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다니는 막내딸이 딸을 낳았단다. 그 딸집에 가서 딸의 딸을 키우느라 3년 만에 병원에 온 할매다. 다행히 그렇고 그런 어렵지 않은 감기다.
- 주사실 드가서 시원하게 궁딩이에 주사 한방 맞고 가셔. 월요일에 다시 오시고.
“근데….”
- 근데?
“길에서 보면 이제 몰라보겠네.”
- 저요? 왜요?
“얼굴이 좋아졌어, 원장님.”
- 살쪘다는 소리네.
할매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아니, 아니, 좋아졌다고. 얼굴도 허여지고.”
- 운동도 안 하고 실내에서만 빈둥거려서 허옇고 뚱뚱해졌다는 소리네.
할매 눈동자가 좀 전보다 세 배는 더 흔들린다.
“아니, 그게 아니고.”
- 그게 아니믄, 뭐.
“잘생겨졌다고.”
- 전엔 얼마나 못생겼기에 지금 못 알아볼 정도라는겨.
나는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오히려 미간을 살짝 찌푸려 본다.
“아니, 내 말은 그니까, 그게….”
결국 할매는 고개를 살짝 돌린다. 고개를 돌린 건 더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막다른 길에서 할매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이었을지도 모른다.
- 길에서 보면 내가 먼저 아는 척할 테니 못 알아볼 걱정하지 마시고, 약 잘 챙겨 드시고 월요일에 다시 오세요.
“그래, 월요일에 올 거여. 근데….”
- 뭐가 또.
“잘생겨졌다니까, 진짜로.”
- 알았어. 나 바쁘니 얼른 가셔. 차 조심하시고.
다음 환자를 만나고 있는데, 진료실을 나가 처방전 받으러 접수대에 선 할매가 기어코 혼잣말을 한다. 온 병원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는 것도 모자라 건물 밖으로 새어 나가기에 부족함 없는 100데시벨짜리 혼잣말이다.
“우리 원장님, 참 잘생겼어.”
그래. 할매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그냥 잘생긴 걸로 하자고. 난 잘생긴 거였어. 좀 사악하긴 하지만.
* 에세이 ‘괜찮아, 안 죽어’(21세기북스)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