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4월 15일 16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15일 16시 59분 KST

핀란드 총선에서 '복지 축소 반대' 내세운 사민당이 승리했다

유럽 중도좌파 정당의 퇴조 흐름 속에 나온 이례적인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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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사회민주당 대표 안티 린네(Antti Rinne)가 총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 2019년 4월14일.

14일(현지시각) 치러진 핀란드 총선에서 복지 축소 반대를 앞세운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집권여당을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반면 사회복지 개혁을 추진했던 집권여당 중도당은 의석을 대거 잃고 4위로 추락했다. 

반(反)이민 민족주의 우파 포퓰리즘 정당으로 분류되는 핀인당은 제2당 지위를 유지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럽 곳곳에서 목격되는 정치적 분열 양상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핀란드 역사상 처음으로 어느 정당도 20%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지 못한 채 다섯개 정당이 10%대의 득표율을 나눠가진 것이다. 

이 때문에 향후 연정 구성 협상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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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사회민주당은 근소한 격차로 득표율 1위를 기록해 16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게 됐다.

 

사민당의 (아슬아슬한) 부활

핀란드 법무부의 공식 집계 결과에 따르면, 개표가 거의 완료된 상황에서 사민당은 17.7%의 득표율로 전체 200석 중 40석을 차지해 제1당에 등극했다. 지난 총선 때보다 6석을 늘렸다.

안티 린네 사민당 대표는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우리가 핀란드 제1당이 됐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1995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며 집권했던 사민당은 2003년에 중도당에 정권을 내준 바 있다.

사민당의 승리는 유럽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꽤 이례적인 것이다. 유럽 정치에서 전통적으로 중도좌파를 대표해 왔던 사회민주당은 최근 몇 년 동안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에게 표를 잠식당하며 일제히 퇴조해왔다.

연립정부에 참여했다가 갈라져 나온 뒤 더 오른쪽으로 전환한 핀인당은 사민당에 불과 0.02%p 뒤쳐진 17.5%의 득표율로 39석을 확보해 2위 자리를 지켰다. 의석은 1석 늘어났다.

반면 현 정부의 핵심세력인 중도당은 2015년 선거 때보다 18석이나 줄어든 31석(13.8%)을 확보하는 데 그쳐 4위로 추락했다.

연립정부 파트너로 참여했던 중도우파 국민연합당은 3위에 해당하는 17.0%의 득표율로 1석을 추가해 총 38석을 얻었다.

녹색당은 11.5%의 득표율로 20석을 확보했다. 이전 총선 때보다 5석 늘어난, 1987년 창당 이래 역대 최고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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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시필래(Juha Sipilä) 총리는 핵심 정책이었던 사회복지 개혁 법안이 무산되자 총선을 앞두고 사퇴를 선언했다. 2019년 3월8일.

 

사회복지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사회복지 개혁이었다. 

지난 총선 이후 총리직을 넘겨 받은 유하 시필래 총리는 전임 중도우파 정부의 정책을 계승해 건강보험과 연금에 대한 개혁을 추진했다. 

‘복지 천국’으로 알려져 있는 핀란드는 유럽에서도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들 중 하나로 꼽힌다. 2003년 정권을 탈환한 중도우파 정부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사회복지 지출 증가와 재정 악화를 방치할 수 없다며 복지 개혁을 추진해왔다.  

BBC가 인용한 유로스탯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는 65세 인구 비중이 21.4%(2018년 기준)에 달한다.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어 독일과 함께 유럽에서 네 번째로 높다.  

그러나 그동안의 사회복지 개혁은 줄줄이 실패했다. 시필래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총선을 불과 한 달 가량 앞둔 지난달, 시필래 총리는 핵심 사회복지 개혁 법안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연정은 붕괴됐다.

