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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백인 극단주의자들은 어떻게 트럼프의 상징을 차용했나

"트럼프는 지금도 그 모자를 쓴다."

  • 허완
  • 입력 2019.04.10 14:54
ⓒHuffPost Canada

알렉산드르 비소네트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캐나다인인 비소네트가 트럼프에게 투표하지는 않았다. 트럼프의 선거 유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는 거리가 먼,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에 살았다. 하지만 이 27세 남성이 2017년 1월에 퀘벡시의 모스크를 휩쓸며 무슬림 남성 6명을 살해한 직후 나온 사진들에서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슬쩍 웃고 있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가 창백한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미국 내 정치 슬로건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비소네트를 비롯한 전세계 백인 국수주의자, 급진 우파, 반(反)이민 극단주의자들에게 이것은 국가와 언어를 초월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상징이 됐다.

“모자와 MAGA라는 약자는 백인 국수주의 운동의 약칭이 됐다.” 캐나다 온타리오공과대학(UOIT)의 극우 전문가 바버라 페리 교수의 말이다.

페리와 다른 연구자들은 온라인에서 극단주의자와 증오 단체 회원들을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바로 MAGA 심볼을 찾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극단주의 연구자 J.M. 버거는 2018년 연구에서 수십만 개의 알트 라이트(alt-right; 대안우파) 트위터 계정을 분석했다. 프로필에 가장 흔히 나오는 단어는 ‘MAGA’였으며,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 조합은 ‘트럼프 지지자’(Trump supporter)였다.

ⓒGetty Editorial

 

이같은 일이 소셜미디어에서만 목격되는 것은 아니다. MAGA 모자와 슬로건은 영국에서 열린 반(反)무슬림 활동가 토미 로빈슨 지지 시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이후 호주의 배너에도 등장했다. 유럽의 유명한 백인 국수주의자들은 동료 시민들을 괴롭히기 위해 이를 악세사리로 활용한다.

캐나다의 극우들은 특히 MAGA 의류를 좋아한다. 백인 국수주의 미디어 인물들, 반(反)인종차별 시위를 방해하려는 극우 트롤들이 즐겨 입는다. 무슬림을 대놓고 ‘오물’(sewage)라고 칭하는 캐나다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반대세계연합(World Coalition Against Islam) 회장은 유세에서 MAGA 모자를 자주 쓴다.

“캐나다에서 MAGA 모자는 증오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다른 캐나다인들, 특히 여성과 유색인종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것이다.” 극단주의를 모니터하는 캐나다 반증오네트워크(Anti-Hate Network)의 이반 발고드가 이메일로 전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소매업체인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최근 ‘Make Canada Great Again’ 모자를 판매했다가 대중의 반발이 일자 사과하며 제품을 매장에서 제거했다.

ⓒGetty Editorial

 

미국 밖에서 보이는 MAGA 심볼들이 극단주의들만의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부류가 이 심볼들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반이민, 반무슬림 정치인들이 트럼프와 관련된 슬로건과 용품들을 사용해 왔다.

이탈리아 극우 정당 ‘동맹’(League)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는 집무실 책장에 MAGA 모자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고 ”이탈리아인 우선(Italians First)” 유세를 열었다. 네덜란드의 이슬람 혐오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네덜란드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반이민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베아트릭스 폰 스토르크는 선거 유세 중 ”독일을 다시 안전하게(Make Germany Safe Again)”라고 적힌 빨간 모자를 썼다. 스토르크는 무슬림을 상대로 한 증오를 부추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전세계 극우주의자들은 트럼프의 레토릭을 흉내내서 자기 나라에서 국수주의 정서를 부추길 뿐만 아니라,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 세계에 반이민, 반기득권 운동에 대한 지지가 커지고 있다는 자신들의 내러티브를 강화하는 데 트럼프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 “이슬람은 우리를 증오한다”고 말하며 무슬림의 이민을 금지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다른 지도자들도 비슷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는 반무슬림 선거 운동을 했다. 취임 후 반무슬림 정책을 폈다.” 영국의 반인종차별 단체 ‘증오가 아닌 희망(Hope Not Hate)’의 캠페인 디렉터인 매튜 맥그레거의 말이다. “트럼프는 극우를 부추겼고,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ALEX EDELMAN via Getty Images

 

극우 극단주의자들은 오래 전부터 대중과는 분리되는 자신들만의 심볼, 슬로건 등에 집착해왔다. 일부 극단주의자 단체는 북유럽 심볼을, 다른 이들은 ”하일 히틀러”를 대신 “88”를 쓰는 식으로 살짝 가린 나치즘 표현을 써가며 운동에 동참하는 다른 이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유럽의 네오 나치 단체들은 심지어 시위에 미국 남부연합기를 들고 나올 때도 있다. 그렇게 보면 트럼프가 백인 국수주의의 입구라고 보는 극단주의자들이 트럼프의 상징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그런 시각을 가져도 괜찮은 게 분명하다는 정당성을 그들에게 부여한다.” 캐나다 반증오네트워크의 인권 활동가 아미라 엘가와비의 말이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총기난사범과 폭력적 네오나치들이 일반적인 정치인을 지지한다면, 그는 억지로라도 그들을 규탄하고 극단주의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레토릭과 심볼에서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트럼프는 샬럿츠빌의 백인 국수주의자 시위에서 “양쪽에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조지 소로스에 대한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이 퍼지는 것을 도왔고, 백악관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주장을 퍼뜨렸다.

크라이스트처치 테러범의 선언서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부분이 있다. 트럼프에 대한 여러 극우 극단주의자들의 시각을 담고 있다. 테러범은 트럼프의 정책 중 일부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트럼프를 “새로워진 백인 정체성과 공통의 목적의 상징”이라며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다음 날, 트럼프는 다시 한 번 백인 국수주의의 위협을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민을 중단되어야 할 ”침략(invasion)”으로 규정했다. 백인 국수주의자들이 쓰는 것과 똑같은 단어로 이민을 지칭한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의 심볼리즘이 아직도 극단주의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였다. 트럼프는 그들의 시각이 그들만의 것이라고 말해줄 만한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면, 페리 교수의 표현대로, “트럼프는 지금도 그 모자를 쓴다.”

 

* 허프포스트US의 How Far-Right Extremists Abroad Have Adopted Trump’s Symbols As Their Own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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