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2019년 03월 26일 09시 49분 KST

고연봉의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가 되기로 한 이유

남편이 재정적으로 가족을 유지하는 동안 집에 있을 수 있다는 게 무척 감사하다.

TANYA KERTSMAN

7개월쯤 전, 돈을 잘 버는 제약회사 직원이었던 나는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8년 동안 일을 해왔다. 그러던 8월말의 어느 날, 나는 최후의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물론 하룻밤 사이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몇 달 동안 깊이 생각하고, 장단점의 목록을 만들어 보고, 남편과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눈 끝에, 나는 집에서 지금 거의 2살이 되어가는 아들과 3살짜리 딸을 키우는데 전념하기로 했다.

4년 전에는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늘 커리어를 중시했고, 내 다음 단계를 고려하고 5년짜리 목표를 세웠다. 내 일은 쉽지 않았고 보람찼다. 최근 발표된 논문, 경험 많은 동료, 새로운 약품 승인 등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 넘어가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이 모든 걸 잠시 내려놓는다는 결정엔 많은 고민이 따랐다.

일을 계속할 것이냐, 집에서 아이들을 키울 것이냐를 결정하려니 흥분과 두려움이 양쪽에서 날 끌어당겼다. 아이들의 형성에 중요한 기간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니 흥분이 느껴졌다. 일을 쉬어서 내 은퇴 자금 마련에 차질을 빚고 커리어의 가능성을 해친다는 건 두려웠다.

통근이 1시간 이상 걸려서 아침과 저녁마다 아이들을 챙기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해서, 통근 시간을 혼자만의 시간으로 정당화해보려고 출근길에 팟캐스트를 들었던 게 기억난다. 나의 팀 관여도가 높아질수록 내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들이 많아졌다.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컨퍼런스 참석 출장도 늘었다. 그에 따라 재택 근무를 하며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침마다 나는 오늘은 누구를 실망시킬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희생하고 있다는 기분이 늘 들었다.

2015년에 딸이 태어났을 때 남편과 나는 커리어와 육아의 밸런스를 맞추느라 힘들어 했다. 출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 출장을 갔던 게 기억난다. 내가 없는 동안 아기를 돌보도록 계획을 짜놓고, 컨벤션 센터에서 회의와 회의 사이에 유축을 하며 젖을 어떻게 신선하게 보관할지 궁리하고 일을 잘 마치자니 일주일 간의 출장은 악몽 같았다. 하지만 일하는 부모들이 그렇듯 우리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2017년에 아들이 태어났을 때, 힘드리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출산휴가 후의 복직이 기대되었다. 부담을 절반씩 나누는 배우자, 믿을 수 있는 돌보미, 우리를 돕는 양가 부모님들이 있어서 커리어와 가정 생활을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벽하지는 않으리란 걸 알았지만 그건 괜찮았다.

예상대로 매끄러운 기간도, 한 가지 작은 일 때문에 모든 일이 다 틀어지는 기간도 있었다. 두 아이를 둔 일하는 어머니로서, 나는 누구도 내가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다거나 충분히 잘 하지 못한다고 느끼질 원치 않았기 때문에 과하게 노력했다. 성공해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었다. 유치원에서 딸을 데려 오려면 4시 30분에 퇴근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잠자리에 들 시간 이후에 그 날 마치지 못한 일을 마저 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남편은 의사라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야 한다. 남편은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 줄 수가 없는 날이 많아서 나는 유치원에 7시에 가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내가 정시에 출근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유모가 오질 않아서, 남편과 나는 새벽 6시에 부엌에 서서 누가 집에 남아야 하는지 싸웠다. 나는 빠져선 안 되는 회의가 있었고 남편은 수술실에 들어가야 했다. 미친 듯 정신없이 바빴다.

우리의 삶은 하루 단위로 흘러갔다.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하고 바랐다. 남편과 나는 이것이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가끔은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난 할 수 있어. 이건 할 수 있는 일이야. 내가 모든 걸 과하게 생각하고 있어. 내가 희생을 좀 해야겠지만 우린 해낼 수 있어.

마음 한편에서는 다른 속삭임이 계속 들려왔다. 넌 이 시절을 다시는 되찾지 못해. 내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늘 존재했다.

이런 결정은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며, 각 개인의 상황에 달려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어야 할 시간은 지금이라는 걸 결국 깨달았다. 내 가족과 내가 준비가 되면,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할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물론 이 결정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너무나 퇴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야망을 품고 높은 목표를 가지라고 배웠다. 나는 내가 원하는 커리어를 쌓기 위해 학교에 오래 다녔다. 늘 다음 단계가 있었다. 약대에 들어가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펠로우(임상 강사)로 수련을 마치고, 제약업계에서 일하고, 내 커리어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 나는 언제 돌아올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직장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내가 평생 동안 쌓아올리는 것을 포기하는 기분이었다.

이민자였던 내 어머니는 풀타임으로 일하며 우리 남매를 키웠다. 어머니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내 안정적인 직장과  꾸준한 수입을 버릴까 말까 고민하며 내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위험 요소들을 쉬지 않고 생각했다. 장기적으로 내가 재정적, 감정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존경할까? 미래의 잠재적 고용주들이 나를 여전히 가치있게 생각할까. 육아에 집중하기 위해 커리어를 접는 것에는 오명이 따름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벌어오는 우리 가계 소득의 상당한 부분이 사라진다. 직접 돈을 버는 여성이 아니게 되면 내 소비 습관은 어떻게 달라질까?

일하는 여성이 아니라면 나는 누구지? 이 궁극적인 질문의 답은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다. 나는 당시의 삶이 그립지만, 나 자신을 보는 시각을 천천히 재정의하고 있다.

TANYA KERTSMAN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는 어머니로 7개월을 살아보니, 내가 스스로를 달라지게 할 기회를 가졌음을 깨닫는다. 인간으로서 배우고 성장하고 진화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약대에 지원한 순간 시작된 내가 만든 인생의 길을 계속 걷지 않아도 된다. 새 길을 만들기 시작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제 딸이 다니는 유치원의 기금 모금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아이들이 지역 사람들에게 장기 자랑을 한다. 암 후원 단체에서 하고 있는 자원 봉사 참여에서 엄청난 가치를 느낀다. 주중 대낮에 아들을 데리고 도서관 동화 낭독에 간다. 아들이 자는 동안 스타일과 육아에 대한 블로그를 쓴다.

남편이 재정적으로 가족을 유지하는 동안 집에 있을 수 있다는 게 무척 감사하다. 이런 게 불가능한 가족들이 많다는 걸 안다. 내가 우리 계좌에는 기여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제공한다.

난 이제 내 일정이 얼마나 빡빡한지로 나의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아무 계획도 없는 날은 아들 딸과 함께 세상을 탐험할 기회가 된다. 갑자기 눈이 내리는 날, 베이비시터가 오지 않는 날에도 예전과 달리 남편과 나는 평화롭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나의 새로운 정상 상태는 학교에서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닌 생활이다. 서류상으로는 안 좋아보일 수 있다. 억대 연봉을 벌지도 않는다. 퇴직금 적립도 하고 있지 않다. 멋진 사무실도 없다. 하지만 나는 대낮의 댄스 파티에 갈 수 있다. 아침 식사 후 숨바꼭질을 할 수 있다. 타코를 먹는 용이 나오는 동화책을 5번 연달아 읽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나는 여기가 아닌 그 어느 곳에도 있고 싶지 않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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