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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적 성차별 : 좋은 의도이지만 여성들을 억압하는 행동들에 대해

조 바이든은 좋은 의도에서 여성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려 했을지 모르지만, 그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 허완
  • 입력 2019.04.04 15:20
ⓒNurPhoto via Getty Images

루시 플로레스 전 네바다 주 의회의원이 조 바이든과의 불쾌했던 경험을 밝힌 지 며칠 만에, 적어도 세 명의 여성이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밝히고 나섰다. 플로레스는 2014년 네바다주 부지사 후보였을 때 당시 부통령이던 바이든이 자신의 어깨를 만지고, 머리카락 냄새를 맡고 뒤통수에 키스했다고 말했다. “불편하고 역겹고 혼란스러웠으며 무력함을” 느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두 번째 여성, 에이미 라포스는 2009년 한 정치자금 모금행사에서 바이든이 자신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당겨 코를 비볐다고 1일 ‘하트포트 코란트’에 밝혔다. 다음날(2일)에는 캐리틀린 카루소와 D.J. 힐이 뉴욕타임스에 바이든이 자기 마음대로 불편한 신체 접촉을 했다고 밝혔다. (바이든의 전 스탭들, 2015년에 바이든이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사진이 공개된 애슈턴 카터 전 국방장관의 아내 스테파니 카터 등은 바이든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 여성들 중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고발한 여성은 없다. 아무도 당시에 항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아무도 공개적으로 발언하지 않았다.

“바이든의 여성 관련 문제있는 과거에 대한 별 이야기도 없이 그가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음을 알게 되자 더 이상은 묻어둘 수 없게 됐다.” 플로레스는 이렇게 적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여성들에 대한 바이든의 태도는 “여성과 소녀들의 공간을 침범하면서 그들에 대한 감정이입은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과 자신이 다정하게 대한 여성들 사이의 권력 불균형을 그가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 선을 넘는 것은 할아버지 같은 [자상한] 행동이 아니다.” 라포스가 말했다. ”성차별 혹은 여성혐오다.”

ⓒNurPhoto via Getty Images

 

바이든은 대변인을 통해 공식 입장을 냈다. “나는 단 한 번도 부적절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다는 주장이 나오면 존중을 담아 듣겠다. 하지만 결코 내 의도는 아니었다. 내가 그러한 순간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하지는 않을 수도 있고, 이야기를 듣고 놀라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다, 말해야 한다고 느끼는 중요한 시간을 맞았다. 남성들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관심을 가질 것이다.”

바이든에 관한 이번 논란은 ‘좋은 의도였지만 침해-침범적일 수 있는 젠더에 따른 행동’에 대한 논의를 여성들 사이에서 촉발시켰다. 왜 우리가 이걸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가? 이런 행동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의도가 중요한가? 그 사람이 미국 대통령 출마를 고려하고 있을 경우에 이것은 어떤 면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가?

소셜미디어에서는 일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선을 넘는 행동을 무시하는 것이 몸에 밴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시그널 부스트’ 호스트인 CNN 해설자 제스 매킨토시는 법원 담당 기자 시절 자신의 옷에 대해 언급하고 옷이 몸매에 잘 맞는지를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었던 한 판사 이야기를 트위터에 썼다.

“나는 그게 나를 얼마나 망쳐놓았는지 여러 해 동안 깨닫지 못했다.” 그가 적었다. 플로레스와 라포스에게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본 것이다.

ⓒerhui1979 via Getty Images

 

이런 경험은 어디에나 있는 듯하지만, 그 중요성을 평가하기란 지금도 어렵다. 특히 동의 없이 여성들의 “x지를 움켜쥐었다”고 떠벌린 노골적인 여성혐오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결을 의미하게 될 대선의 맥락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쨌거나 바이든이 결코 트럼프 같지는 않다. 바이든은 여성폭력방지법을 공동 발의했다. 그는 미국 대학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해 2014년부터 시작된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It’s On Us) 운동을 출범시켰다. 그는 대학 내 성폭력 예방에 대한 연설을 자주 하며, 어느 모로 보나 이 이슈들에 대한 진정어린 관심을 드러냈다.

심리학자인 피터 글릭 로렌스대 교수는 바이든이 여성들에게 드러내는 지나치게 친근한 행동과 스스로를 여성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것 사이에 연결선이 있다고 한다. ‘온정적 성차별(benevolent sexism)’이다.

글릭은 프린스턴대 수전 T. 피스크 교수와 함께 이 용어를 만들었다. 온정적 성차별은 여성들과 긍정적이며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동시에 남성의 우위와 권력도 지키고 싶은 두 가지 욕구의 화합물이라고 글릭은 설명한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보호가 필요한, 선천적으로 더 약한 존재로 보여지며, 그들을 보호하는 남성들은 영웅 역할을 맡게 된다.

