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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04일 11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04일 11시 15분 KST

우리 인류의 ‘마지막 싸움’

오늘날 생태위기는 기존의 자연재해와는 다르다.

panaramka via Getty Images

김형,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몇해 전 한 강연에서 “약 200년 뒤에는 (지구상에) 인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지요. 우리에게 <총, 균, 쇠>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도 앞으로 50년간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0년이나 200년 뒤에는 더 이상 지구에 인간이 살지 않게 되거나 석기시대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당시 이 발언을 들었을 때는 무슨 종말론적 주장처럼 여겨졌으나, 얼마 전 일주일 가까운 시간을 초미세먼지 속에서 살아보니 이 공상과학소설 같던 이야기가 이제는 실감나기 시작합니다. 따가운 눈과 목도 불편했지만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마스크를 쓰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는 어린이들과 지하철 안에서 싸고 성능 좋은 마스크가 무엇인지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바라보아야 했을 때입니다. 미세먼지 사태를 계기로 새삼스레 작금 지구의 상황을 돌아보면, 전 지구를 뒤덮고 있는 쓰레기와 각종 환경오염, 핵발전소,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합니다.

이 모든 문제에 대부분의 책임이 있는 기성세대이자 명색이 전문가로서 이 문제의 해결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생태위기는 기존의 자연재해와는 달리 우리가 넘어야 할 ‘다섯가지 패러독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패러독스입니다. 작금의 생태위기는 과거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마법의 탄환’으로 여겨온 그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문제입니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 매연을 쏟아내는 자동차와 화력발전소, 방사성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원자력발전소 등은 개발 당시 과학기술의 승리로 불린 것들이지요.

둘째는 ‘키케로’(Cicero) 패러독스입니다. 2000여년 전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모두들 노년에 도달하기를 바라면서도 일단 도달하고 나면 비난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모순되고 이치에 어긋나는가!”라고 한탄했습니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완벽함을 지향할수록 우리의 노년은 길어지고, 우리의 불완전함은 더욱 부각됩니다. 의학기술의 발전이 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이기보다는 오히려 중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를 보여줍니다.

셋째는 ‘시간감각 불일치’ 패러독스입니다. 현재 과학기술이 만들어내고 있는 위험은 시차를 가집니다. 현재보다 미래의 위험과 불확실성이 훨씬 크지요.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애 안에 일어나지 않는 일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미래세대의 목소리는 늘 기성세대의 목소리보다 작고 힘이 없지요.

넷째는 ‘공범 만들기’ 패러독스입니다.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너도 자동차, 비닐, 전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곧바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더 크고 근원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이들과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 서민들을 섬세히 구별하지 않습니다.

다섯째는 ‘증가하는 격차’ 패러독스입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거대 과학과 거대 자본의 결합은 강화되는 반면, 전문지식에 취약한 일반 시민은 더욱 왜소해집니다. 이러한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격차를 만드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지요.

현재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과거 인류가 직면하지 못했던 위기이기도 하지요. 이런 고민을 알고 있듯이, 유발 하라리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여유가 없다. … 하지만 공학자는 인내심이 평균보다 낮고 투자자는 최악이다. 생명을 설계할 힘으로 무엇을 할지 당신이 모른다 해도, 답을 찾을 때까지 1000년의 시간을 시장 권력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의 맹목적인 답을 당신에게 강요할 것이다.”

김형, 우리 인류는 과연 이 다섯가지 패러독스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늘 그렇듯 저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과학입국’ ‘신성장동력’ ‘4차 산업혁명, 규제 샌드박스만이 살길’이란 깃발이 영리화와 과학만능주의라는 광풍에 가장 힘차게 휘날리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 사회 아닌가요? 김형, 저는 인류의 미래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압니다. 이 다섯가지 패러독스와의 싸움이 우리 인류의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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