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4월 03일 18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03일 18시 12분 KST

영국의 유력한 옵션으로 떠오른 '소프트 브렉시트'에 대해 알아보자

EU 관세동맹과 '소프트 브렉시트'는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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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는 '브렉시트 대안을 함께 모색해보자'는 테레사 메이 총리의 제안을 환영했다. 2019년 4월2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불과 열흘 앞두고 나온 테레사 메이 총리의 극적인 전환 덕분에 이제 영국이 ‘소프트 브렉시트’로 향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 브렉시트라니?

쉽게 말해 EU를 탈퇴하더라도 EU와의 관계를 계속 가깝게 유지한다는 뜻이다. 브렉시트 강경파들이 원하는 ‘깨끗하고 단호한 이별(clean break)’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소프트 브렉시트의 뜻을 이해하려면 우선 EU 관세동맹(Customs Union)과 단일시장(Single Market)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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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영국 섬과 유럽 본토를 잇는 도버(Dover)항에 트럭들이 늘어선 모습. 매일 1만대 가량의 트럭들이 다양한 물품을 싣고 이곳을 통과한다. 관세가 부활하면 현재 트럭 한 대당 2분 가량인 통과 시간이 크게 늘어나 막대한 물류 병목현상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EU 관세동맹이란 무엇인가? 

EU의 28개 회원국은 관세동맹으로 묶여있다. 회원국이 아니지만 별도 협약을 통해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관세동맹에 가입한 국가들(터키, 안도라, 산마리노)도 있다.

관세동맹의 핵심은 두 가지다.

① EU 회원국들끼리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② EU 회원국이 아닌 제3국에 대해 똑같은 관세율을 적용한다.

관세동맹은 관세로 인한 무역장벽을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로에게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회원국들은 제품을 간편하고 빠르게 수입하고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영국에 있는 자동차 공장들을 예로 들어보자. 자동차 업체들은 부품을 쌓아놓지 않고 그 때 그 때 조달해 조립한다. 영국에서 생산하는 부품도 있지만, 상당수는 EU에서 들여온다. 영국이 수입하는 전체 자동차부품의 약 79%가 EU산이다. 

일례로 독일 BMW그룹 산하 미니(MINI)의 차량에 들어가는 한 부품은 영국 공장에서 차량에 조립되기 전까지 세 번이나 바다를 건넌다. (프랑스→영국→독일→영국)

영국이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면 부품이 영국-EU 국경을 넘을 때마다 관세를 내야 한다. 통관 절차가 지연돼 부품 조달이 늦어지는 건 물론이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제조업 기업들이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관세가 부활하면 영국이 EU로부터 수입하는 제품들의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자국산 제품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져서 영국 기업이나 농축산 업계가 혜택을 누릴 수는 있지만, 수입이 불가피한 제품도 적지 않다. 토마토나 양상추 같은 과일과 채소는 물론, 치즈나 우유 같은 유제품들의 가격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또 EU 관세동맹은 회원국이 아닌 국가들에 대해 공통된 관세율을 적용한다. EU는 회원국들을 대표해 제3국과 무역협정을 맺고, 회원국들은 이 협정을 자동적으로 적용 받는다. 

예를 들어 영국은 한국과 별도의 무역협정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영국이 관세동맹을 탈퇴하면 다른 국가들과 무역협정을 새로 맺어야 한다. 

이 때 영국이 지금보다 더 자국에 유리한 협정을 체결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상대 국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EU라는 세계 최대의 관세동맹을 상대로 하는 협상 보다는 영국 하나 만을 상대하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일본 등이 영국에게 가혹한 협상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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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City)'와 함께 런던의 금융 중심지를 이루는 카나리워프 전경. 글로벌 금융회사들 중 상당수는 브렉시트 이후에 대비해 더블린(아일랜드)이나 프랑크푸르트(독일),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등으로 사업을 분산시키고 있다. 

 

EU 단일시장은 무엇인가?

EU 경제통합의 또다른 근간을 이루는 단일시장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시장’이라는 뜻이다. 관세동맹 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원리는 이렇다. EU 회원국들끼리는 국경을 초월해 똑같은 시장을 공유한다. 단일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4가지 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상품, 노동력, 서비스, 자본이다. 

일례로 독일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은 ‘독일산’ 자동차를 다른 EU 회원국에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다. 노동력이나 자본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인이 영국으로 이주해 일할 수 있고, 영국 자본이 이탈리아 투자처로 이동할 수 있다.

