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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09일 11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09일 11시 06분 KST

사이비 학문과 공정위

한국 학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francescoch via Getty Images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가 낙마했다. 오믹스라는 가짜 학회 참석이 결정타였다. 와셋·오믹스 등의 가짜 학회 문제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에 의해 지난해 공개되어 국내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지난 5년간 두 단체의 학회에 참가한 기관은 전체의 40%, 서울대-연세대-경북대 차례로 참가자 수가 많았고, 대학 83곳, 출연연 21곳, 과기원 4곳 모두에서 참가자가 나왔다. 1317명이 사용한 출장비만 14억원이다. 2013년부터 가짜 학회를 꾸준히 추적해온 제프리 빌의 리스트에 따르면 출판사 1천여곳과 학술지 수천개가 있다. 정부는 이들 중 겨우 출판사 2곳을 조사했을 뿐이다.

2015년 한해에만 국내 박사 1만3천여명이 배출됐고, 박사학위자는 매해 1만여명씩 증가 추세다. 학위를 받아도 5명 가운데 1명이 실업자 신세이니, 현대사회는 고학력 인플레이션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가짜 학회에 참석한 사람 대부분은 그렇게 어렵다는 학위과정을 마치고,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은 뒤에야 대학과 연구소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가짜 학회에 간다.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가짜 학회를 만든 사기꾼들이 아니다. 매해 1만명씩이 쏟아져 나오는 학위공장, 그 학위로 장사를 하는 대학, 학문을 천박하게 계량화하려는 관료주의, 학자의 연구비로 고수익을 올리는 거대 학술지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을 혁신하기는커녕 여기에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학술 종사자 모두가 공범이다. 학술 생태계는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가짜 학회는 빙산의 일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도권에 정착한, 가면을 쓴 사이비 학자들이다.

얼마 전 장난처럼 혈액형별 성격을 학술연구정보서비스에서 검색했다. 가장 먼저 검색되는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혈액형, 성격특성, 인지양식, 인지적 특성 및 부모 양육태도가 유아의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 엉터리 학위를 수여한 기관은, 뇌교육을 빙자한 사이비 학문으로 유명한 사람이 총장으로 있는 종합대학원이다. 교육기관을 흉내 낸 이곳은 벌써 박사학위자 300여명을 배출했고, 한때 국가과학기술 자문위원까지 지낸 학자를 이사장으로 모시고, 사이비 과학과 점술, 사주, 동양사상 등을 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학위장사 중이다. 심지어 이들이 발행하는 학술지 가운데 하나는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인증을 받은 정식 학술지다.

사주팔자, 수맥, 풍수, 창조과학, 제로존 등으로 검색되는 논문만 수천편, 제도권 교육기관에 자리 잡고 사이비 학문으로 논문을 출판하는 학자만 1천명이 넘는다. 한국은 집계된 학회만 3천곳이 넘고, 이들 중 몇곳이 제대로 운영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업화된 대학이 학위공장으로 학위를 남발했고, 정부의 눈먼 지원이 이들을 키웠다. 주변에서 마주치는 학술 종사자의 절반이 사이비라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 그게 한국 학술 생태계의 민낯이다.

최근 미국 법원은 오믹스에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영업행위 중단을 명령했다. 미 연방거래위원회의 청구를 연방법원이 공판 절차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미 연방거래위원회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한다. 한국 정부는 가짜 학회 참가자로부터 연구비를 회수하는 정도의 소극적 행동만 취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번 기회에 아예 가짜 학회를 뿌리 뽑으려는 것이다.

정부에 묻고 싶다. 학문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 수많은 사이비들을 그냥 놔둘 생각이냐고. 그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이런 사이비 학문의 출판에 국민 세금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학술 생태계의 자정능력은 이미 신뢰할 수 없다. 장관 후보자가 가짜 학회에 가는 세상이다. 이대로 두면 사이비와 진짜를 구분하는 일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미 사이비 학자들은 제도권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학술 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감시가 필요하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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