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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10일 15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10일 17시 03분 KST

스스로 기록하기, 데이터로 저항하기

스스로 기록하기, 데이터로 저항하기

분석에 근거한 가장 성소수자일 가능성이 높은 얼굴의 구조적 특징

누가 게이일까요?

요즘 시대를 살아가면서 AI나 딥러닝이라는 단어를 듣기란 어렵진 않죠. 이와 관련해서 2017년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발표되었습니다. 바로 딥러닝을 활용하여 이성애자인 여성/남성과 동성애자인 여성/남성을 구분하는 일이었죠.

결과는 위 사진과 같이, 매우 노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얼굴의 특징에 따라 남성의 경우 80% 정도, 여성의 경우 70% 정도로 성적 지향을 일정하게 분류할 수 있던 것이죠. 물론, 연구에는 수많은 결함이 존재했고, 많은 연구자로부터 방법론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연구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연구가 새로운 감시의 시대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위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것입니다.

AI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삶이 디지털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생체정보를 바탕으로 금융, 공공기관 거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매일 개개인 핸드폰의 안면 인식 기술을 통해 잠금이 풀리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죠.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의 데이터는 도덕적으로만 쓰일 수 있을까요?

한편, 이렇게 데이터가 권력이 되어버린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작품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앞의 스탠포드 대학의 논문과 같은 시도를 직설적으로 비판한 자크 블라스(1981-, 미국)의 예술 작품 <얼굴 무기화 세트>는 안면 인식 기술로 탐색될 수 없는 비정형의 가면을 만들어냄으로써 ‘동성애자의 안면 인식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적 지향을 판단하고자 한 기술’이 보여주는 불평등에 저항하고자 했습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자크 블라스의 영상물 <얼굴 무기화 세트>

물론 이러한 안면 인식 기술까지 가지 않아도, 성소수자 당사자들을 통해 생산되고 있는 데이터는 다양하죠. 최근 미국 정부는 현재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게이 데이팅 앱 그라인더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한 중국 기업에게 ‘중국 정부가 미국의 (게이)관료들을 협박하기 위해 앱에서 기록되고 있는 개인 데이터를 활용할 우려’가 있다며 그라인더의 지분을 팔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핫토픽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중 간 그라인더 이슈

물론 그 내막은 그들만이 알겠지만, 적어도 이 사건은 미국 정부 역시 게이 데이팅 앱을 필두로 한 게이 네트워크 서비스 데이터가 어떻게 정부로부터, 기업으로부터 활용될 수 있는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과연 그라인더를 필두로 한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등의 게이 네트워크 인터넷 서비스가 지니고 있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이메일 주소, 암호, 금융 거래 기록, 위치 정보, 프라이빗 사진, 그리고 메시지와 같은 데이터는 앞으로 성소수자 인구집단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첨단 기술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분석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가.

자동화된 불평등

한편, 데이터를 통한, 데이터에 의한 불평등의 문제는 특히 도시정책에서 오랫동안 다뤄져 온 이슈입니다. 빅데이터라고 불리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많은 도시계획가들은 데이터에 근거한 ‘합리적’인 도시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래 있는 그림은 한 때 미국에 존재했던, ‘레드 라인’이라는 주택 정책에 관한 지도입니다. 여기서 레드 라인이란, 대공항 시절 주택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주거용 대출의 정도를 ‘관리’했던 일종의 규제 정책으로 지역 내 밀집해있는 인종, 소득 수준 등의 정도를 바탕으로 지역에 따라 대출 서비스의 정도를 체계적으로 차등한 정책을 의미합니다.

데이터에 근거한 인종차별적인 도시정책의 대표적인 사례, 레드라인​의 지도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내가 사는 거주지가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일수록, 아시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일수록 주택 담보 대출의 정도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어때요? 쉽게 동의가 되시나요? 물론, 적정한 규모로 대출을 관리하고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대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하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그 무엇보다 합리적인 정책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람직한 정책이었을까요?

