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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대반전 : 영국 메이 총리가 야당과의 '타협'을 제안했다

대립과 분열을 거듭해 온 영국 정치에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다.

  • 허완
  • 입력 2019.04.03 12:00
  • 수정 2019.04.03 12:40
ⓒJACK TAYLOR via Getty Images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마침내 움직였다. 2일(현지시각) 메이 총리가 야당인 노동당과 브렉시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대화를 갖겠다고 밝혔다. 

이는 탈퇴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유럽연합(EU)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수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더 미룰 수도 없이 이제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만 했던 결정적인 순간에, 메이 총리는 보수당 내 강경파 대신 여야 온건파를, 노딜 브렉시트 대신 소프트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메이 총리의 제안을 환영하며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반면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 의원들은 격분했다. 

 

메이 총리는 이날 무려 7시간에 걸쳐 진행된 각료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 논쟁, 이 분열이 더 오래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 그러므로 저는 오늘 막혀있는 것을 뚫기 위해 행동을 취합니다.” 메이 총리가 말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계획에 대한 합의를 시도”하기 위한 대화를 노동당에 제안했다. ”우리가 반드시 합의안과 함께 유럽연합을 떠나도록 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 즉, ‘노딜(no deal)’ 브렉시트 만큼은 피하자는 얘기다.

그는 노동당과 브렉시트 대안에 합의해 의회의 승인을 받은 뒤, 다음주에 열릴 EU 긴급 정상회의에 이 결과를 가져가는 게 ”이상적인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영국은 앞서 EU와 합의된 것처럼 5월22일에 EU를 탈퇴하게 된다.

만약 야당과의 합의가 불발되면 메이 총리는 하원 의원들이 다시 한 번 다양한 대안들에 대한 투표를 벌이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정부는 하원의 결정에 따라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브렉시트를 한 번 더 짧게 연기하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메이 총리는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4월12일에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STEFAN ROUSSEAU via Getty Images

 

코빈 노동당 대표는 노딜 브렉시트를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을 표하며 메이 총리와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메이 총리가 행동을 취했다는 것에 감사를 표한다.”

″나는 지난 선거에서 노동당을 지지했던 시민들과, 노동당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명확성과 안정을 원하는 시민들을 대표해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총리와 대화에 임할 것이다.”

노동당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잔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U 단일시장은 탈퇴하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노동자 권리와 환경 등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 기준을 EU 수준에 맞게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메이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EU 관세동맹 잔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영국이 독립적으로 다른 국가들과 무역협정을 맺을 수 없게 되고, 이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나타난 민심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가하면 메이 총리는 한 때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며 벼랑 끝 전술을 펴기도 했다. 모두가 재앙적인 결과를 우려하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합의안을 지지하도록 압박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실제로는 노딜 브렉시트를 감수할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바 있다. 계속된 부결로 노딜 브렉시트가 거의 확실해지던 결정적인 순간에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길을 택하면서다

ⓒJACK TAYLOR via Getty Images

 

결과적으로 메이 총리는 번번이 자신의 ‘레드라인’에서 물러선 셈이 됐다. EU와 처음 협상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하드 브렉시트’를 고수했다가 1차 협상이 실패로 끝나자 한 걸음 물러섰고,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합의안이 도출된 이후에는 타협을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며 여야 반대파 의원들을 압박했다. 그 과정에서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찬성파와 반대파, 온건파 모두의 비판을 샀다. 

결국 메이 총리는, 마침내, 이제서야, 격렬히 대립하는 보수당 의원들을 통합해보려는 불가능한 미션에 매달리는 대신 야당과 타협점을 찾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또 메이 총리는 노동당과 브렉시트 계획에 합의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다시 한 번 의회의 뜻을 묻고 이를 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다수 의원의 지지를 받는 옵션이 나오더라도 정부가 이를 수용하겠다고는 ”약속할 수 없다”고 했었다. 

두 차례에 걸친 ‘의향투표(indicative vote)’에서 과반에 근접했던 옵션은 모두 소프트 브렉시트였다. 즉, 이 말은 소프트 브렉시트를 받아들이겠다는 예비 선언과도 같다. 총리실 관계자는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국민투표 옵션도 배제하지 않았다

ⓒJACK TAYLOR via Getty Images

 

예상대로 보수당 내 강경파들은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강경파를 대표하는 유럽연구그룹(ERG)을 이끄는 제이콥 리스-모그 의원은 메이 총리가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인물(코빈 대표)”의 지지를 받아내더라도 보수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메이 총리의 발표를 ”사회주의자들과 합의를 맺으려고 하면서 브렉시트를 뒤집으려는 시도”로 규정했다.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브렉시트의 최종 처리를 제러미 코빈과 노동당에 맡기기로 내각이 결정했다는 게 매우 실망스럽다”고 BBC에 말했다. 강경파 핵심 인물인 그는 차기 당 대표(총리)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코빈의 생각대로라면, 우리는 관세동맹에 남게 되고 따라서 우리의 무역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막대한 입법 분야들이 남게 되고, 브렉시트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게 (코빈-메이 합의의) 결과물이 될 게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ERG에 소속된 한 의원은 긴급 소집된 자체 회의 분위기를 ”충격”과 ”경악”이라는 말로 묘사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다른 의원은 ”총리가 이렇게 멀리까지 갔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강경파 의원들은 메이 총리의 결정이 당을 분열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보수당은 2017년 총선에서 EU 관세동맹·단일시장에서 모두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공약한 바 있다.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은 ”보수당이 지난 4년 동안 악마화했던 제러미 코빈에게 브렉시트의 미래를 맡기는 게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지 두고 볼 일”이라고 혹평했다. 

반면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을 비롯해 소프트 브렉시트를 주장해왔던 친(親)EU 성향 각료 및 보수당 의원들은 메이 총리의 결정에 환호하는 분위기다.

메이 총리의 극적인 전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노동당 의원들의 지지를 새로 확보한 만큼 보수당 의원들의 지지를 잃을 수도 있다.

다만 국가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대신 보수당이 쪼개지지 않도록 하는 일에 더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메이 총리가 마침내 태도를 바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대한 진전이다. 

런던 퀸메리대 교수 팀 베일은 ”이는 기본적으로 메이 총리가 지난 2년 반 동안 취해왔던 입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계산이 달라졌고, 마침내 보수당의 이해관계 보다는 국익을 우선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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