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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13일 20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13일 20시 01분 KST

누워서 스마트폰 대신 앉아서 소설 쓰기

그게 즐겁습니다, 정말로.

LiliGraphie via Getty Images

지난 초겨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계기는 대단치 않다. 결혼 준비를 하던 남자친구와 벽력 같은 이별을 한 것. 헤어짐보다 힘든 것은 다시 혼자의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같이’, ‘함께’ 계획만 해놓은 많은 일들은 영영 다 없던 게 되었다. 결혼 앞까지 간 연애를 끝내고 돌아본 나의 삶이 너무 낯설어서, 나는 이게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기가 어려웠다. 예전엔 독립했으니 자립도 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혼자의 미래를 도모하면서 나는 서툴고 어려웠다. 사람들은 살다 보면 그런 때도 있다고 위로해주었지만, 그래서 안 그런 때는 언제 오는지까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연 많은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누구에게 말하고 웃어넘기는 것으로는 다 털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하루하루를 가득 채웠다. 그래서 그때 친구가 “소설을 써보는 게 어때?” 하는 제안을 했을 때 나는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뜻밖의 시련이 덤처럼 남긴 일종의 결기로, 곧바로 문화센터의 소설 쓰기 수업을 찾아 등록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무작정 개강 날짜가 가장 가까운 수업을 택했다.
내가 듣는 소설 쓰기 수업의 골자는 ‘계속 쓰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오천자짜리 짧은 소설을 매주 쓰고, 후반에는 만오천자짜리 단편소설을 한 편 쓴다. 금요일 저녁 소설 쓰기 수업에서는 이 과제물로 ‘합평’(合評)을 한다. 소설가 선생님과 수강생들이 함께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을 들려주는 것이다. 오천자면 A4용지 세 장 남짓, 남의 글로는 후루룩 넘길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러나 읽는 게 아니라 쓰는 게 되자 그 세 장을 쓰고 다듬느라 며칠을 씨름하게 됐다. 마지막 과제인 단편소설을 쓴 두어 달은, 연말연시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기억이 희미하다. 글쓰기에 몰두하느라 약속도 거의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즐거웠다.

소설 쓰며 겪은 변화는

그렇게 소설을 쓰지 않는 삶에서 소설을 쓰는 삶으로 옮아온 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상을 타지도 이름이 나지도 않는 글쓰기는 남들이 보면 하나 마나 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한미한 활동을 하면서, 나는 많이 변했다. 소설을 쓰며 겪은 변화는 대충 세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다.

첫째, 실패에 대한 후회로 나 자신을 소모하지 않게 됐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상상력이 없으니, 나는 주로 내 경험들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 처음 완성한 세 장짜리 작품도 그냥 그때 내 이야기였다. 결혼 준비를 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먹구름이 낀 것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여자. 어떻게 결말을 낼지도 정하지 않은 채로 그냥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혼자 씹고 곱씹고, 참다못해 누군가에게 하소연해도 풀리지 않았던 마음은 슬픔이 아니라 미련이었다는 것을. 내 발을 묶은 건 나라는 것을.

그런데 그 마음을 소설이란 틀에 넣고 굴리다 보니, 이야기가 스스로 답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설은 표현만 해선 될 수 없고, 논리를 타고 결말로 흘러가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소설이라도, 주인공이 ‘이때 이렇게 했으면’ 혹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는’ 가정들을 전부 실행해볼 수는 없었다. 장기짝은 하나의 갈래만 택해 나아가야 했고, 이미 둔 수를 무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소설 속에서 스스로 결말을 내본 뒤, 나는 더 이상 지나간 연애로 아프지 않았다.

