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4월 02일 16시 50분 KST

영국 정치인들이 또 브렉시트 합의에 실패했다. 분노와 조롱이 쏟아진다.

영국이 브렉시트 '혼돈'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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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못 참겠다. 우리의 인내심도 바닥나고 있다. 결정을 내려라. 경제적 보장과 안정성을 가져다 줄 (EU)관세동맹 타협안으로 뭉쳐라.” 

지멘스의 영국법인 대표를 맡고 있는 위르겐 마이어는 1일 영국 의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적었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영국은 안정성의 등대이곤 했는데, 지금 우리는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영국 의원들은 또 한 번 기대를 저버렸다. 브렉시트가 불과 11일 앞으로 다가온 1일, 하원은 유럽연합(EU)을 어떻게 탈퇴할 것인지에 대해 또 한 번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EU를 떠나기로 결정한 지 1013일째의 일이다.

영국 정치인들이 브렉시트 방법에 끝내 합의하지 못하면 영국은 4월12일에 무작정 EU를 탈퇴하게 된다. 노딜(no deal) 브렉시트다. 경제적·사회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경고하는 시나리오다. 경고는 이미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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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시트(Nexit; 네덜란드의 EU 탈퇴)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네덜란드에 있다면, 영국을 보라. 브렉시트가 초래하는 엄청난 피해를 보라.” EU 정상회의에서 영국 편을 들곤 하는 네덜란드 마르크 뤼터 총리가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 집을 정리하는 것이다.” 한 EU 외교 관계자가 말했다. 도무지 해법을 찾지 못하는 영국 의회의 상황을 볼 때, EU로서는 노딜 브렉시트 대비에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는 얘기다. 

″(영국 하원이) 어떤 해법이든 근소하게라도 과반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볼 때, 질서있게 여기에서 벗어난다는 징조는 거의 없다.” 

유럽의회에서 브렉시트 협상단을 대표했던 기 베르호프스타트는 ”하원이 또 모든 옵션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드 브렉시트가 거의 불가피하게 됐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수요일은 교착상태를 해소할 것인지 아니면 깊은 수렁을 마주할 것인지 영국이 선택할 마지막 기회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조차 이런 비극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이런 상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지난 토요일(3월30일) 독일의 유럽장관 미하엘 로스가 꺼낸 말이다.

그는 ”사립학교와 엘리트 대학에 다녔던, 은수저를 입에 문” 영국 정치인들에게 브렉시트 교착상태의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스스로 시인한 것처럼 ‘외교적 에티켓’을 깬, 직설적인 발언이었다. 브렉시트는 ”큰 엉망진창 상태(shitshow)”가 되어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로스 장관은 ”(영국 내각 각료들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고, 일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도 했다. 정치인들은 정작 자신들이 초래할지도 모를 노딜 브렉시트의 재앙으로부터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 말이다.

″많은 소상공인들은 또 한 번의 전면적인 교착상태에 대단히 분노할 것이다.” 영국 소상공인협회 회장 마이크 체리는 ”또 한 번의 정치적 실패”를 규탄하며 말했다. ”사업도 이런 식으로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절규에 가까운 호소를 쏟아냈다.

”계속되는 불확실성에 따라 수백만개의 영국 소기업들은 계획을 세우지도, 투자를 하지도, 성장을 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 혼돈이 계속되면 지출 및 자원에 대한 비상계획을 세워 온 이들은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Alkis Konstantinidis / Reuters

 

(놀랍게도) 브렉시트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저가항공사 이지젯의 CEO 조핸 룬드그렌은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주주들에게 알렸다. ”지금 쯤이면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제거되기를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이는 분명히 승객 수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TV를 켜거나 뉴스를 보고 웹사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수많은 나쁜 뉴스들을 본다”고 적었다. ”고객들이 (여행을 미루고) 기다리는 패턴이 관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지젯은 올해 상반기에 최악의 실적을 예고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답이 나오지 않은 질문들”이 수요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의 대형 여행업체 토마스쿡은 ”특히 영국 소비자들이 겪고 있는 불확실성”에 따른 실적 악화 가능성을 경고했고, 올해 들어 TV 광고비 지출을 74% 줄였다.

영국 방송사 ITV는 토마스쿡 같은 광고주들이 ”브렉시트에 관해 상황이 확실해질 때까지 광고 집행 결정을 보류”하고 있는 탓에 예상보다 낮은 실적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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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즉 EU와의 합의든, 무질서한 탈퇴든, 탈퇴 절차를 취소할 수도 있는 또 한 번의 국민투표든, (영국을 떠난) 일자리와 돈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은행과 다른 금융서비스 기업들은 계속해서 수천개의 일자리와 1조달러(약 1140조원)어치의 자산을 유럽 (다른) 도시들로 옮기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규제당국이 시행할 규제와 무관하게 영국과 EU의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영국 내 확장 계획을 폐기했다. 부분적으로는 유럽의 무역 허브로서 영국이 갖는 장점이 브렉시트로 약화된 게 요인이었다.

(중략)

″다국적기업들은 영국이 EU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대가로 기업하기 좋은 장소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분명히 이해하고 이곳에 왔다.” 코메르츠방크 런던지사에서 일하는 글로벌 경제 이코노미스트 피터 딕슨이 말했다. ”영국인들은 그 계약을 취소해버렸다. 뭐랄까, 영국이 사업하기 좋은 곳이라는 의견은 깨졌다. 신뢰가 깨졌다. 깊은 상처다.” (뉴욕타임스 4월1일)

싱크탱크 유럽개혁센터(CER)는 최신 자료에서 영국이 EU 잔류를 선택했다면 영국 경제가 지금보다 2.5% 더 성장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브렉시트 때문에 ”연간 190억파운드(약 28조원), 주당 3억6000만파운드(약 5350억원)”씩 손해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골드만삭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2016년 국민투표 이래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매주 6억파운드(약 8910억원) 꼴로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계산이다. 국내총생산은 2.4% 가량 타격을 입었다고, 골드만삭스는 분석했다.

영국상공회의소는 올해 영국에서 기업 투자가 1% 감소해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을 낼 것이라고 전망했고, 파운드화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영국 가구소득 정체를 초래했다고 재정연구소(Institute for Fiscal Studies)는 분석했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2일 오전 각료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뚜렷한 해법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그리 높지 않다. 내각 안에서조차 극단적인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야를 초월해 타협안을 마련하는 데 전념해왔던 닉 볼스 보수당 의원은 자신의 그 모든 수고가 ”실패”했다며 이날 탈당을 선언했다

″나는 이 나라를 유럽연합에서 탈퇴시키면서 동시에 우리의 경제력과 정치적 조화를 이룰 타협안을 찾는 시도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나는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내가 실패한 주된 이유는 우리 당이 타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이 당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발표를 하게 되어 유감이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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