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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이후, 중동의 세력 공백을 어찌할 것인가?

IS를 탄생시킨 문제는 그대로이다.

ⓒRodi Said / Reuters

지난 23일 마지막 근거지가 함락된 이슬람국가(IS)를 탄생시킨 문제는 그대로이다. 중동의 세력 공백이다. 시리아와 이라크 및 그 주변 지역은 혼란스러운 세력 착종과 공백이 여전하다.

이슬람국가는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전쟁의 산물이다. 전쟁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대책 없이 붕괴시켰다. 시리아 내전까지 겹쳤다. 후세인 및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 통제력이 사라진 공백은 미국이 뒤쫓던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부활터가 됐다.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반미적이었으나, 중동의 한가운데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을 막는 방파제 구실을 해왔다. 특히,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중동에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는 한편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제하는 세력의 균형추 역할을 했다. 미국은 9·11 테러와는 관련 없는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고, 내전에 휩싸인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제거하려 했다. 후세인과 아사드 이후의 청사진이나 세력이 없었다.

시리아와 이라크를 포괄하는 레반트 지역에는 거대한 세력 공백이 생겼다. 그 속에서 이슬람국가가 출현했다. 이슬람국가의 출현과 성장, 몰락은 이 지역의 세력 균형 붕괴에 이은 세력 공백으로 잘 설명된다.

무장단체가 국가를 선포하는 사태 앞에서도 주변 국가들은 방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 수니파 보수왕정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려고 반군을 지원했다. 그 최대 수혜자는 이슬람국가였다. 아사드 정권은 내전 구도를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로 만들어 정권의 정당성을 만들려 했다.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을 석방하는 등 이슬람국가 성장을 방조했다. 터키는 자국 내 최대 안보 우려 사안인 쿠르드족의 영역을 잠식하는 이슬람국가를 방조했다. 아무도 이슬람국가를 막으려 하지 않았다.

욱일승천할 것 같던 이슬람국가가 대항 세력이 형성되자 급속히 붕괴의 길로 간 것도, 이 단체가 세력 공백의 산물임을 방증한다. 이라크 전쟁 수렁에 빠졌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는 미군 증파가 아니라 현지 세력 양성 전략을 채택했다. 이슬람국가에 생존 위협을 가장 크게 받는 쿠르드족을 주축으로 시리아민주군(SDF)을 양성해 궤도에 올리자, 이슬람국가는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다. 시리아 정부군도 내전에 개입한 러시아의 지원으로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자, 공세로 전환해 곧 이슬람국가를 축출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슬람국가의 ‘칼리프 국가’는 소멸했으나, 무장단체로서 이슬람국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제2의 이슬람국가나, 다른 분쟁을 야기할 조건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국가가 사라진 자리와 그 주변의 세력 공백은 여전하다.

내전에서 사실상 승리한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를 미국 등 서방은 인정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이슬람국가를 격퇴한 쿠르드족의 지분 역시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라크 전쟁 이후 찬밥 신세가 된 이라크와 시리아의 수니파 주민들의 불만을 담지할 세력이나 거버넌스도 없다.

이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란과의 국제 핵협정을 파기하고, 무제한의 이란 봉쇄정책을 추진한다. 이라크 전쟁 이후 세력을 확장한 이란 및 아사드 정권-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세력 공백이 분쟁으로 이어질 폭발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조건이다.

이라크와 시리아가 있는 레반트 지역은 인류의 문명이 발원하고, 수많은 제국의 근거지가 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이다. 이 지역의 불안은 동심원처럼 세 대륙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미 유럽은 이곳에서 발원한 난민 사태로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다.

문제는 미국식 자유주의 체제를 이식하려고 이라크 전쟁을 감행한 네오콘처럼 ‘자신들이 희망하는 현실’을 앞세운 이상주의다. 이제 레반트 지역의 현실과 세력을 있는 그대로 먼저 인정하고서, 이 지역의 권력 주체들을 세워서 협상과 타협을 할 때이다. 하지만 한때 중동분쟁의 종식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을 악의 근원으로 보며 무한 봉쇄를 추진하는 보수우파의 이상주의에 경도되는 징후를 보인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불발이 그 맥락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중동을 보며 한반도를 걱정하는 이유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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