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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06일 17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06일 17시 48분 KST

강원도 산불 진화작업이 거의 끝났다. 이 사람들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4011명 중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갔다. 636명은 집이 없어졌다.

한겨레
5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한 이재민이 배정받은 텐트로 들어가고 있다. 

5일 저녁 7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 강원도 일대에 번진 산불로 고성군과 속초시, 강릉시와 동해시 등에 차려진 임시주거시설 25곳에 한때 4011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대피한 가운데, 고성군과 속초 시내 일대 화재 최초 발생지인 고성군 토성면에는 63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는 123명, 아야진초등학교 나래관에는 56명 등이 대피했다. 934㎡(282평) 크기의 천진초등학교에는 4인용 텐트 39개, 2인용 텐트 10개가 설치됐고, 아야진초등학교에는 4인용 텐트만 30개 설치됐다.

이날 저녁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는 환풍기가 3대 설치되어 있었다. 화마의 여운이 가지시 않아 여러 군데에서 쿨럭이는 기침 소리가 났다. 곳곳에서 “머리가 너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얘기가 쏟아졌다.

박영희(59)씨 부부도 화마로 인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토성면 인흥리에 산다는 박씨는 4일 밤 화재로 파란 셔츠와 청바지, 평소 들고 다니던 작은 핸드백 하나만 들고 냅다 뛰어나왔다고 했다. 그는 “속초에서 우리 집이 가장 예쁜 집이었다”고 했다. 박씨의 남편 장홍기(66)씨는 그러면서 휴대전화 속에 저장된 집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불이 나기 직전인 4일 낮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Huffpost KR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 살던 박영희(59)씨와 남편 장홍기(66)씨가 불에 타기 전과 후의 집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5일 낮 12시께 부부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에 차려진 대피소로 왔다.

 

부부는 7년 전 서울 생활을 마치고 토성면으로 왔다. 그리고 181㎡(55평) 집 두 채를 지었다. 빨간 벽돌에 기와를 얹은 예쁜 집은 그러나, 강풍을 타고 산을 넘어와 한순간 덮친 불길로 벽돌 벽만 앙상하게 남은 채 재로 변했다. “대궐 같은 데서 살다가 이제 대피소 텐트로 와서…” 부부는 착잡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불이 난 직후였던 5일 새벽 고성군과 속초시, 강릉시와 동해시 등 임시주거시설에 대피해있던 4011명 가운데 대부분은 이날 오후 불길이 잡힌 뒤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토성면 천진초와 아야진초에 차려진 대피소는 집이 전소해 갈 곳이 없는 이재민들이 남은 곳이다. 강당에 마련된 대피소 앞에서 기업과 교회 등에서 자원봉사를 나온 이들이 이재민들에게 치약과 칫솔 등 생필품과 빵, 물, 콜라, 커피 등을 나눠줬다. 대피소 한켠에서 이재민들이 라면과 닭강정 등으로 식사를 했다. 대한적십자사에서 나온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부스도 마련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온 딸과 셋이서 천진초 대피소 부스에 자리를 잡은 정경자(72)·이태선(74) 부부는 기자가 ‘불이 얼마나 크게 났냐’고 물어보자 역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남편 이씨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에 있는 자신의 집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우리 집 타기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말했다. 사진 속 벽돌로 지어진 단독주택 집 앞에는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집이 다 타버렸어요. 이 사진 2개만 봐도 (피해 상황을) 딱 알겠죠?”

한겨레
천진초 대피소 부스에 자리를 잡은 정경자(72)·이태선(74) 부부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에 있는 자신의 집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속 벽돌로 지어진 단독주택 집 앞에는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사진 위) 하지만 아래 사진 속 집은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부부는 4일 밤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저녁 7시쯤이 되자 밖에서 조용한 마을에 유난히 차 소리가 시끄럽게 나기 시작했다. 7시20분께 정씨 휴대전화에 ‘산불이 났다’는 문자메시지가 왔고 집 커튼을 열자 바깥이 대낮처럼 환했다. 그렇게 몸만 뛰쳐나왔고, 집은 하룻밤이 지나면서 재로 변했다.

