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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시대를 살아가는 법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바뀌어야 해결된다

ⓒVagengeym_Elena via Getty Images

“우리 아이가 비혼 선언을 한다면, 아니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거나, 결혼 아닌 동거를 택하겠다고 해도 말릴 생각도, 자신도 없어요. 자기 인생이니까요. 저출산이 문제지만 취업난, 사교육비, 독박육아, 경력단절, 문제가 하나 둘 아닌데 무조건 낳고 보랄 수 있나요?” 한 지인의 말에 선뜻 반박을 못 했다.

결혼 14년 차 무자녀 방송인 김원희의 발언도 화제다. 한 TV 프로에서 “아이에 대한 조급함과 간절함이 없어 아이를 낳지 않았다”고 밝혔다. 저출산의 주된 사유인 경제적 어려움, 육아 부담 등과 거리 먼 연예인의 ‘배부른’(?) 고백이지만 시청자들은 이해했다.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는 막연한 이유도 충분히 출산하지 않을 이유라고 봤다.

우려했던 ‘인구 급감 쇼크’가 현실이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당장 올해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웃도는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된다. ‘생산연령인구’가 급감하는 ‘인구절벽’도 2020년대부터 본격화한다. 2028년 이후에는 총인구가 감소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0.98명, 세계 최하위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소비 위축, 저성장, 젊은층의 부담증가, 재정악화 등 쓰나미급 파장이 예상된다.

13년 동안 153조를 퍼부은 정부의 대책은 백약이 무효, 대실패로 판명 났다. 백화점식 처방에 선제적 시스템 정비 없는 예산 퍼주기의 한계다. 이제는 기약 없는 출산율 높이기에 매달리기보다 ‘저출산·고령화’에 ‘적응’하는 국가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서울에서조차 학생이 없어 문 닫는 학교가 나오는 마당에 교사 과잉공급을 방치하는 헛발질을 하루빨리 멈추라는 얘기다.

정도는 달라도 다른 나라들도 저출산을 겪었다. 고출산·고사망에서 저출산·저사망으로 가는 것이 인류 공통 인구 변천사다. 단 그 과정에서 국가가 얼마나 가족친화적 정책을 내놓으며 사회적 동의를 끌어내는가가 관건이라고 인구학자들은 지적한다. 서구 선진국들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국가의 인구통제를 강조한 전통적인 ‘인구와 발전 패러다임’에서 개인의 건강· 복지·인권을 강조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해, 합계출산율 1.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목표 출산율을 정해놓고 ‘아이를 많이 낳아라’ ‘돈 주겠다’는 식으로 밀어붙였다. 젊은층의 이기심을 탓했다. 낙태는 ‘당연히’ 범죄였다. 과거 산아제한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하향식 통제모델이다. 앞서 예로 든 대중의 인식 변화와도 괴리된 낡은 패러다임이다.

인구가 국력의 지표란 점에서 인구 문제는 늘 국가주의, 경제주의적 접근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국가적 아젠다인 것과 구성원들에게 ‘국가주의적 출산’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가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출산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애국주의 공포 마케팅’이 통할 리 없다.

아이를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자 권리이고, 법률혼 관계이든 사실혼 관계이든 아이는 다 소중하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남녀(부모)는 물론이고 사회가 함께 키워줄 것이며, 아이가 살아갈 이 나라는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 없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은 지금 이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저출산 대책이 보육, 교육, 고용, 주거, 젠더, 청년, 복지를 아우르며 사회의 새 판을 짜는 종합정책이 돼야 하는 이유다. 물론 출발은 성평등이다. 최근 내한한 나탈리아 카넴 유엔인구기금 총재도 “저출산 해결의 돌파구는 여성들이 임신·출산의 자기결정권을 누릴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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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저출산 #출산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