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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과 경찰청장,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박영선과 황교안, 둘 중 하나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 백승호
  • 입력 2019.04.05 12:04
  • 수정 2019.04.05 14:24

김학의 별장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의혹 중 하나는 과연 그의 범죄사실을 청와대가 알고 있었냐는 것이다. 이는 중요한 문제다.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현 자유한국당 의원. 더 나아가 전임 대통령인 박근혜까지. 만약 이들이 김학의의 범죄를 사전에 알고 있었는데도 임명을 강행했다면, 그리고 그 임명 강행의 이유가 사적인 친분 내지는 관계 때문이었다면 관련자들에 대해 정치적 책임 등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로 떠오른 것이 바로 ‘김학의 CD’다. 여태까지 이 CD는 김학의의 성폭력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로만 확인됐다. 그런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청문회 과정에서 이 CD는 다른 증거가 되었다.

지난달 27일, 박영선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김학의 CD를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에게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김학의에 대한 성폭력 의혹이 있음을 황교안 장관에게 알린 셈이다. 박영선 후보는 황교안에게 CD를 보여준 날짜를 3월 13일 오후 4시 40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업무 수첩에 당시 황교안 장관과의 만남이 업무 수첩에 적혀 있었기에 정확한 날짜를 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날짜가 왜 중요한가? 김학의가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한 날짜는 3월 15일이다. 박영선은 이보다 이틀 앞선 13일에 법무부장관에게 ‘김학의 범죄 의혹’을 알렸다고 한다. 박영선은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었다. 그의 말을 ‘세간의 루머’로만 볼 수 없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의혹에 대해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김학의는 15일 임명됐다.

박지원 의원도 김학의 동영상을 ‘3월 초‘에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 CD를 ‘경찰 고위 간부’로부터 받았다고 설명하며 이 영상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김학의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용주 의원은 이보다 훨씬 더 이른 시점을 지목한다. 그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그 이야기(김학의 성폭력)가 2013년 1월 정도에 많이 돌았고 저도 중앙지검 특수부에서도 근무해서 그런 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어떻게 해서 구해서 봤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가 영상을 직접 본 시점이 1월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민갑룡 경찰청장은 2일, 국회 정보위 회의에서 영상 입수시점을 ‘3월 19일’로 못박았다. ”경찰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부서는 2013년 3월 19일(저화질 버전)과 5월 2일(고화질 버전) 두 차례에 걸쳐 CD를 입수했다”는 게 경찰 측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민 청장은 한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동영상은 이미 2012년 11월부터 ‘누군가의 손‘에 있었고 따라서 한동안은 이 동영상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경찰의 설명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영상이 알려지게 된 발단은 여성 A씨가 별장 성폭력 사건을 주도했던 윤중천씨를 고소하게 되면서부터였다. A씨는 윤중천을 고소하는 과정에서 박모씨에게 자신의 차량을 윤씨로부터 찾아오도록 부탁했다. 박씨가 차량을 찾는 과정에서 CD를 발견했다. CD속 동영상을 틀어본 박씨는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성 ‘김학의‘를 윤중천으로 오해하고 이를 휴대폰으로 재촬영한 뒤 A씨에 넘겼다고 한다. 그리고 A씨는 박씨로부터 건네받은 휴대폰으로 재촬영 영상을 3월 19일에 경찰에 넘겼다. 이 과정이 경찰이 설명하는 ‘화질이 낮은 김학의 영상을 3월 19일에 확보하게 된 경위’이다.

그러면서 경찰은 (2012년 12월부터 경찰이 원본 영상을 확보한 2013년 5월까지) 약 6개월간은 해당 CD를 (수사기관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 청장은 박지원 의원이 경찰로부터 영상을 확보했다는 발언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면 CD를 다른 데서 받고도 경찰에서 받았다고 표현할 수 있어서 그 부분의 신뢰성은 확보하기 힘들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지원, 박영선 의원의 말과 경찰 측의 말이 배치된다. 경찰은 19일에 확보했다고 하고, 또다른 한쪽은 그보다 먼저 경찰로부터 영상을 입수했다고 한다.

날짜를 서로 달리 말하는 데에는 각각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박영선 의원은 영상의 존재 사실과 범죄 의혹에 대해 황교안 당시 장관에게 3월 13일에 말했다고 한다. 김학의가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한 날짜는 3월 15일이다. 3월 19일에 경찰이 영상을 확보했다고 발표했고 3월 21일 김학의는 차관직을 사퇴했다. 박지원과 박영선 의원이 미리 확보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이나 곽상도 당시 민정수석이 김학의의 범죄 의혹을 미리 알았다는 말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경찰은 새로운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경찰이 검찰이 아니라 (당시) 야당 의원에게 증거를 제공한 게 된다. 이 공세는 실제로 시작됐다.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은 3일, 박지원에게 ”김학의 CD의 입수 경위를 밝히라”고 요청했다. 그 영상을 경찰에게서 직접 입수했다면 경찰이 여당(당시 야당)에게 직접 준 ‘저의’가 무엇인지 설명하라는 내용이다. 여기에 박지원 의원은 ”경찰은 검사의 사건 송치 지휘를 받으면 즉시 수사가 중단되어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기 때문에 송치 지휘에 대비해 나에게 제공했다”고 말한다. 이은재 의원은 ”경찰이 검경수사권 조정에서 유리한 이점을 확보하기 위해 수사 외적으로 해당 CD를 야당 의원과 협잡에 악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번째는 박영선, 박지원 의원이 경찰이 아닌 다른 경로, 이를테면 영상을 ‘6개월간 보관하고 있었던’ 박씨측으로 부터 확보했을 가능성이다. ”약 6개월간은 해당 CD를 (수사기관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는 민 청장의 말이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정보위 김민기 의원은 ‘경찰의 다른 경로’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김 의원은 ”수사부서가 아닌 정보부서에서 김 전 차관 영상이 담긴 CD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박지원 의원이 어느 경로로 영상을 입수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가 김학의에 대한 범죄 의혹을 인지하고 있었냐이다. 앞선 두 가능성 모두 고려해보아도 박지원 의원과 박영선 의원이 ‘3월 19일’보다 미리 영상을 확보했다는 주장 자체가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곽상도 당시 민정수석은 김학의 성폭력 의혹에 대해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경찰에게 ‘내사를 진행 중’이냐고 물었지만 경찰은 내사를 진행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기에 관련 의혹을 ‘찌라시’ 수준으로 생각하고 넘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민갑룡 청장이 답변한 내용은 다르다. 내사는 진행하지 않았지만 2013년 1월부터 이미 범죄정보 수집 형태로 관련 첩보를 입수했고 청와대에서 ‘내사 여부‘를 물었을 때 ‘범죄정보 수집 중‘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내사를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는 곽상도 의원의 주장과는 매우 다르다. ‘내사는 진행하지 않았지만 의혹이 있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분명 알렸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2013년 1월부터 범죄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1월은 이용주 의원이 자신이 검찰이었던 시절 ‘김학의 성폭력 이야기가 많이 돌아서 영상을 보았다’고 말했던 시점이다. SBS는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가 ”고화질 CD와 거의 동일한 CD가 시중에 유포돼 있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박영선, 박지원과 경찰, 둘 중 하나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영상의 확보 경로‘에 대한 것이지 ‘영상의 확보 시점’에 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박영선과 황교안, 둘 중 하나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3월 13일, 박영선과 황교안은 만나서 ‘김학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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