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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낙태죄에 대해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 - 헌법재판소

유남석 헌재소장 
유남석 헌재소장  ⓒ뉴스1

[기사 업데이트] 오후 4시 50분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을 한 의료인 등을 ‘낙태죄’로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이 나왔다. 

이번에 헌법재판소의 심판 대상이 된 법은 형법 269조 1항(자기 낙태죄)와 형법 270조 1항(의사 낙태죄)다. 1953년 제정된 이래, 66년간 유지돼 왔던 법률이다.

형법 제269조 1항 (자기 낙태죄)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270조 1항 (의사 낙태죄)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뉴스1

헌법재판소는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4명(헌법불합치), 3명(단순위헌), 2명(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을 의미한다.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다. 이에 따라, 현재의 법은 개정 이전까지만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의견(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 의견으로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한 태아의 발달단계 혹은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모자보건법이 정한 예외만으로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며 ”(낙태죄가)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다만, ”단순위헌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밝혔다.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입장발표를 마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로 포옹을 하고 있다.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입장발표를 마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로 포옹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은 단순위헌 의견에서 더 나아가 ”이른바 ‘임신 제1삼분기(마지막 생리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안전한 낙태(safe abortion)’를 위해서는 임신 제1삼분기에 잘 훈련된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 낙태가 시행되고, 낙태 전후로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돌봄이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낙태를 금지하고 이에 대하여 형벌적 제재를 부과하는 방법은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충분히 기여해 왔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국가가 성교육의 강화, 상담 등의 실시,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사회복지 차원에서의 부조와 국가적 지원, 출산과 육아에 장애가 되는 각종 제도적, 사회구조적 불합리의 개선 등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고 실효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경우에도 국회는 위헌 결정의 취지에 따라 재입법을 할 것”이라며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면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은 합헌 의견으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제한의 정도가 자기 낙태죄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하여 결코 크다고 볼 수 없다”며 ”자기 낙태죄 조항 및 의사 낙태죄 조항은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뉴스1

헌재는 7년 전인 2012년에는 낙태죄에 대해 4대4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강국·이동흡·목영준·송두환 재판관은 ‘임신 초기(12주 이내) 낙태는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으나, 김종대·민형기·박한철·이정미 재판관이 ‘태아는 그 자체로 별개의 생명체이다’ 등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위헌정족수인 6명에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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