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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11일 18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11일 18시 07분 KST

다들 직장 내 영어생활 잘 케어하고 계신가요?

다들 댓글 인볼브 하시죠?

metamorworks via Getty Images

“코워크(cowork)하고, 애자일(agile)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저희 실에서 리스폰서빌리티(responsibility)를 갖고 파인 튜닝(fine tuning)하기로 브이아이피(vip)께서 의사결정 하셨어요.” 최근 한 익명 게시판에 회사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라며 도는 글이다.

해석하자면 그 회사 사장이 “협력해서 기민하게 진행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너희 실에서 책임지고 꼼꼼하게 완수하라”고 말했다는 뜻이다. 과장이 아니다. 직장인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그 정도는 다 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한국어 좀 씁시다’라고 외쳐봐야 결국 쓰는 사람 마음인걸.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단어들이 있다. 금융권에 있는 한 친구는 “‘케어’(care·돌보다)라는 단어를 아무 때나 쓰는 사람을 만나면 분노를 ‘케어’할 수가 없다”라며 “‘막내 케어 안 하느냐’고 할 때도 케어, ‘그 정도도 케어 못 하느냐’고 할 때도 케어다”라며 화를 냈다.

‘케어’는 돌보고, 치료할 때 쓰는 착한 단어인데 구박할 때만 쓰니 후배가 분노를 ‘케어’ 못할 법도 하다. 내 경우엔 ‘인볼브’(involve·관여하다)가 싫다. 누군가로부터 “이따 삼겹살에 소주 한잔할 건데, 인볼브하나?”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다.

우리와 그나마 비슷한 언어 환경을 가진 일본은 좀 어떤지 궁금해서 일본 회사원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한국처럼 쓰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은 외래어를 빨리 받아들이긴 하지만, 일본어 발음에 맞게 바꾸거나 축약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덕분에 일본어 사용자들끼리의 의사소통은 원활하겠지만, 진짜 미국인과 만났을 때는 한국식 영어가 좀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집단 내 지위를 이용한 갑질을 ‘파와 하라’(パワハラ·파워+허레스먼트)로, 자동차 블랙박스를 ‘도라레코’(드라이브+레코더)라고 줄인다.

일본에서 언론사에 다니는 내 미국인 친구는 영어로 말할 때도 가끔 회사원을 ‘사라리만’(サラリ?マン)이라고 할 만큼 완벽하게 일본화한 사람이지만, 유독 ‘크레무’라는 단어만은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고객 불만을 뜻할 때 ‘컴플레인’(complain) 대신 ‘크레무’(クレ?ム)라는 단어를 쓴다”고 한다.

크레무는 ‘클레임’(claim)이다. “한국도 ‘클레임’을 쓴다”고 말했더니 깜짝 놀랐다. 대체 두 나라가 왜 컴플레인 대신 클레임이라는 단어를 쓰는지는 연구해봐야 할 주제다. 어쩌면 고객의 ‘불평’을 배상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기업의 방어적인 태도 때문은 아닐지 혼자 추측해본다. 클레임에는 ‘청구하다’라는 뜻이 있다.

단어의 선택은 욕망을 품고 있다. ‘고객 불만’ 대신 ‘클레임’을 쓰는 기업, ‘관리’ 대신 ‘케어’를 쓰는 상사에겐 나름의 욕망이 있다.

최근 사는 곳 근처에 한옥을 개보수한 소위 ‘힙 터지는’ 커피숍이 생겼다. 이 커피숍의 메뉴에는 ‘포어 오버 커피’(pour over coffee)가 있다. 엄밀하게 말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핸드 드립’이라고 했으면 의미를 전달하기는 더 쉬웠을 터다.

그런데도 굳이 ‘포어 오버’를 선택한 데서 새롭게 보이고 싶은 욕망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미숫가루 우유 대신 ‘미수 라테’ 혹은 ‘그레인 라테’를 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언어의 매력 중 하나가 시대의 욕망에 따라 변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본 블로그는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