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널리 알려진 이 사진 속 남자는 조선인 징용공이 아니다

좀 더 확실히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 박세회
  • 입력 2019.04.04 16:14
  • 수정 2019.04.04 17:03
ⓒ사이토 코이치

산케이신문이 지난 3일 ”가혹한 전시 노동을 강요당한 조선인이라며 한국에서 유포되고 있는 사진이 사실은 1961년 후쿠오카 현의 탄광에서 촬영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보도를 냈다. 

이 신문이 밝힌 원작자는 일본 사진작가협회의 명예회원인 사이토 고이치(斎藤康一, 84)다. 사이토 씨는 1961년 여름 치쿠호 탄전(筑豊炭田)에서 해당 사진을 직접 찍어 주간지 ‘신슈칸’(新週刊, 폐간) 1961년 10월 19일호에 게재했다고 밝혔다.

산케이는 이어 ”한국 언론과 출판물은 군함도에서 강제 동원된 한반도 출신자의 실태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이 남성의 사진을 활용하고 있다”라며 ”부산의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패널에도 전시했다”고 밝혔다. 

국립일제강제동원 역사관 측은 해당 사진을 전시한 적은 있지만 2017년 11월에 내렸다고 밝혔다. 역사관 측은 ”해당 사진의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검토 과정을 거쳐 철거했다”고 밝혔다. 

산케이가 지적한 게재 건은 또 있다. 산케이는 ”최근에는 한국의 조선일보가 2018년 12월 16일자 인터넷판에 게재하고 ‘석탄을 캐고 있는 조선인’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에 확인한 결과 이 사진은 2018년 12월 1일자 Books(A18)면 ‘강제 징용으로 무너진… 열여섯 살의 아버지를 씁니다’라는 서평 기사에 자료사진으로 실렸다.

해당 기사는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라는 책을 소개하며 이 사진을 함께 싣고 ‘막장에서 채탄 작업을 하는 조선인. 좁은 갱도에서 비스듬히 누워 곡괭이질 하는 고역을 치렀다’는 설명을 달았다. 

ⓒ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산케이가 언급한 12월 16일은 이 기사의 일본어판이 온라인에 올라온 날이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이 사진의 저작권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으로 되어 있다. 

허프포스트의 취재에 따르면 이 사진은 EBS 역사채널e ‘조세이 탄광의 비극‘(2016년 12월 공개) 편과 ‘지워지지 않는 상처, 강제동원’(2014년 12월) 편에도 쓰였다. 

산케이 측의 주장에 따르면 아래 화면에 잡힌 두개의 사진 중 오른쪽은 일본 탄광 노동자의 사진이다.  

EBS 측은 ”제작진 측에서 해당 사진의 교체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EBS1 방송 캡처

해당 사진은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와 카페 글 등을 통해서도 널리 퍼져있다. 

지난달 20일 산케이 신문은 한국의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 ‘강제 노역에 동원된 우리 민족’이라는 사진이 사실은 1926년 홋카이도의 아사히카와(旭川)신문이 일본의 도로건설 현장 학대 치사 사건을 보도했을 때 내보낸 사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문은 일제의 징용이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9월 시작돼 한국 교과서가 주장하는 시기와는 20년 넘게 차이가 난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캡처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측은 ”초등학교 교과서 건을 비롯해 이번 산케이의 보도를 보면 지엽적인 부분을 트집 잡아 논지를 흐리려는 일본 미디어의 전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다만 극우 미디어의 속내를 비판함과 동시에, 한국 미디어가 이미지 자료를 사용할 때 좀 더 확실히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일본 #국제 #강제징용 #일제강제징용피해자 #강제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