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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료원이 환자 등 145명 전원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었던 비결

"간호사가 '집이 불탔다'고 울면서도 그 와중에 환자를 대피시켰다" - 환자 보호자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이 525㏊를 태우고 5일 진화됐다. 불은 서남서풍을 타고 순식간에 영랑호를 건너 속초까지 번졌다. 영랑호 남동쪽에 자리 잡은 속초의료원에는 112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5일 새벽 불길이 의료원 입구까지 번졌지만, 환자 중에 부상자는 없었다. 환자들은 의료진의 발 빠른 대응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토성면에서 산불이 난 직후인 4일 오후 7시30분께 관사에 머물던 속초의료원 김진백(58)원장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곧장 병원 내 재난대책본부를 꾸렸다. 불씨는 이내 면적 1.21㎢의 영랑호를 거뜬히 뛰어넘었고, 속초시청으로부터 영랑호 인근 야산에 불씨가 접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 원장은 곧장 모든 직원을 의료원으로 비상소집했다. 

4일 속초의료원으로 불이 번지자 병원 관계자들이 환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있다. 
4일 속초의료원으로 불이 번지자 병원 관계자들이 환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있다.  ⓒ뉴스1 (강원일보 제공)

저녁 8시께 의료원에서 29년째 일하고 있는 기획지원팀 전미숙(48) 팀장은 차를 몰아 영랑호 북쪽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용촌2리 집으로 퇴근 중이었다. 용촌 2리는 불길에 때문에 진입이 통제된 상황이었다. 그때 의료원에서 ’비상소집 문자가 날아왔다. 전 팀장은 자신의 집을 보지도 못한 채 의료원으로 차를 돌렸다.

대피 차량으로 가득한 도로를 뚫고 1시간 걸려 의료원에 도착했다. 1층 로비가 연기로 자욱한 상황. 뉴스와 긴급재난 문자를 보고 놀란 환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1층으로 몰려들었다. 455m 떨어진 ‘보광사’에 불이 붙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밤 10시께 김 원장과 전 팀장 등 의료원 직원들은 환자 대피를 시작했다.

우선 환자들에게 마스크를 공급했다. 움직임이 불편한 환자들은 침대에 눕힌 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구급차에 태웠다. 속초시청에 전화해 가까운 대피소를 확인한 뒤 일부 환자는 그곳으로 이동시켰다. 구급차가 부족해 직원들의 차를 사용했다. 장례식장에도 4곳의 빈소가 마련돼 있었다. 직원들은 빈소 손님들도 모두 인근 숙박시설로 대피시켰다.

속초의료원 입원환자 112명과 의료원으로 대피해 온 인력 등 145명을 집과 대피소, 근처 병원으로 옮기는데 2시간30분이 걸렸다. 그동안 직원들과 의료원 내 자위소방대원들은 의료원 관사 20m 앞까지 들이닥친 불씨와 사투를 벌였다. 5일 새벽, 불씨는 의료원 입구에서 멈춰 소멸했다. 

6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속초의료원에서 전미숙(48) 기획지원팀 팀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전씨는 이번 화재로 용촌2리 집이 전소된 이재민이기도 하다. <br /></div><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9029.html?_fr=mt1#csidx1e3d1df1080908a8413186c249b21a3'></a>
6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속초의료원에서 전미숙(48) 기획지원팀 팀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전씨는 이번 화재로 용촌2리 집이 전소된 이재민이기도 하다. 
ⓒ한겨레

불길이 잦아든 새벽 2시께 의료원 직원들은 또 다른 업무를 시작했다. 이송된 환자들이 각각 어느 병원과 대피소로 갔는지 확인해 명단을 작성해야 했다. 진화가 완료되면 치료받던 환자들을 다시 데려와 치료를 계속해야 했다. 모든 상황이 마무리된 건 새벽 3시 무렵이었다.

전 팀장이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던 것도 이 시각이었다. 하지만 전씨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용촌2리 마을 입구는 여전히 통제되어 있었고, 병원 근처 친척집에서 남편, 중1 아들과 함께 밤잠을 설쳤다. “제발 우리 집은 불에 타지 않았기를…” 전 팀장은 간절히 기도했다.

통제가 풀린 새벽 6시께 마을로 달려간 전미숙 팀장은 그러나, 집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용촌 2리에서 불탄 4채 가운데 하나나 전 팀장의 집이었다. “너무 허탈했어요. 그래도 의료원에 아침 7시까지 출근하기로 했으니까…뒤돌아서 바로 의료원으로 갔죠.” 

ⓒ뉴스1

이를 앙다물고 의료원으로 돌아온 전 팀장은 새벽 난리 통에 의료원이 엉망진창이 되었음을, 재난을 떨치고 난 뒤에야 인식했다. 청소를 시작했다. 불길이 잦아들었으니 곧 환자들을 다시 데려와야 했다. 이송된 환자 112명 가운데 퇴원한 2명을 제외한 110명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다시 의료원으로 돌아왔다.

전 팀장은 돌아온 환자들을 보며 마음을 추슬렀다. “정말 뼈대만 남은 집을 보고 다시 병원으로 출근했어요. 그 모습을 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의료원을 다시 신뢰해주신 환자들에게 정말 감사했어요” 그렇게 속초의료원의 긴 하룻밤은 끝이 났다.

6일 오후 속초의료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의료원의 발 빠른 대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보호자 이명자(62)씨는 “5층 병실에서 재난 문자를 받고 밤 9시가 넘어 병원 1층 로비로 내려오니 연기가 자욱해 무서웠다. 남편이 고관절을 다쳐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데 병원에서 구급차를 태워 인근 병원으로 보내주고, 다시 병원으로 올 때도 구급차를 태워줬다. ‘집이 모두 불에 탔다’고 울면서도 그 와중에 환자를 대피시키는 간호사도 있었다. 너무 슬프면서도 고마웠다”고 말했다.

4일 낮에 천식으로 입원했다가 이날 밤 불로 인해 집으로 대피해야 했던 환자 임수천(79)씨 역시 “병원 직원, 편의점 직원 할 것 없이 모두 나서서 환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는 등 열심히 뛰어다녔다”며 “5일 아침 병원 직원들의 도움으로 원래 있던 3층 병실로 다시 입원했다. 직원들이 고생을 참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혼란과 개인적인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환자 대피에 모든 걸 쏟은 직원들과 빠르게 협조해준 인근 병원에 공을 돌렸다. “인근 병원이 환자 후송에 흔쾌히 협조해주는 등 도와준 덕분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 부끄럽습니다. 직원들의 재빠른 대응 덕에 환자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는 데 만족합니다.”

그러면서도 김 원장은 강원도 화재가 자신에게 한 가지 과제를 남겼다고 이야기했다. “중환자 등은 침대에 누워 이동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 보니 엘리베이터 사용에 시간이 오래 걸려 직원들이 들것으로 환자들을 옮기기도 했습니다. 실제 의료원이 불이 옮겨붙었 때 이 같은 외상 환자들의 대피 시간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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