혼인신고 할 틈도 없이 바빴던 두 사람은 결혼 후 한달 만에 양가에 인사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에게 함께 가겠냐고 물었지만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 두 사람은 형부의 고향에서 언니의 고향으로 이동하던 중 남해안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모님께 드리려고 포장해둔 결혼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둘의 죽음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돌아가셨어요, 라고 하기엔 둘은 너무 젊었고, 세상을 떠났어요, 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고하고 억울한 죽음을 은폐하는 말이다. 그들은 스스로 떠난 적이 없다. 누군가 언니에 대해 물으면 나는 담담하게 죽었어요, 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흠칫 놀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섯번째 4월16일이다. 나에게 그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언니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는 세월호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세월호 참사 후 5년의 시간 동안 나는 마치 언니의 죽음을 한번 더 통과해온 느낌이다. 그러니까 나는 비로소 애도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죽음은 압도적인 경험이지만, 그 일이 닥쳐온다 해서 모두가 그것을 ‘제대로’ 겪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죽음에 대해 무지한가를 깨닫게 되고, 장례가 끝나면 그 이유를 곧 알게 된다. 죽음은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금기인 것이다. 금기된 것은 배울 수 없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신호성군의 어머니를 인터뷰했던 건 2014년 11월이었다.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했다.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그렇게 울다간 그녀의 애(창자)가 정말로 다 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세시간 동안 쉬지도 않은 채 애끓는 사랑과 그리움, 분노를 토해냈다. 변변한 질문도 못한 채 엉엉 울면서도 나는 어쩐지 그녀의 통곡소리가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 녹음파일을 듣고 또 들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와 짐승의 소리 그 사이 어디쯤에 있었다.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도 이렇게 울었을까. 이렇게 울었어도 마음이 아팠고 이렇게 울지 못했어도 마음이 아팠다.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그 녹음파일을 꺼내 들었다.
세월호 가족들에게서 지난 5년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 책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펴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느꼈던 것은 죽은 사람들이 그들 옆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의 눈치를 살폈고 무엇이 그들을 위한 선택일까 끊임없이 고민했으며 하나라도 더 해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특히 그들이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 흘릴 때 그 존재는 더욱 생생해져서 손을 뻗으면 정말 만져질 것 같았다. 그것은 정말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디에도 언니가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식했다. 언니의 장례가 끝난 후 나는 그녀의 물건들을 정리했고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나에게 언니에 대해 묻지 않았고 나 역시 부러 말하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나에겐 그녀를 위해 마련된 빈자리가 없다는 것이, 내가 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안해져서 또 울었다.

세월호 가족들에게서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가족들이 서로를 어떻게 할퀴고 미워하고 다시 위로하는지, 그들의 곁이 어떻게 파괴되고 다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들었다. 수건을 폭 적시도록 울었고, 그래서 좋았다. 그 시간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살면서 배워야 할 것 중에 애도하는 법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20대 이후 나와 내 친구들은 여러 이유로 가족을 잃었다. 그것은 우리가 겪은 가장 참혹한 고통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고통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면서 함께 슬퍼하고 위로할 수는 없다. 오래전 누군가의 죽음을 통과하면서 울었어야 할 울음을 뒤늦게 울었다. 끝내 모른 채 넘어가버릴 수도 있었던 것을 이제라도 애도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나는 그것이 어떤 이들이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잃은 후 처절하게 싸워서 얻은 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애도의 장을 열어준 유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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