그 뒤로는 아쉬운 일이 생겨도,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선택들을 해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오판도 나의 판단이었고, 그 결과도 내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두번 세번 따질 일이 거의 없었다. 상황이나 상대방을 탓하며 정신을 소모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둘째,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 보면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나 혼자 집에서 소설을 쓰기만 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걸 가능하게 해준 것이 소설 쓰기 수업의 합평 시간이었다. 내 소설을 읽은 소설가 선생님과 수강생들에게 감상과 질문, 제안을 듣는 것이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일단은 내 마음에도 꼭 들지 않는 결과물을 남들에게 읽히는 게 무척 괴로웠다. 듣다 보면 ‘아닌데’ 하고 억울한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정말 오독이나 오해라 하더라도, 그렇게 읽히게 쓴 내 책임도 있기에 수용을 해야 했다.

하지만 소설 수업의 수강생 한 분이 해주신 말씀 덕분에 나는 계속 소설을 쓰고, 계속 합평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잘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요, 지금의 제가 택할 수 있는 건 잘 못 쓰거나 아니면 안 쓰거나 둘 중 하나뿐이더라고요. 저는 잘 못 쓰더라도 써보기로 했어요.” 나는 그걸 듣고 거의 충격에 가까운 인상을 받았다. 뭘 하기로 했으면 잘해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옳은 말씀이었고, 내게 주어진 선택지 역시 다르지 않았다.

힘들고 불쾌한 일, 모두 ‘소재’로

그리고 한주 한주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모든 이야기가 결국 내 주변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뒤통수까지 눈을 달아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집-회사뿐이던 생활에서 내 분야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면서, 일정 부분 사회성을 회복해가는 느낌도 들었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을 등장인물로 써먹었는데, 합평에서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듣다 보면 ‘내가 이 사람을 오해했구나. 아직 잘 모르는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다. 다 살피지 않고 휙 등 돌려놓고, 다 봤다고 다 안다고 생각했구나 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셋째, 글을 쓰면서 일상을 관조할 힘과 여유를 되찾았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정신적으로 매우 건강해졌다는 것이다. 내내 품에 안고 있던 경험과 기억들을 가다듬어 소설로 쓰는 일은, 어지럽게 흩어진 물건을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는 일과 비슷하다. 그게 책상 위나 방바닥이 아니라 내 마음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소설을 쓰면서 내 마음 주머니는 많이 가뿐해졌다. 새로운 관찰을, 새로운 발견을 넣을 빈자리도 점점 늘어난다.

또 힘들고 불쾌한 일도 모두 소재로 삼는 패기도 얻게 됐다. 매주 ‘이번엔 뭘 쓰지?’ 하고 궁리하다 보니, 자연히 일상에서 보고 듣는 특이한 일들이 이제는 그저 다 소설의 소재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요새는 짜증 나는 일을 겪어도 씩씩거리는 대신 ‘흥, 소설로 써주겠다’ 하며 의기양양하게 메모를 한다. 반나절 걸릴 일을 떠맡기면서 꼭 “이거 그냥 십 분, 아니 오 분이면 되는 일인데~” 하는 말을 붙이는 얄미운 상사 얘기를 나는 소설로 쓰고 말 것이다. 요즘 세상에 회식 3차를 노래방 가야 한다고 떼를 쓰는 부장 이야기도 언젠가 쓰고 말 것이다. 월급도 받고 소재도 얻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이렇게 좋은 직장이 어디 있습니까~?(좋다고 해주세요.)

내 인생의 테두리는 다시 일인분으로 좁혀졌다. 그 안에서 이제 나는 한 사람이 아닌 내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나도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좋은 사람을 만남으로써 나 자신도 좋은 사람이란 걸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는지 모른다. 결혼이 내 인생을 다음 단계로 옮겨다 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제 소설을 쓰면서, 나는 자기 증명이 아닌 자기 발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해받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살기 위해 애쓴다. 매일 새벽 약수를 받으러 산을 오르는 어르신들처럼, 나는 매일 저녁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까지 키보드를 두드린다. ‘불 끄고 누워서 스마트폰’ 대신, ‘불 켜고 앉아서 소설 쓰기’를 한다. 네. 혼자 소설 쓰고 앉아 있습니다, 진짜로. 그게 즐겁습니다, 정말로.

글 · 유주얼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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