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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는 성추행 유죄 판결 뒤에도 이사장 자리를 지켰다

수백개 사찰을 거느린 불교재단법인 선학원이다.

ⓒKameleon007 via Getty Images

“손이 차네, 건강이 안 좋은가 보다.” 일흔이 넘은 법진 스님은 가끔씩 “손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그는 윤소연(가명)씨가 일하는 불교재단법인 선학원의 이사장이었다. 수백개 사찰을 거느린 선학원에서 그의 권한은 막강하다. 2008년부터 이사장을 현재까지 세차례 연임했다. 스님은 땀이 찰 때까지 손을 잡고 있었다. 윤씨는 갓 입사한 수습 직원이었다. 스님이 두려워서, 직장을 잃을까봐 윤씨는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손’에서 끝나지 않았다. 2016년 8월 법진 스님은 “할 말이 있다”며 윤씨를 갑자기 강원도 속초로 데려갔다. 이번에는 자동차 보조석에 앉은 윤씨의 가슴 부분을 슬쩍 성추행했다.

당시 재단 사무국 직원은 5~6명. 이사장인 법진 스님이 출근하면 물을 가져다주고 수행하는 등 업무는 말단 직원인 윤씨의 몫이었다. 얼굴을 매일 맞대는 것을 견디다 못한 윤씨는 2016년 10월 스님을 고소했다. 지난 1월 대법원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불구속 기소된 법진 스님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지난 3월 초 선학원 이사회는 법진 스님의 이사장 임기를 보장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법진 이사장 퇴진을 주장하는 스님들의 모임인 ‘선학원 미래포럼’은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에 ‘법진 스님이 이사장으로 사찰 재산처분권, 승려에 대한 해임권 등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며 직무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재단에서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하고 저도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다시 직장에 돌아가도 성폭력 피해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됩니다.” 윤씨는 2016년 10월 이후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재단 사무국은 2017년 11월 윤씨의 4대 보험 상실 신고를 했다. 윤씨는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을 낸 끝에 겨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가입 자격을 되살려놨다.

최근 윤씨는 4월1일부터 출근해도 된다는 약속을 재단으로부터 받아냈다. 그러나 재단은 가해자에 대한 징계 여부, 윤씨가 맡을 업무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지난 26일 재단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사장으로부터) 업무 지시가 직접 내려가지 않을 것이고 ‘근무 내부 관리 규정’에 따라 공간을 분리해 근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 건물 안에 있으니 얼굴 마주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고 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이 확인됐을 때, 사업주는 가해자를 징계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재단은 어떤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 1월 재단법인 선학원에 과태료 400만원을 부과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윤씨의 변호를 맡은 전승진 변호사는 “피해자가 복직해 성추행 피해를 당하기 이전의 생활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업주인 재단이 가해자 징계 등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씨는 여성쉼터에 머물며 피해회복 치료 등을 받고 있다. 그는 최근 잇따른 ‘미투’를 보면서 용기를 내어 종교계 성폭력 문제를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저는 모태 불자거든요. 대부분의 신도는 성직자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서 성추행을 당해도 곧바로 대응하기 어려워요. 종교계에서는 위신이 훼손될까 걱정해 공론화하길 꺼리는 분위기 같고요.”

윤씨는 매일 금강경을 읽으며 기도한다. 지금 간절히 바라는 일은 하나다. 가해자가 없는 일터로 돌아가서, 성폭력 사건 이전의 삶을 되찾는 것. 4월1일, 그는 2년5개월 만에 ‘가해자가 있는’ 일터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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