[그림6] 신한카드에서 2018년 발표한 서울 생활금융지도

한국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정책이 수립되고 관리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이미 도시 정책의 주류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빅데이터로 지역별 범죄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범죄 지역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범죄에서 안전한 도시를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 카드사별로 지역 내 카드매출액의 흐름을 세밀하게 관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금융 정책을 수립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움직임들이니까요.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볼까요? 스마트시티(Smart city)라는 단어가 범람하고, 실시간의, 즉시적인 데이터 분석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일상적인 지금, ‘객관적인’ 정책을 통해 합리적으로 배제될 수 있는 소수의 문제들, 그중에서도 성소수자에 관한 문제를,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기록하기

물론, 아직까지 이러한 국가 혹은 기업 차원의 움직임을 온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물음에는 (저 역시도)회의적입니다. 빅데이터라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 다발과 머신러닝, 더 나아서는 딥러닝이라는 빠르고 직관적인 분석 툴이 지니고 있는 감시와 관리의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주체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빅데이터 사회 속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AI연구가 지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기사' 내 이미지

그러나 퀴어라는 것을 ‘무언가 정해진 것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움직임’ 그 자체라고 정의한다면, 적어도 국가에 의해서, 기업에 의해서 생산되고, 기록되고, 관리되는 현실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첫 번째 사례는 유동적으로 나타나는 일상의 지리를 퀴어링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인터넷 기반 상호교류형 지도만들기 프로젝트입니다.

[그림8] QUEERING THE MAP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제작자는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제작자는 “특정한 게토로 형성되어 있는 건물과 지역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적으로 감소하면서 ‘퀴어한 공간’에 대한 개념이 추상적이고, 유동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공원의 벤치, 주차장, 교실, 혹은 영화관과 같이 일상의 공간에서 유동적이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의 퀴어한 기억을 기록하고자 했음”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2010년대 이후 빠르게 보급된 스마트폰과 함께 게이 데이팅 앱을 사용하는 세대가 누리고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굳이 종태원에 나오지 않아도 대학교 도서관 화장실에서, 근처 공원의 으슥한 곳에서, 옆집에 살고 있는 자취방에서 본인의 섹슈얼리티를 맘껏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이 프로젝트는 바로 이러한 일상의 공간들 속에서 재현되는 퀴어함을 기록하고 남기고자 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서구권 대학의 도시/지리 연구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지리적으로 고정된 퀴어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입니다.

아래 그림은, 영국 런던의 UCL에서 2018년 동안 이뤄진, 런던 내 퀴어공간의 감소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붉은 색 지도는 붉은 색이 진해지면 진해질수록 퀴어공간(정확하게는 일정 건축물 내 퀴어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장)이 더욱 많이 감소한 지역임을 의미합니다.

[그림9] UCL에서 발간한 LGBTQ의 야간 공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첫 번째 사례 프로젝트가 비제도권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퀴어한 기록을 데이터화하기 위한 저항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사례들은 보다 제도권적인 차원에서 지리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군집되어 있는 퀴어 공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학문적, 정책적 논의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밑줄 참조). 즉, 이러한 대학의 연구소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논의를 통해 우리는 보다 제도권적인 차원에서의 퀴어 공간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 남기고, 이를 바탕으로 어떠한 방향의 ‘합리적’인 개선안을 제시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게 됩니다.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는 퀴어한 공간의 학문적, 정책적 과제들에 대한 논의들 (좌측부터 1, 2, 3, 4)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면, 지금 현재 한국 내 성소수자 커뮤니티 중 종로와 이태원, 홍대입구 일대에 넓게 군집하고 있는 상업적인 퀴어 공간에 관한 여러 질문이, 동시대적으로 지구 반대편에서도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즉, 그들 역시도 스마트폰의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지리적으로 고정된 퀴어 공간의 이후에 대해 이제 막 고민을 시작했으며, 아직까지 그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종로와 이태원, 마포 일대 한국의 퀴어 커뮤니티가 나아갈 방향은 어느 곳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을 마치면서 저에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기록을 통해 남겨진 데이터가 가진 힘이자, 권력은 결국 누가 ‘데이터의 원본’을 지니고 있으며, 그 데이터의 해석을 ‘어떠한 관점’에서 진행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 과연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다른 성소수자들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을 ‘언제’ 문제라고 느끼게 될까요?

2) 그리고, 친구사이를 필두로 한 한국의 여러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추후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정책 결정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요?

글 : 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