중도좌파 사민당은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 시스템 강화와 불평등 완화를 공약했다. 린네 대표는 최근 로이터 인터뷰에서 ”우리는 과세 기준을 확대하고 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업급여 축소, 연금 동결, 공공부문 휴일수당 삭감 등 시필래 정부가 추진한 긴축 조치들은 ”공정한 방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근로소득세를 올리지 않고도 “15억유로(약 1조92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민당은 자본소득세와 소비세 등을 인상해 사회복지 지출을 늘릴 계획이다. 일례로 1400유로 이하의 연금을 수령하는 이들에게는 수령액을 100유로씩 인상함으로써 “5만5000명 이상의 연금생활자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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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이민, 반(反)EU을 내세운 우파 포퓰리즘 정당 핀인당의 대표 유시 할라아호(Jussi Halla-aho)가 선거와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 2019년 4월14일.

 

기후변화

북극과 가까운 핀란드에서는 기후변화도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눈에 띄는 대목은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우파 포퓰리즘 정당 핀인당과 좌파성향 녹색당이 각각 약진했다는 부분이다.

이번 선거에서 핀인당은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책이 노동계급에게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핀란드가 기후변화에 과민반응하고 있으며, 필요 이상의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핀인당은 정부의 에너지세 인상에 격렬히 반대했고, 다른 정당들이 제안한 화석연료차 생산 중단 계획에도 반기를 들었다. 이같은 환경 규제 정책들이 ”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입힌다”는 이유에서다.

유시 할라아호 대표는 ”핀란드가 세계를 구할 수는 없다”며 ”우리는 이미 우리 몫을 다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기후변화 대책에 적극적인 녹색당과 더 왼쪽에 속하는 좌파동맹(6위, 8.2%, 16석)은 각각 5석과 4석을 늘렸다. 특히 녹색당은 창당 이후 최대 의석수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수도 헬싱키에서 23.5%의 득표율로 국민연합당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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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우파 국민연합당 대표 페테리 오르포(왼쪽)와 핀란드 사회민주당 대표 안티 린네. 

 

연립정부 구성

이제 사민당은 연립정부 구성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웃나라 스웨덴처럼 라이벌인 중도우파 정당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민당을 비롯해 주요 정당들은 핀인당을 연정에서 배제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사민당이 핀인당을 빼고 더 왼쪽에 있는 녹색당과 좌파동맹과 손을 잡아도 과반(100석)에 훨씬 못 미치는 76석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사민당이 중도우파 국민연합당(38석), 녹색당(20석), 핀란드 스웨덴인민당(9석)과 손을 잡는 시나리오(총 107석)가 거론된다.

주류 정당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핀인당은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2017년 핀인당 대표에 취임한 할라아호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발언으로 2012년 유죄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럼에도 그는 위기에 빠졌던 당을 이끌며 제2당 자리를 지켰다.

1995년 핀인당 창당의 주역 중 하나인 티모 소이니 외무장관(전 부총리)은 할라아호의 강한 반(反)이민, 반(反)EU 시각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중도파를 이끌고 당을 떠나 새로운 정당을 차렸다. 소속 의원들이 대거 새 정당에 합류하면서 핀인당은 중도우파 연정에서 떨어져나왔다.

그러나 할라아호가 당을 장악한 이후 핀인당은 이민, 환경 등의 이슈에 있어서 더욱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추락하던 지지율을 극적으로 회복하며 이번 총선에서 선전했다. 이민자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범죄가 잇따르면서 반이민 정서가 확대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핀인당의 선전은 5월 말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이민과 반EU를 내세운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밖의 기록들 : 사전투표율, 여성의원 비율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몇 가지 눈에 띄는 기록이 세워졌다.

핀란드 공영방송 윌레(Yle) 보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는 사전투표율이 36.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투표율도 지난 총선의 70%에서 72%로 증가했다. 

여성 의원 비율은 46%(92명)를 기록했다. 2011년 총선에서 세워졌던 기록(85명)을 넘어선 수치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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