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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현관문을 열어주다

말하는 유인원은 기이한 실험이었다.

말하는 침팬지 ‘님 침스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젝트 님'
말하는 침팬지 ‘님 침스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젝트 님'

2017년 8월, 말하는 오랑우탄 ‘찬텍’이 세상을 떠났다. 찬텍은 미국 여키스영장류연구센터에서 태어나 야생의 경험이 없었다. 여덟 달째, 창살 밖으로 빠져나오는 행운을 잡았다. 인간 가정에 입양돼 기저귀를 차고 젖병을 물고 수화를 배웠다. 자동차를 타고 밖에 나가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 사람들은 스타를 본 듯 좋아했다. 그러나 여덟 살 때 대학 도서관에서 한 여학생을 공격하는 사고를 친 뒤, 고향인 여키스영장류연구센터에 다시 갇혔다. 좀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애틀랜타 동물원에 보내졌지만, 다른 오랑우탄을 ‘오렌지 개’라고 부르던 찬텍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를 입양한 ‘대리모’ 인류학자 린 마일스가 방문할 때면 “엄마 린” “차에 가자” “집에 가자”라고 손짓하던 찬텍은 결국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라지는 말하는 유인원들

말하는 침팬지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님 침스키’는 더 거친 역정을 살다 갔다. 오클라호마대학 영장류연구시설에서 태어난 침스키는 뉴욕 한복판으로 나와 수화를 배웠다. 마찬가지로 한두 살 나이를 먹자 사람 얼굴을 긁어 신경을 손상시키고 제멋대로 집기를 부수었다. 침스키는 다시 오클라호마대학 영장류 우리로 소환됐고, 연구소가 재정난에 처하면서 간염과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던 뉴욕대 렘시프(영장류약물외과실험연구소)에 팔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붙은 구조운동으로 침스키는 풀려날 수 있었다. 침스키는 한 동물단체의 동물보호소에서 살다가 2000년 3월 여생을 마쳤다.

고릴라 중에는 ‘코코’가 유명했다. 코코는 찬텍이 떠난 이듬해인 2018년 6월 세상을 떠났다. 찬텍이나 침스키에 비해 평탄한 삶을 살았다. 1971년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서 태어난 코코를 한 연구자가 맡아 죽을 때까지 함께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 있는 사육시설에서 코코는 수화를 배우며 살았고, ‘올 볼’이라는 고양이와 친구가 되고,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와 인연을 맺었다.

지구에는 이처럼 인간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동물이 극소수 있다. 바로 ‘말하는 유인원’들이다. 1960~70년대 과학 연구의 산물로 만들어진 이들은 이제 나이 들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학문적 호기심에서 출발한 실험이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떻게 탄생했으며(인류학), 어떻게 발달하는가(심리학)에 대한 해답을 동물에게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 유전자의 97% 이상을 공유한 유인원의 새끼를 인간 사회에 노출시킨 뒤 수화를 가르쳐보기로 했다(언어는 사회적으로 학습되기 때문이다). 대개 연구원 가정이 동물을 입양했고, 인간 가족과 사회적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대담하고 혁신적인 연구 방법은 동물에게는 근시안적이었고 무책임했다. 그들은 연구가 파국으로 이어지리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동물이 나중에 느낄 정체성 혼란을 깊이 염두에 두지 않았다. 유인원 새끼는 나이 들면서 ‘괴물’이 되어간다. 팔의 근력은 사람에게 골절을 일으킬 만큼 세지고, 이빨은 신경을 절단할 만큼 날카로워진다. 마치 괴물을 집 안에 들인 것처럼 연구자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그래서 찬텍이 소환됐고, 침스키나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차피 창살에 갇혀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실험은 개미 앞에서 돋보기를 쥔 어린아이의 철없는 장난과 같았다.

침팬지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가

연구자들은 왜 예정된 파국을 알면서도 동물을 집 안에 들였을까? 물론 실험이 행해진 당시는 동물에 대한 태도가 지금보다 훨씬 모순적이었다. 의학 실험실과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소의 침팬지들이 바이러스를 주입받거나 무중력 실험에 동원돼 기계에 묶여 뱅글뱅글 돌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사람은 먼 미래의 일은 제쳐두는 경향이 있다. 연구자들은 그들을 진심으로 가족처럼 대했다. 귀여운 새끼의 행동이 그들의 마음을 빼앗았거니와 그게 연구 성과에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이 흘러 사람이 다치는 등 양자택일의 순간이 왔을 때 연구자들은 등을 돌렸다.

유행처럼 확산되던 실험은 허버트 테라스가 1979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실은 ‘침팬지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논문과 함께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전까지만 해도 유인원의 ‘놀라운 언어 능력’이 다른 저명한 학술지의 표지를 장식했기에 이 논문은 적잖은 충격을 가져다줬다. 침스키를 연구하던 테라스는 침스키가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장을 만들 수 없었다며 기존 태도를 바꿔 침팬지에게 언어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에는 ‘영리한 한스 현상: 말, 고래, 유인원과 사람들의 의사소통’이라는 제목의 뉴욕과학아카데미 총회가 열렸다. 영리한 한스는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사람이 낸 산수 문제에 발로 땅을 쳐서 답하는 동물로 유명했는데, 나중에 사람의 무의식적인 신호를 포착해 정답을 맞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인원 수화 실험은 조롱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수화를 배운 유인원은 수백 개에서 많게는 1천 개 이상의 어휘를 구사했다. 몇 개의 단어를 연결함으로써 구문 능력의 초기 버전을 보여주었다. 이건 언어 능력이 아니란 말인가? 언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유인원 연구자들이 동물의 언어 능력을 보고하면, 전통적인 언어학자들은 축구장의 골대를 옮기는 식으로 대응했다. 맨 처음엔 상징을 쓰는 게 언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복잡한 문법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양 진영의 다툼에 얽힐 것 없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동물에게 인간의 언어가 필요할까? 만약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이 당신을 납치해 8개 다리와 빨판과 먹물을 이용하는 언어를 가르친다면 배울 수 있을까? 설령 어설프게 구사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인간이 진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550만 년 전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다. 따라서 두뇌를 비롯한 신체 기관의 용도와 능력의 최대치가 각각의 부문에서 다르다. 이런 점에서 유전자는 결정적이다. 침팬지에게 수화를 계속 가르쳤더라도 어느 순간 한계에 부닥쳤을 것이다.

최근 연구자들은 동물이 쓰는 인간 언어가 아닌 그들 자체의 언어를 연구한다. 야생 침팬지들은 숲의 세계에서 그들만이 쓰는 몸짓으로 의사소통한다. 우간다의 연구자들은 이를 오랫동안 관찰해 ‘여기 와’ ‘길을 잃었어’ 등 58개 몸짓 언어와 2천 개의 사용 예를 기록했다. 실제 침팬지의 ‘진짜 언어’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나는 인간인가 침팬지인가

말하는 유인원은 과학 역사에서 가장 대담하고 기이한 실험이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말까지 심리학계와 인류학계에 불어닥친 이 열풍은 20마리 이상의 ‘반인반수’라는 사회적 이종을 만들었다. 그들은 지금 철창에 갇혀 여생을 보낸다. 일부는 동료에게 수화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구 생태사에서 가장 기이한 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묻는다. 나는 인간인가, 침팬지인가.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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