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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미래당에서 '대표가 사퇴할 때'라는 말이 나온다. 손학규의 '타이밍'은 다르다.

4·3 보궐선거 참패 이후, 바른미래당이 흔들리고 있다.

  • 허완
  • 입력 2019.04.08 19:04
  • 수정 2019.04.09 10:01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4·3 보궐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가 모두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바른미래당 당 대표에 선출된 손 대표가 당기를 흔드는 모습. 2018년 9월2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4·3 보궐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가 모두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바른미래당 당 대표에 선출된 손 대표가 당기를 흔드는 모습. 2018년 9월2일. ⓒ뉴스1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게는 걱정거리가 많았다.  

″우리 경제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대응은 안이하기 그지없습니다.” 손 대표가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말했다.

손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비판을 새겨 듣지 않고 있다고 말했고, 정부가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느라고” 노동개혁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국회가 반대했는데도 청와대가 장관 후보자들의 임명을 강행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 원로들을 초청해놓고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니 정말 나라가 걱정입니다.” 손 대표가 말했다. 이날 첫 번째로 언급한 ”걱정”이었다.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해서 기업이 투자할 매력을 줘야 하는데, 또 노동개혁의 분위기를 만들어야지 기업이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투자할 의욕을 가질 텐데... 아주 큰 걱정입니다.” 손 대표의 두 번째 ”걱정”이다.  

″오늘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를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고 보도가 나오는데... 이렇게 국회를 무시하고 어떻게 정국을, 정치를 이끌어 나갈지 걱정입니다.” 손 대표가 다시 한 번 ”걱정”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에게는 더 큰 걱정이 하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84차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권은희, 하태경, 이준석 최고위원이 불참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84차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권은희, 하태경, 이준석 최고위원이 불참했다. ⓒ뉴스1

 

″이러니 국민들이 허망한 겁니다.” 정치 경력 26년차인 손학규 대표의 진단이다. 그는 한 달 넘게 창원에서 먹고 자면서 선거를 도왔다. 틀림 없이 많은 주민들을 만났을 것이다. ”창원 선거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찍을 사람이 없다’ 이겁니다.”

찍을 사람이 없어도 당선자는 나오기 마련이다. 3일 치러진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정의당 여영국 후보는 4만2663표를 얻어 당선됐다.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보다 정확히 504표를 더 얻었다.

창원 주민들은 바른미래당 이재환 후보에게 3334표를 줬다. 민중당 손석형 후보(3540표)에게도 밀렸다. 국회 의석수로만 따지면 민중당은 바른미래당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29명 대 1명. 이것은 선거참패였다. 

손 대표의 말을 빌자면 ‘찍을 사람이 없었던 선거’였지만 결국 주민들은 누군가를 찍었다. 그게 바른미래당 후보는 아니었다.

큰 선거에 여덟 번 출마해 다섯 번 이겼던 손 대표는 선거 결과를 이렇게 분석했다. 

″정부, 문재인 대통령 싫고, 제 1야당, 뭐 우리가 오랫동안 보수 정당이지만 그것 또한 싫고 찍을 사람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결국 거대양당 구도, 좌우분열 체제의 원심력이 크게 작용을 했습니다.” 

4·3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3월29일 오후, 경남 창원 상남시장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이재환 창원·성산 보궐선거 후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4·3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3월29일 오후, 경남 창원 상남시장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이재환 창원·성산 보궐선거 후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원심력은 바른미래당 안에서도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의 지도부 7명 중 5명이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다. 바른정당 출신 최고위원 3명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총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 최고위원들이 많이 못나오셨네요. 하태경 최고위원은 나왔다가 들어가시고, 이준석 최고위원, 또 권은희 최고위원, 권은희 정책위의장, 김수민 청년위원장이 못 나오셨습니다. 지역사정이나 다른 일이 있어서... 오늘은 뭐 의결사항은 없으니까 그대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 당 대표 8개월차인 손 대표가 회의를 시작하면서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설명했다.   

″우리 당의 많은 의원들, 지역위원장들, 당원들이 다음 선거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손 대표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리고는 곧 목소리를 한껏 높여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다음 총선거는 다를 것입니다. 집권여당의 노조세력과 제1야당의 공안세력은 다음 총선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무너질 겁니다. 여야의 균열 속에 중도세력의 입지가 확대될 것입니다.” 손 대표가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Huffpost KR

 

불행하게도 당 최고위원들 중에는 손 대표의 이 낙관적인 전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선거 이틀 뒤인 5일 당 최고위원과 국회의원들이 함께 참석한 회의는 바른미래당의 현재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대로 가서는 죽도 밥도 안 됩니다.” 바른정당 출신 권은희 최고위원은 당의 공식 회의에서 이렇게 대놓고 말했다. ”손 대표님께서 결단을 하시면 됩니다.”

