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9년 03월 26일 16시 40분 KST

나를 때렸던 연인에게 일주일 뒤 돌아갔다. 여성들이 완전히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이렇다

싸우지 않을 땐 정말 잘 지냈다. 그는 재미있고 다정하고 나를 배려했다.

PHOTO COURTESY OF LAUREN WELLBANK

그가 처음 나를 때렸을 때 우리는 차에 타고 있었다. 그의 손은 아무 예고도 없이 날아와 내 얼굴을 때렸다. 우리는 잠시 충격을 받아 말없이 앉아 있었다. 피가 나는지 보려고 입술에 손을 대보았더니 손가락이 빨갰다. 우리는 둘 다 겁에 질려 내 손가락을 보았다.

“젠장!” 패닉에 빠진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았다. “장난이었어, 맹세해.” 그는 웃었다. “정말로 너를 때리려던 게 절대 아니야.”

숨이 목구멍에서 막힌 것 같았다.

그는 “신에게 맹세해, 정말 장난이었어.”라고 했다. 나는 손이 떨렸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너도 알지,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목소리가 잘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그전에 하던 대화로 돌아갔다. 가끔 나를 바라보며 다시 사과했다. 그때마다 웃었다. 무장 해제 효과가 있었다.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갔고, 나도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입술의 피가 멎어 있었다. 차에서 있었던 순간은 그의 말처럼 느껴졌다. 사고, 실수, 장난.

다음 번엔 침실이었다. 싸우다 갑자기 나는 바닥에 쓰러져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많이 싸웠다. 물음에 대답이라도 한 번 잘못하면 여러 일들이 잇따라 벌어졌고, 그는 벽에 주먹질을 하고 잔을 집어던졌다. 나는 소파 위에 쪼그리고 앉아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자동차와 침실 사이의 몇 달 동안 나는 서서히 친구와 가족들 대부분으로부터 멀어졌다. 내 연애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두려웠고, 모든 게 너무 빨리 바뀌어서 혼란스러웠다. 애초에 이런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굴욕적이었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터놓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사람들이 “나는 절대 그런 식으로 취급을 받을 수 없어.”, “여성들이 어쩌다 그런 관계를 맺게 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야.” 같은 말들을 하는 걸 들었다. 그게 어땠는지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는 늘 그렇지는 않았다. 늘 나쁘지도 않았다. 싸우지 않을 땐 정말 잘 지냈다. 그는 재미있고 다정하고 나를 배려했다.

잘 지낼 때면 나는 그런 일들이 정말로 일어났던 것인가 싶었다. 정말 나쁜 싸움이 있고 난 뒤 며칠 동안은 그는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고 재미있고 나를 배려했다. 그럴 때면 그는 내게 약속을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본심이 아니었다.

더 이상 나를 해치지 않겠다.

성질을 부렸던 것 뿐이었다.

그는 약속했다.

 

한동안은 참 좋았다. 그가 상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는 침묵의 이해가 있었다. 그는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는지를, 우리가 영영 헤어질 뻔했다는 것을 아주 잘 인식했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긴다면 내가 떠날 거라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다시 시작하곤 했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로 벌어진 멍청한 싸움 때문에 모든 것이 한계점까지 다다랐다. 작은 일로 폭발해 폭력을 쓸 수 있는 사람과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나는 결론내렸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도 동의하고 내 입장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PHOTO COURTESY OF LAUREN WELLBANK

 

내 생각은 틀렸다. 그가 나를 떠나길 원한다고 말하자 마치 그의 내면에서 뭔가 부러진 것 같았다. 그는 예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화를 내며 폭력적이 되었다. 그가 나를 죽일 거라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멍든 몸을 벌벌 떨며 부모님 집에 갔다. 그 날 떠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일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지난 몇 달을 설명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어머니, 언니, 이모, 가까운 친구들에게 매번 이야기를 해야 할 때마다 늘 똑같이 힘들었다.

나는 그들의 눈에 비친 나를 보았다. 내가 생각해왔던 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23세에 자기 힘으로 첫 집을 산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 속에서 나를 마주보는 사람은 약하고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몇 달 동안 위험하고 멍청한 결정을 연달아 내린 사람 같아 보였다. 나는 그녀가 싫었다.

