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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것

내 우울증은 내 삶의 일부다.

ⓒPhotographer is my life. via Getty Images

주의: 이 글에서는 일부 독자의 불편함이나 불안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이슈와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는 우울하지 않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내 감정 상태를 확인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마치 교통사고 이후 부러진 뼈의 상태를 살피는 사람 같다. 지금 당장 나는 괜찮다. 인생엔 의미가 있다. 일하는 싱글 맘인 내게 요구되는 여러 일과 책임을 다 완수할 수 있다.

만성적이며 약물에 내성이 있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태는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대학교 때 심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이래 거의 내내 약을 먹고 있다. 35세가 된 지금, 내가 이제까지 복용해 본 약들을 보면 알파벳 뒷쪽에 있는 글자들을 많이 쓴 괴상한 이름의 약들이 많았다. 렉사프로, 팍실, 셀렉사, 웰부트린, 렉설티. 지금은 트린텔릭스와 바이브리드를 복용하고, 어빌리파이를 소량 함께 먹는다. 최근 스프라이트 제로의 신제품 리모네이드(Lymonade) 광고를 봤을 때 내가 처방 받았던 약 이름 같다고 생각했다.

이 약들엔 다 대가가 따르는 것 같았다. 기분은 나아지지만 체중이 10킬로그램 늘어난다! 또는 기분이 나아지지만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부작용에 처음으로 겁이 났던 약은 렉설티였다. 사용자들은 도박, 쇼핑, 성적 행동 등 충동적인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나는 2주 동안 그런 충동을 경험했고, 타닥타닥 타오르는 듯한 초조함과 함께 잠들 수가 없어서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우울감을 덜 느낄 가치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 약들이 저지르는 최악의 짓은 더이상 듣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겐 이런 일이 태엽이라도 달린 것처럼 몇 년마다 일어난다. 우울증이 아주 천천히 다시 기어들어와서, 상황이 심각해질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일이 많다.

재발(relapse)이라는 개념을 중독과 연결지어 생각하기 쉽다. 나는 25세 이후부터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개념을 잘 안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도 재발을 겪으며, 일부 의사들은 치료와 회복 6개월 후 다시 찾아오는 우울증 재발을 ‘recurrence’라는 단어로 구분하기도 한다. 메디컬 뉴스 투데이에 의하면 “처음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의 절반 정도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나머지 절반의 경우 우울증은 한번 재발할 수도 있고, 평생 만성적으로 재발할 수도 있다. 재발은 약물보다 한 발 앞서가고, 도움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초인적 힘을 끄집어 내길 강요한다. 웹MD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우울증 환자 대부분은 평생 4~5번 정도를 겪게 된다.”

내 우울증은 마치 체중이나 마약, 술과 마찬가지로 계속 관리해야 하는 내 삶의 일부다. 하지만 나로선  3킬로그램 불어난 체중처럼 쉽게 발견하고 반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어떤 여성들은 생리 때마다 생리전 증후군(PMS)이었구나, 정말로 자살하고 싶던 게 아니었구나 하고 안도한다는 농담을 한다. 우울증도 그것처럼 까다롭다. 나는 우울증 증상을 경험하면서 이성적으로 “난 우울증을 겪고 있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처음에는 내가 형편없는 삶을 사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이런 기분인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꽤 오래 가기도 한다. 이 기분은 팩트처럼 느껴진다.

재발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나서 이게 더 악화된다. 지난 번에 아팠을 때는 내 머릿속에서 테이프가 쉬지 않고 돌아가며 나는 나쁜 어머니고, 나쁜 사람이고, 자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살 상상은 겪어본 적이 없었는데, 구체적이었고 정기적이었다. 내가 목숨을 끊을 위험이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과거 우울할 때는 결코 할 수 없었던 기능은 가능했다.

결국 자살 생각이 계속 드는 것은 뭔가 아주 잘못되었다는 분명한 신호라는 사실을 깨닫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몇 달 동안이나 나는 머리를 빗고 제시간에 출근할 수 있는데 어떻게 우울증이겠나, 라고 생각했다.

그전에는 거의 내내 울었다. 울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분명히 일어날 거라고 상상하고, 그에 대해 또 울었다. 그때도 몇 달 동안이나 우울증이라는 걸 몰랐다. 내가 모든 것에 실패했고 내 삶의 좋은 부분은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만 들었다.

우울증은 중독과 마찬가지로 스스로가 전혀 아프지 않다고 믿게 만드는 몇 가지 병 중 하나다. 물에 빠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구명구가 사방에 존재한다 해도, 구명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아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이라고 깨닫는 것은 절반에 불과하다. 우울증 재발임을 마침내 깨닫고 내면의 모든 힘을 쥐어짜 병원에 가고 나면, 의사와 나는 어떤 약, 혹은 어떤 약들의 조합이 문제를 해결해 줄지 추측하는 게임을 시작한다.

지난 번엔 이런 식이었다. 내가 먹고 있던 약의 용량을 일단 20mg 늘렸다. 몇 주 지나도 내가 피부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고 온세상이 내게 부대껴 오는 것 같자, 우리는 ‘부스터’ 약을 추가했다. “항우울제에 불충분한 반응을 보이는” 중증 우울증 환자에게 추가용으로 쓰는 약이었다. 몇 주 더 기다리며 침을 흘리는 검은 괴물이 있다는 느낌 속에 살아갔다. 너무나 징그러워서 앞발과 발톱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새 약의 부작용을 견딜 수가 없었고, 그 약을 끊었을 때는 전보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이 시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약을 시도했다.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4~6주 정도 지나야 알 수 있다. 그동안에는 음악만 들어도 아팠다.

한편 매일 작디작은 알약 하나만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은 기적이고, 이 약을 먹는 누구도 복용 사실을 좋지 않게 여겨서는 안된다. 역사상 다른 시점이었더라면 비참함 속에 살 수 밖에 없었을 테니, 나는 항우울제 의약품이 존재하는 시대에 산다는 것에 무한히 감사한다.

그러나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내 뇌의 화학 작용이 두렵다. 우울증이 약물을 앞서 나가고 내가 쳐놓은 장벽을 뚫고 들어오는 날이 오늘이 아닐까 두렵다. 내가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주가 이번 주가 아닐까 두렵다. 이렇게 경계하지 않으면 재발이 일어나도 재발인 줄도 모를까봐 두렵다.

이 글을 쓰는 것이 다음에 힘들어질 때를 막아줄 일종의 부적이 되어주길 난 바라는 것 같다. 여기 앉아서 독자에게 내 마음과 몸이 재발 중에 겪는 단계들을 설명할 수 있다면, 다음 번에 재발이 일어나면 깊은 수렁에 빠지기 전에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가끔은 내가 잘 지내고 있을 때에도 내 우울증이 팔굽혀펴기를 하고 힘을 기르며 다음 번 싸움에 대비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진화하며 이해를 키우고 내 자신을 더 잘보는 동안에도, 이 몹쓸 병도 진화하며 나보다 한 발 앞서나갈 것만 같다.

하지만 위안은 있다. 약이 다시 듣기 시작하면 뇌에 창문이 열리고 봄의 첫 햇빛이 들어오는 기분이다. 과음 후 토하고 나서 느끼던 안도감, 독극물을 내쫓은 다음의 예상치 못했던 행복의 순간이 온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 자신이 되고, 또 하루는 잘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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