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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호를 고집하는 이유

'쇼와'와 '레이와'는 다르다

  • 박세회
  • 입력 2019.04.02 15:58
  • 수정 2019.04.30 15:27
ⓒJIJI PRESS via Getty Images

지난 1일 스가 히데요시 관방장관은 나루히토 왕세자의 즉위와 함께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뀐다고 밝혔다. 

낯설다. 연호란 대체 뭔가?

일본인에게 연호는 상상 이상으로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구마모토 현 지역에서 발생한 진도 7짜리 지진의 공식 명칭은 ‘헤이세이 28년 구마모토 지진‘이다. 그 전에 있었던 2013년 동일본대지진의 공식 명칭은 ‘헤이세이 23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다. 여러 매체 역시 서기와 함께 연호 원년을 기준으로 해를 표기하는 게 일상적이다. 일본의 관공서 및 공공기관의 서류에는 서기가 아닌 연호 원년 표기가 관례며 원칙이다. 

이렇게 군주의 치세연차를 연호로 표기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일본이 유일하다. 중화민국(대만)의 건립년인 1912년을 원년으로 삼는 ‘민국‘이나, 김일성의 출생연도인 1912년을 원년으로 한 북한의 ‘주체’는 다른 개념이다. 대체 왜 일본은 연호를 아직도 사용할까? 

일본의 침략 시대를 대표하는 히로히토 일왕의 연호 ‘쇼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큰 이데올로기 대립을 낳았다. 전후 일본에서는 세계화의 흐름에 발을 맞추고 2차 세계대전 패배의 아픔을 잊고자 히로히토의 사망과 함께 연호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여론에 밀렸다.

1979년 일본 정부가 실시한 연호 존속에 대한 여론 조사를 보면 ‘존속’에 찬성하는 의견이 70%를 넘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일본 의회는 연호법을 제정해 연호의 계속 사용을 법제화 한다. 그 배경에는 현재의 일본회의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연호는 이후에도 계속 살아남았다. 사회학자 스즈키 히로히토가 도쿄게이자이에 기고한 2018년 7월의 글을 보면 일본은 ”소극적 이유”로 연호 사용을 계속해왔다는 진단이 있다. 쇼와 때만큼 자국이나 타국에서의 비판도 없고, 이미 연호법이 제정된 지 40년이 지난 후라 폐지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Tomohiro Ohsumi via Getty Images

한편 일본 바깥에서 보면 일본 정부가 연호의 존속을 지지하는 또 다른 이유가 보인다. 지난 1일 일본의 연호가 ‘레이와’로 결정된 이후 야후 재팬의 인기기사 면은 연호 관련 기사로 도배됐으며, 이런 일본 내 축제 분위기는 새 일왕의 즉위인 5월 초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레이와’ 티셔츠와 달력이 시장에서 팔린다. 집권 세력에게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일본 내부에서도 일본 우파 집권 세력의 정치 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일본의 온라인 매체 ‘리테라’(lite-ra.com)는 ”연호 발표 전부터 모든 미디어가 연일 연호 예상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소란스러운 보도 경쟁을 펼쳤다”라며 ”그동안 아베 총리가 연호를 사유화 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NHK의 연호 보도 3시간 특집은 이를 증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어용 언론이라고 비판 받을 수 있는 보도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이어 이 매체는 ”연호는 일본의 전통이라고 하지만 사실 중국에서 유례한 것”이라며 ”국가의 체제 존속을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연호가 사라질 리는 없다. 앞서 언급한 스즈키 히로히토는 ‘연호법에 따라 현재는 일왕이 아닌 총리가 연호를 정하기 때문에 연호가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라는 보수 측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는 식의 논지를 펼치면서도 ”폐지론이 힘을 얻을 계기가 없다면 일본은 앞으로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호를 사용하는 나라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바꿀 필요가 없다면 굳이 바꾸지 않는 일본 대중의 정서와 보수 정치인들의 필요가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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