그 당시에는 여성 4명 중 1명이 가까운 파트너의 폭력 피해자라는 걸 몰랐다. 평균적으로 여성은 파트너를 떠나려고 7번 시도해야 성공한다는 것도 몰랐다.

여성들이 자신을 학대한 사람들에게 되돌아가는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재정적 불안정, 친구와 가족들의 감정적 지원 부족,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 등이다. 슬프게도 미국에서 2003년부터 2014년 사이에 살해 당한 여성들의 절반 가량은 자기 파트너에게 살해 당했고, 이러한 살인의 75%는 헤어진 다음에 일어났다.

부모님 집에 간 날로부터 일주일 후에 나는 레스토랑에서 나를 학대한 사람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는 일주일 동안 내게 이메일과 문자를 수십 번 보냈다. 매일 내가 좋아하는 꽃다발이 사무실로 배달되었다. 모든 메시지에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미안한지 말할 기회를 달라, 자신이 나를 그토록 심하게 해쳤다는 사실을 짊어지고 살 수가 없다고 빌었다.

만나서 이야기만 한다면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설명했다. 나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 는 게 다였다. 이런 일은 절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면 내가 영영 떠날 거란 걸 마침내 이해했다.

“이걸 증명할 기회를 한 번만 줘. 지금부터는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우리가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걸 내가 정말로 버릴 수 있을까?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의 약속처럼 심지어 더 좋아진다면?

나는 그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만 하면 되었다. 사랑에서 기회 한 번이 대수인가?

학대는 외부에서 이해하기가 힘들다. 흑백이 아니다. 치켜든 주먹이 다가 아니다. 학대에는 여러 스펙트럼이 있고, 천천히 일어난다. 솥에 든 랍스터처럼, 물이 부글부글 끓기 전까지는 위험한 줄도 모른다. 나는 처음 맞았을 때부터 이미 요리되고 있었지만, 그걸 몰랐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확신하게 되지만,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때쯤이면 너무나 겁이 나고 수치스러워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된다. 내 발로 솥에 들어가 불을 켰다고 스스로 믿어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솥 안에 있을 때는 외롭고 무섭고, 절대 나가지 못할 것 같다. 나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몇 번의 시도가 필요할 때도 있다. 바깥 세상이 너무 춥다고 느껴져서 돌아갈 수도 있다. 솥을 볼 수 있는 곳이 더 안전하게 느껴져서 돌아갈 수도 있다. 나는 “들어 와. 물은 괜찮아.”라는 그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돌아갔다.

물은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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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동안은 참 좋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예전과 똑같아졌다.

두 번째로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때는 훨씬 더 힘들었다. 동정의 눈빛은 사라졌다. 이제 나는 공범이었다. 경찰은 내가 전화한 이유를 듣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며칠 출근 못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동안 내 상사는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가 달라질 줄 알았지만 안 달라져서 이렇게 되었다.”라는 말을 해야 할 때마다 모두의 눈에는 실망이 떠올랐다.

평균 7번이다. 다행히 나는 2번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겁에 질렸고 마음이 아팠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빠져나왔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와 돌아보면 학대의 사이클이 명확히 보이지만, 그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다. 인정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정말이지 대체 어떤 여성이 누가 자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놔둔단 말인가? 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관계에 빠진단 말인가?

나 같은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 당신이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4명 중 1명이다. 당신의 친구, 당신의 자매, 당신의 회계사, 당신 동네의 저택에 사는 여성일 수도 있다. 무서울 정도로 흔히 일어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필요하다. 학대를 수치와 침묵으로 덮는 것은 학대자를 보호하는 행위이며 사람들이 도움을 구하지 못하게 만든다. 내 이야기는 부끄러웠다. 한참 지난 지금도 부끄럽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단 한 명이라도 빠져나오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듣도록 말할 것이다.

나는 4명 중 1명이었다. 난 빠져나왔고, 다시 돌아갔다가 다시 빠져나왔다. 당신도 빠져나올 수 있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