“언제까지 대피소에 있을지 모르겠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을 쓰는 바람에 지저분해졌습니다. 이런 불편한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고성군 토성면 용촌1리에서 왔다는 장인환(48)씨는 대피소 부스 밖으로 나와 연신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전날 밤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시는 탓에 목이 칼칼하고 목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장씨가 천진초로 오는 길은 그야말로 ‘피난길’이었다. 4일 저녁 용촌1리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고 7시가 넘어 속초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차를 타고 8분 정도 이동했는데, 방금 떠난 부모님으로부터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장씨는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하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5분 뒤 장씨는 어머니로부터 “집에 불이 붙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장씨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 부모님 집으로 달려갔다. 올 때 8분 걸렸던 곳인데, 돌아가는 데 15분이 넘게 쓰였다. 장씨는 불이 붙은 집에서 부모님을 대피시켜 용촌천 인근 다리에 세운 자신의 차에 태웠고, 차 안에서 6시간 동안 고립되어 있었다. 이후 천진초와 아야진초 사이를 오가며 왕복 40분을 걸어 ‘피난길’에 나섰다. 장씨는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운 뒤 5일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천진초에 대피소가 차려졌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 형과 함께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겨레
고성군 토성면 용촌1리에서 온 장인환(48)씨는 전날 밤 불을 끄느라 손이 까매졌다.

 

장씨 손은 새까매져 있었다. 장씨는 “아까 손을 씻고, 소독해서 깨끗해진 상태”라며 “전날 저녁 부모님 집 불 끄는 걸 돕다가 손이 까매졌다. 호스의 수압이 약해 불 끄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용촌리는 유난히 예쁜 집과 숙박 집이 많은 동네였어요. 그런데 주민 중에는 보험을 안 들어 놓은 사람들도 많아요. 정부가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줘 얼른 집을 복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길 바래는 마음뿐이에요.”

천진초등학교에서 2.5㎞ 떨어진 곳에 있는 같은 토성면 아야진초등학교 나래관에 마련된 대피소에도 이날 밤 8시40분께 6.6㎡(2평) 남짓한 30개의 4인용 텐트가 이재민들로 꽉 찼다.

4일 저녁 불을 피해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이재민들은 당장 생활이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대피소 화장실에서 양말과 속옷을 빨고 있던 정경숙(58)씨의 손이 빨개져 있었다. 수돗물을 가장 따뜻하게 틀었지만 차가운 물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손을 호호 불며 빨래를 이어갔다. 전날 저녁 7시가 넘어 용촌리 집에서 몸만 빠져나왔다는 정씨는 자신의 집이 ‘지은 지 8년 된 예쁜 단독주택’이라고 했다. 정씨는 당장 생활이 걱정이다. “옷은 동네 주민한테 빨아달라고 부탁하려고 하는데 속옷이나 양말은 부탁하기가 그래요. 그런데 물이 너무 차가워서 빨래하기가 힘드네요. 머리는 어떻게 감죠?”

집에 두고 온 강아지도 걱정이다. 정씨는 “동네 주민이 밥이나 물을 제때 챙겨준다는데 걱정이 되긴 한다”고 말했다. 정씨처럼 단독주택에서 반려견을 키우던 주민들은 대피소로 데려올 수 없는 강아지를 걱정했다. 전날 천진초에서 부모님과 함께 대피한 장씨도 “불이 나자마자 집에 있는 강아지 목줄을 먼저 풀어줬다. 이날 낮에 가보니 애들이 다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밥과 물을 챙겨주고 나왔다”고 말했다.

뉴스1
강원지역 산불 발생 사흘째인 6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의 한 사찰에서 불에 그을린 강아지가 취재진을 경계하고 있다.

 

아야진초에서 만난 고성군청 주민복지실 직원 ㄱ(34)씨는 “이재민 분들이 재산적 손실, 심리적 상처가 있을 텐데 짜증 한번 내지 않으신다. 이분들의 의식주가 해결될 때까지 대피소에서 계속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5일 밤 천진초 가장 앞줄에 자리 잡은 대피소 부스에는 뒤늦게 퇴근한 손녀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속초에서 가장 예쁜 집에 살았다는 부부는 주말에 딸 셋이 다 찾아오기로 했다며 쓴 미소를 보였다. 6일 오전 강원도 산불방지 대책본부는 고성·속초 지역의 불이 100% 진화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재민들의 마음을 태우고 있는 불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대피소에는 시름과 착잡함이 감돌고, 4일 밤 화마의 끔찍한 기억들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