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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대안 8개를 투표에 부쳤고, 모두 부결됐다

메이 총리는 '합의안이 통과되면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 허완
  • 입력 2019.03.28 12:13
  • 수정 2019.03.28 15:37
ⓒASSOCIATED PRESS

영국이 좀처럼 브렉시트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하원은 브렉시트의 다양한 옵션을 놓고 투표를 벌였지만 어떤 것도 다수 의견을 확보하지 못했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합의안이 통과되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읍소했지만 세 번째 시도가 성공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영국 하원은 27일(현지시각) 의원들이 제출한 브렉시트 옵션들에 대한 의향투표(indicative vote)를 벌였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의회의 여론을 공식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의회의 다수 의견이 모아진다면 정부도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날의 투표는 의회가 어떤 것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아무것도 합의할 수 없었다

제출된 15개 안건들 중 존 버커우 하원의장의 선택을 받아 표결이 진행된 건 총 8건이다. 메이 총리는 보수당 의원들에게 자유투표를 허용했고,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는 당론에 따른 투표를 의원들에게 주문했다.

이날 진행된 표결에서 그나마 가장 근소한 표차로 부결된 건 ‘정부는 EU와 영구적이고 포괄적인 관세동맹을 협상한다’는 옵션이었다. 이 구상은 찬성 264표 대 반대 272표를 얻었다. 표차는 근소했지만 과반(320표)에는 한참 못 미친다.

‘어떤 합의안이든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한다’는 옵션, 사실상의 2차 국민투표 옵션은 찬성 268표 대 295표로 부결됐다. 표차는 더 크지만 과반 달성에 그나마 제일 가까웠던 옵션이다.

나머지 6건은 모두 큰 표차로 부결됐다. 노동당이 당론으로 꺼낸 옵션을 뺀 나머지 옵션들은 200표도 얻지 못했다.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유럽경제지역(EEA)에 가입하고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모두 잔류하는 옵션(‘노르웨이 플러스’)은 찬성 188표 대 반대 283표로 부결됐다.

노동당 버전의 소프트 브렉시트, 즉 ‘EU 관세동맹에 잔류하고 EU 단일시장은 떠나지만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다’는 옵션은 찬성 237표 대 반대 307표로 거부됐다.

EFTA와 EEA에 가입하되 EU 관세동맹에서는 빠진다는 옵션은 찬성 65표, 반대 377표를 얻었다.

새로 연기된 브렉시트 날짜(4월12일)에 EU와 합의안 없이 그냥 탈퇴해버리자(노딜 브렉시트)는 옵션은 160표 대 400표로 부결됐다. 

브렉시트를 취소하자는 옵션은 184표 대 293표로, ‘합의안이 무산되면 EU를 상대로 무역 특혜협정을 추진하자’는 옵션은 139표 대 422표로 부결됐다.

하원은 다음주 월요일(4월1일)에 의향투표를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그 전까지 메이 총리의 합의안에 대한 3차 승인투표(meaningful vote)가 열려 통과된다면 의향투표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브렉시트부 장관 스티브 바클레이는 하원의 투표 결과는 ”쉬운 옵션도 없고, 쉬운 길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메이 총리가 EU와 타결(했지만 의회가 두 번이나 압도적으로 반대)한 합의안이 유일한 최선의 옵션이라는 주장이다. 

ⓒJack Taylor via Getty Images

 

메이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메이 총리는 조건부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EU와의 “2단계 브렉시트 협상”은 새로운 지도자가 이끌도록 하겠다는 것.

″저는 2단계 협상에서 새로운 접근법,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길을 가로막지 않을 것입니다. (...) 저는 우리나라와 우리 당에게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제가 의도했던 것보다 일찍 이 직책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메이 총리가 당 평의원들에게 전한 말이다.

메이 총리가 사퇴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보수당 의원들은 5월22일 이후를 뜻하는 게 분명하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날은 합의안 통과를 전제로 EU가 연기에 합의해 준 브렉시트 날짜다.

그러나 보수당 내에서 후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메이 총리가 계속 총리직을 유지하게 된다. 정확한 사퇴 시점은 6월이나 7월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메이 총리의 리더십은 이미 더 내려갈 곳도 없을 만큼 추락한 상황이다. ‘이름 뿐인 총리‘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다. 소속당 의원들을 물론, 내각 각료들까지 이제는 아예 대놓고 ‘반란표’를 던지고 있으며, 정부에 반대표를 던지기 위해 각료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 됐다.

브렉시트 협상 파트너인 EU도 메이 총리에 대한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합의안 의회 통과를 위한 전략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대안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의 조건부 사퇴가 ‘승부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내 의원들의 압박에 의해 마지못해 떠밀리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전날(26일) 영국 언론들은 ‘총리가 사퇴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합의안을 지지해줄 수 있다’는 보수당 의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Associated Press

 

3차 승인투표는 없다...?

현재로서 질서있는 브렉시트를 위한 최선의, 최선 버전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이번주 중) → 브렉시트 관련 법안 통과 및 EU 공식 탈퇴(5월22일) → 보수당 새 대표(총리) 선출 및 메이 총리 사임(6~7월) → 신임 총리 주도로 EU와 무역 등 미래관계 협상 진행(~2020년 12월)

이를 위해서는 우선 브렉시트 합의안이 세 번째 시도 끝에 마침내 의회의 문턱을 넘어선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통과 여부는 커녕 투표가 실시될지 여부조차도 불투명해졌다. 400년도 넘은 의사절차 진행 규정을 근거로 메이 총리의 3차 승인투표 시도를 가로막았던 존 버커우 하원의장이 새로운 경고를 내놨기 때문이다.

그는 ‘내용에 중대한 변화가 없는’한 이미 의회가 부결시켰던 안건을 다시 상정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의원들의 표를 앞세워 이같은 규정을 회피하려 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EU와의 협상 끝에 브렉시트 날짜가 변경됐고, 논란의 ‘아일랜드 백스톱’ 조항에 대해서도 추가 확약을 문서로 받아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부결됐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라는 것.

설령 이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져 3차 승인투표가 성사되더라도 통과 여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보수당과 사실상의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은 메이 총리의 사임 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합의안을 지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 일부 의원들이 입장을 바꿔 지지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30여명으로 집계되는 완강한 반대파와 DUP(10석)의 도움 없이는 과반 확보가 어렵다는 평가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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