다만 서비스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측면이 있다. 언어의 장벽이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다른 국가로의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 그러나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이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규제 일치(regulatory alignment)다. 회원국들은 EU가 정한 규제들을 공통으로 시행해야 한다. 하나의 시장에서 서로 공정하게 경쟁하기 위해 하나의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만약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를 판단할 기구도 필요하다. 유럽재판소(ECJ)는 EU 법에 근거해 무역이나 규제 해석에 대한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요약하면, 이 모두는 단일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메이 총리는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서 모두 탈퇴할 것이라고 했었다. 마지막 순간에 입장을 바꾸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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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마침내 자신의 '레드라인'을 깨고 '소프트 브렉시트'를 수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2019년 4월2일.

 

유력한 소프트 브렉시트 옵션은?

메이 총리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와 함께 브렉시트 계획을 합의해보겠다고 선언했다. 브렉시트에 대한 노동당의 기본 입장은 ‘EU 관세동맹 잔류 + 단일시장 잔류와 유사한 관계’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당은 포괄적이고 영구적인 EU 관세동맹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단일시장 잔류에는 부정적이었다. 단일시장에 남으려면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야 한다. 이건 예외가 있을 수 없는 EU의 원칙이다. 노동당은 이 부분을 일정 부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최근 노동당도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대신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모두 잔류하는 옵션도 공식 지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노르웨이 플러스’ 브렉시트다. ‘공동시장 2.0(Common Market 2.0)’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옵션은 가장 최근에 하원에서 열린 의향투표(indicative vote)에서 찬성 261표, 반대 282표, 기권 95표를 받았다. 노동당과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의원 대다수가 당론에 따라 찬성표를 던졌고, 친(親)EU 성향 보수당 의원 30여명도 가세했다.

소프트 브렉시트를 선호하는 여야 온건파 의원들은 합의를 모으기 위해 계속해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기권했던 의원들 중 일부를 설득하면 다수를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ASSOCIATED PRESS
트럭 한 대가 노르웨이-스웨덴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유럽경제지역(EEA) 회원이지만 EU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은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인 스웨덴과 마주한 국경에 카메라, 번호판 인식 시스템, 차량을 세관으로 유도하는 장애물 등을 설치해두고 있다. 통관 절차가 매우 간소화되어 있긴 하지만, 일단 국경을 통과하는 모든 제품들은 세관 신고를 거쳐야 한다.

 

 

‘노르웨이 플러스’ 브렉시트?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유럽경제지역(EEA)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통해 EU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갖는다. 다만 EU 관세동맹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다. ‘노르웨이 플러스’는 여기에 관세동맹을 더한다는 뜻이다. 

노르웨이는 회원국들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규모의 분담금을 EU에 납부하고 있으며, EU의 관련 규정과 법을 따른다. 대신 농업 및 어업 분야에서는 EU와 별도로 자신들의 정책을 시행할 수 있으며, 유럽재판소 대신 별도 법원(EFTA Court)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관세동맹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노르웨이-스웨덴(EU 회원국) 국경에서는 통관 절차가 진행된다. 상대적으로 간소하다고는 해도 트럭 한 대가 국경을 통과하는 데 약 20분 정도는 소요된다고 BBC는 설명한다. 

노르웨이 같은 EFTA 회원국들은 EU를 신경쓰지 않고 제3국들과 독자적으로 무역협정을 맺을 수 있다. 한국-EFTA가 그 사례다. 반면 EU 차원에서 체결한 무역협정의 적용 대상에서는 배제된다. 

브렉시트 강경파들은 관세동맹 잔류를 필사적으로 반대한다. 독자적인 무역협정을 추진할 수 없고 계속해서 EU에 ‘구속‘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럴 거면 애초에 뭐하러 브렉시트를 하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아주 설득력 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영국으로서는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모두 남으면 큰 난관 두 가지를 해소할 수 있다. 아일랜드 국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아일랜드 국경 문제의 핵심은 물리적 국경을 피하는 것이다. 관세동맹 만으로는 이를 피할 수 없다. 국경을 넘는 제품들이 EU의 수입 기준에 부합하는지 점검하는 등 최소한의 통관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EU 상대 무역흑자의 원천인 서비스 산업도 고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서비스 산업은 관세동맹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금융이나 IT 같은 서비스 산업이 지금처럼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EU 단일시장에 잔류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