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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11일 18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11일 18시 19분 KST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 불합치'로 선고한 의미심장한 이유 5가지

세상이 달라졌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일방적으로 제한했던 낙태죄가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여성은 이제 임신의 지속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과거보다 더 많은 자기결정권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이번 판결은 그 판결의 결과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내용을 살펴봐도 의미심장하다. 헌법재판소는 여태까지 낙태죄가 어떻게 여성의 삶과 자유를 제한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판결문에 나온 내용은 새로운 게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그동안 입을 모아 국가에 요청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판결문 중 인상적인 내용을 모아봤다. 일부는 문맥을 고치거나 수정하였다.

 

 

1. 자기결정권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생활영역에서 인격의 발현과 삶의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권리다.

이러한 자기결정권은 남녀 구별 없이 여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임신, 출산을 할 수 있는데 이에 관한 결정은 여성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기결정권에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2. 임신과 출산, 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성은 임신을 하게 되면 약 10개월의 기간 동안 급격한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겪게 되며, 출산 과정에서는 극도의 고통과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위험을 경험하게 된다. 여성이 임신을 유지하는 한 그와 같은 신체적 부담, 심리적 불안감, 출산과정의 고통 및 나아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여성에게 있어서 자녀의 양육은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끊임없는 신체적·정신적·정서적 노력을 요구하고, 여성이 처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과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 학업 계속의 곤란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부담과 어려움은 성차별적인 관습, 가부장적 문화, 열악한 보육여건 등의 사회적 문제가 가세할 경우 더욱 가중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임신·출산으로 인해 사회적·경제적 생활에서 많은 불이익을 겪고 있으며, 육아에 있어서 남성에 비하여 더 큰 부담을 지는 경우가 많아서, 여성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여성의 퇴직으로 이어져 사회적·경제적 삶의 단절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이다

 

3. 여성을 보호하는 것이 태아를 보호하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은 자녀가 출생하면 입양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머니로서 출생한 자녀에 대한 양육책임을 부담한다. 특별한 예외적 사정이 없는 한, 임신한 여성의 안위(安危)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고 일치한다.

사회,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어떤 여성들은 임신·출산·육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자녀가 출생하면 어머니가 될 자신뿐만 아니라 태어날 자녀마저도 불행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낙태를 결심하고 실행한다.

위와 같은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이러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은 ‘가해자 대 피해자’의 관계로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관계를 고정시켜서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

 

4. 낙태가 사문화됐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고통받는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를 범죄행위로 규율하고 있는 이상 낙태가 사문화되었다고 해도 국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모든 낙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여 수사와 처벌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몇 해 전 ‘불법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거나 광고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구 억제정책을 시행하던 시기에는 국가가 낙태를 묵인하기도 하였다. 국가의 인구정책 여하에 따라 자기낙태죄 조항의 실제 가동 여부가 좌우되는 것이다.

오히려 낙태죄가 현존하는 상태에서 여성은 형벌의 위하로 말미암아 임신의 유지 여부와 관련하여 필요한 사회적 논의 내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게 되는 측면이있다. 모든 낙태가 전면적·일률적으로 범죄행위로 규율됨으로 인하여 적절한 시기에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낙태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다.

또한 음성적으로 낙태를 할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싼 수술비를 내고 불법적인 수술을 받거나 심지어 해외 원정낙태까지 하게 된다. 낙태 수술과정에서 의료 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렵고, 수술 전후로 적절한 의료서비스나 상담, 돌봄 등을 제공받기도 쉽지 않다. 불법 낙태 수술을 원하는 여성은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여야 하는데,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가 쉽지 않고, 끝내 시기를 놓쳐 낙태를 하지 못하고 출산하는 경우 영아유기 내지 영아살해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다는 본래의 목적과 무관하게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자신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이 병원에서 낙태를 한 후 자신을 만나지 않으려 할 때 상대 남성이 자기낙태죄로 고소하겠다는 위협을 하는 경우, 배우자가 이혼소송 과정에서 재산분할이나 위자료청구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낙태에 대하여 고소를 하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

 

5. 여성에게는 임신을 중단할 다양한 이유가 있다.

모자보건법에서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경우는 ① 본인이나 배우자의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② 본인이나 배우자의 전염성 질환, ③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④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의 임신, ⑤ 모체의 건강에 대한 위해나 위해 우려가 있다.

위 사유들은 임신한 여성의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예컨대,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우려,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자녀가 이미 있어서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부부가 모두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하여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상대 남성이 출산을 반대하고 낙태를 종용하거나 명시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다른 여성과 혼인 중인 상대 남성과의 사이에 아이를 임신한 경우,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경우, 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과 같이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해 낙태를 고민하고 있는 여성이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해 임신의 유지와 출산을 강제당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법적 제재를 받아야 한다.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이 처해 있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하여 형법적 제재의 예외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로써 임신한 여성은 임신 유지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부담, 출산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에 더하여 위 사유들로 말미암아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 학업 계속의 곤란, 경력단절 등을 포함한 각종 고통까지 겪게된다.

 

 

한편, 합헌을 주장한 재판관 (조용호, 이종석)의 의견에는 이런 것들도 있다

“지금 우리가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합헌의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모두 모체로부터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태아였다.”

″성관계라는 원인을 선택한 이상 그 결과인 임신·출산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위와 같은 헌법 정신에도 맞는다”

″낙태가 단지 선택의 문제가 된다면 그러한 요구나 압박은 보다 거리낌 없이 행하여질 것이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은 모두 임신한 여성이다.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낙태에 반대하였던 것 역시 이러한 이유이다”

″우리 세대가 상대적인 불편요소를 제거하는 시류·사조(思潮)에 편승하여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훗날 우리조차 다음 세대의 불편요소로 전락해 안락사, 고려장 등의 이름으로 제거대상이 될 수도 있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낙태의 실행과 교사, 방조에 관련된 남성과 여성 모두를 처벌하고, 임신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별 중립적 규제이며, 어떤 차별취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임신한 여성과 그 가족이 특정한 성별의 아이를 선호하여 낙태할 수 있다면, 이는 명백한 성차별 효과를 가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