“여성들이 전통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고, 남성들에게 힘을 주지만 위협이 되지는 않는 한 훌륭한 존재라는 것이다.” 글릭의 말이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여성들을 지금의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는데 있어서 온정적 성차별은 당근, 적대적 성차별은 채찍 역할을 한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적대적 성차별은 지적하기 쉽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여 조직하기도 쉽다. 2016년 대선 직후에 열렸던 여성 행진(Women’s March)이 그 한 사례다. 하지만 온정적 성차별은 훨씬 더 미묘하고, 그 의도 역시 더 복잡하다. 이러한 성차별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주관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해석하곤 하기 때문에, 이를 식별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비판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좋은 의도, 혹은 우리가 온정적 성차별에 부여하는 긍정적 의미 때문에 이를 규탄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글릭은 말한다. 예를 들어 바이든은 포옹, 코 비비기, 머리카락에 키스하기를 개인적, 또 직업적으로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관심의 긍정적 연장선상으로 보았을 수 있다.

그러나 글릭은 온정적 성차별이 실제로 피해를 입힐 수 있음을 연구 결과는 보여준다고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런 행동은 미묘하게 여성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하고 스스로에게 의심을 갖게 한다. 글릭은 “여성들에게 온정적 성차별에 대해 일깨워주면 사회적 변화를 꾀하게 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도 알아냈다. 적대적 성차별은 그 반대다. (역사적으로 온정적 성차별은 투표권 및 임신중단(낙태) 제한 등 여성들로부터 힘을 빼앗는 여러 정책들을 정당화하는데 활용되었다.)

플로레스는 글에서 글릭이 설명한 ‘미묘한 약화’를 분명히 묘사하고 있다. “그의 행동이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게 아니었다 해도, 비하적이고 경멸적이었다.” 플로레스가 적었다. ”나는 그의 멘티로서 그 유세에 나간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의 친구로서 간 것도 아니었다. 부지사가 될 자질을 가장 잘 갖춘 사람으로서 간 것이었다.”

ⓒDenise Truscello via Getty Images

 

좋은 의도를 지닌 남성들조차 당신의 영역을 침범할 것이고, 그에 맞서야 하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살아가는 건 무척 지치는 일이다. 이런 작은 모욕은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게 된다. 플로레스와 라포스 덕분에 이제 우리는 지적할 수 있게 됐다.

바이든의 정치 커리어를 보면, 아무래도 그는 여성과 유색 인종의 삶의 경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거기다 이런 가부장주의가 합쳐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는 공개적 발언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을 뭉뚱그려 말하곤 한다. 임신중단과 형법 제도 이슈에 대한 그의 과거 이력 때문에 좌파 일부는 그를 경계하고 있다.

상원의원이 된 직후인 1974년, 바이든은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 ; 여성들의 임신중단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한 기념비적 판결)에서 “너무 멀리 갔다”고 생각한다고 워싱토니언에 말했다. “여성들의 신체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정할 때 오직 여성들만 결정권을 가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후 임신중단권에 대한 그의 행적은 오락가락했다. 여성의 선택권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입장은 고수해 왔지만,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오랜 기간 동안 임신중단 치료와 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을 제한하고, 각 주에 임신중단권을 철회할 권리를 부여하는 여러 법안을 지지했다. “나는 지금도 부분출산낙태(PBA)와 연방 자금 지원에는 반대표를 던진다.” 2007년 출간된 회고록에서 바이든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겁에 질린 젊은 산모들이 임신중단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더 쉬워지도록 하고 싶다.”  대변인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바이든은 임신중단권 보호를 위해 싸웠던 로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Wally McNamee via Getty Images

 

바이든은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 인준 청문회에서 증언한 애니타 힐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은데 대해 꾸준히 비난을 받아오기도 했다. 당시 바이든은 상원법사위원장이었다.

“그녀는 이용당했다. 그녀의 평판이 공격당했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불과 지난 주에 바이든이 ‘Biden Courage Awards’에서 한 말이다. 지금까지도 바이든은 당시 청문회를 언급할 때면 자신은 힐을 보호하고 싶었다는 투로 말한다. 그러나 힐에게 필요한 것은 공정한 청문회였을 뿐, 빛나는 갑옷을 입고 나타나 힐을 구원해줄 기사가 아니었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레베카 트레이스터가 뉴욕매거진에 썼듯, 바이든은 어떤 면에서는 분명 여성들을 지지하지만, “반(反)페미니스트 백래시에 대한 진보적 보호막을 제공해왔다. 이것은 여성들의 생식적, 직업적, 정치적 자주성 요구를 특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여성의 신체에 대한 남성의 접근권과 권리를 당연히 여기는 권력있는 남성들의 낡은 가부장주의다.”

바이든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 중 하나일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과거에 했던 온정적 성차별 행동에 대한 논의는 당연할 뿐 아니라 필수적이다.

이 질문에 대해 글릭은 “왜 우리가 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느냐고?”라고 답했다.

“20년 간의 연구는 온정적 성차별이 정말 놀랍고 은밀한 방식으로 여성을 적극적으로 약화시키며 젠더 불평등에 대한 저항을 적극적으로 억압한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고 진정으로 귀를 기울일 의도가 있다면, 지금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허프포스트US의 There’s A Name For Joe Biden’s Behavior Toward Women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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