″오늘 하게 될 발언이 다소 예의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같은 회의에서 이준석 최고위원도 운을 뗐다.

”지도부는 열심히 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겠지만, 이런 수많은 판단 미스가 있었기 때문에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그 진정성이 더 이상 신뢰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최고위원은 바른미래당이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제 새로운 지향점과 지도체제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싫다면 최소한 재신임 투표라도 해야 됩니다. 그것도 안 되고, 그것이 절차적으로 복잡하다고 여긴다면 당장 오늘부터 바른미래당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해서 현 지도체제에 대한 여론조사라도 시행했으면 합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 하태경 최고위원 등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 하태경 최고위원 등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반면 한나라당과 무소속, 민주당, 국민의당을 거쳐 바른미래당 소속이 된 이찬열 의원(경기 수원갑)은 전혀 다른 대책을 제안했다. 그는 한나라당 시절부터 줄곧 ‘손학규계’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몇몇 의원들의 내부총질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우리는 콩가루 정당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3.57%, 제가 봤을 때는 1%도 안줘야 맞는 바른미래당입니다.”  

이 의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금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당의 존재 이유를 따져물었다. ”왜 여기 있습니까? 우리가 왜 같이 해야 합니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해 바른미래당이 생긴 지 1년2개월 만의 일이다. 

″이제 깨끗하게 갈라서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저는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도니 보수니 국민들은 아무 관심 없습니다.” 이 의원이 말했다.

″이 문제로 더 이상 논쟁하면 선거 한 번 더 치러보세요. 0.8% 이상 안 나옵니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뭉쳐서 새 집을 짓고, 끝없는 단결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84차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84차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겨레) 성한용 기자가 얘기를 했습니다.” 8일 손학규 대표가 대뜸 최근 발행된 한 기사를 인용했다. 

″‘거대양당의 기득권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층이 실제로 두텁게 존재한다. 내년 총선까지 바른미래당은 인고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맞습니다. 성 기자는 ‘어떻게든 교섭단체를 유지하고 총선에서 기호 3번을 확보할 수 있으면 제 3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제 3세력으로 살아남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중간지대, 중도세력의 확대로 우리가 새로운 주력군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손 대표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것은 낙관과 전망, 기대, 불안, 의지가 뒤섞인 말이었을 것이다.

손 대표가 소개한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리더십을 갖춘 인물과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 내용을 채워가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손 대표는 이 부분을 미처 인용하지 않았다.

성 기자는 ”바른미래당도 버텨야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라고 기사에 적었다. ”손학규 대표도 버텨야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얘기는 없었다. 물론,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 기자는 그동안 ”봉합 상태”로 지내온 바른미래당이 ”한계”에 온 것 같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다만 한계에 이르렀다는 바른미래당이 앞으로 어떻게 더 ‘버텨야’ 미래가 열릴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바른미래당은 중도를 표방하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개혁 보수를 표방하는 유승민 대표의 바른정당이 합친 정당입니다. 합당 과정에서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탈당한 것도 이념과 노선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안보 보수’를 이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유승민 대표와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합당 이후 국민의당 출신과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이념과 노선이 달랐지만, 봉합 상태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계에 이른 것 같습니다. (한겨레 4월7일)

 

손학규 대표에게는 ‘타이밍의 마술사’라는 웃지 못할 별명이 있다. 그가 중요한 결정이나 발표를 할 때마다 늘 더 큰 사건이 벌어졌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번번이 타이밍을 잘 못 잡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물론 그는 (‘적중률’과는 무관하게) 타이밍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입니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저의 생활철학입니다. 지금은 제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2014년 7월31일, 손학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하며 했던 말이다. 낙선(경기 수원병) 바로 다음날이었다.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오랜 신념입니다. 저는 이번 7·30 재보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당시 그는 이런 말을 남기고 전남 강진의 ‘토굴’로 들어갔었다. 

정계 복귀 30개월째인 손학규의 ‘타이밍’은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의 판단으로는.

″지금 당 대표 그만둔다? 누가 할 거예요?” 8일 최고위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손학규 대표가 반문했다.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31대 경기도지사, 민주당 대표, 4선 국회의원 등을 지낸 그는 무척 억울한 듯 보였다.

″아니, 나는, 내가 여러분들, 나를 어떻게 보실지 모르지만 나 욕심 없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당 대표한다고 그게 그동안의 내 경력이나 내 뭐 저 이런 걸로 봐서 뭐가 그렇게 큰 영광이라고 이걸 그냥 뭐 붙들고서 아우성치겠습니까?”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선거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당 대표를) 바꿔라? 어림없는 소립니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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