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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선고 시점'이 문제다

  • 백승호
  • 입력 2019.03.22 17:24
  • 수정 2019.03.22 17:28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문형배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와 이미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지명한 두 후보자는 4월 18일에 임기가 끝나는 서기석·조용호 재판관 후임이다.

두 후보자가 임명된다면 헌법재판소의 색채가 달라지게 된다. 2017년 말에 임명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이번에 임명될 이미선, 문형배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로 진보적인 색채를 갖고 있다. 이석태 후보와 이은혜 후보는 2018년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사다. 김명수 대법원장 역시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진보적인 인사로 구분된다. 여기에 국회 몫인 3명 중 김기영 재판관은 더불어민주당의 추천을 받아 임명됐다. 전체 9명의 재판관 중 6명을 ‘진보적’ 인사로 분류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 이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다른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하며, 나머지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다. 헌법재판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6년이다.”

법조계는 이번 헌법재판관의 임명이 마무리되면 전향적인 판결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형법 269조 1항의 자기낙태죄와 270조 1항의 의사낙태죄에 대한 위헌 판단이다. 형법은 임신한 사람이 직접 낙태를 했을 때와 의사가 요청받아 낙태했을 때 각각 1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에 낙태죄에 대해 ”낙태를 처벌하지 않으면 현재보다 더 만연하게 될 것”이라며 합헌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사실상 ‘물갈이’가 된 지금의 헌법재판소는 2012년과 비교할 때 확연히 차이난다.

 

<현행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관들의 입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임명 당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 관한 최상위 기본권인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 보호받아야 하지만 임신 초기 단계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도 존중돼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

이석태
낙태죄에 대해서는 청문회라는 이유로 답변을 피함. 다만 민변 회장과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낸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점. 동성혼에 대해 “당장은 어렵겠지만 결국 동성혼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던 점을 고려할 때 현행 낙태죄에 위헌 의견을 낼 가능성이 높음.

이은애
임명 당시 ”지금 헌재의 낙태 허용 범위가 지나치게 좁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임신은 산모에 출산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함.

이영진
임명 당시”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하고 낙태죄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 제시.

김기영
임명 당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이런 문제가 충돌하는 문제이고 현재 헌재에도 사건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가지 논의를 반영해서 헌법재판관이 된다면 좋은 결론을 내리도록 노력을 하겠다”는 의견 제출

문형배
청문회 전이라 의견 없음. 노동 사건·아동 학대·가정 폭력 사건 등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해왔다는 청와대의 평가

이미선
청문회 전이라 의견 없음. 노동자의 법적 보호 강화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노력해왔다는 청와대의 평가. 2009년 2월 ‘여성 인권 보장 디딤돌상’ 수상 경력이 있음

이종석
자유한국당의 추천으로 임명됨. 낙태죄에 대해 입장 없음

이선애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이 임명. 낙태죄에 대해 입장 없음

 

ⓒClassen Rafael / EyeEm via Getty Images

하지만 문제가 있다. 낙태죄 위헌 여부 판단의 주심이 다음달 18일 퇴임하는 조용호 재판관이란 점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한 헌법학계 인사는 “주심인 조용호 재판관은 임기 안에 이 사건을 처리하려고 한다. 재판부에서 사건을 빨리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조용호 재판관의 ‘의지‘는 지난 2월에도 보도된 바 있다. 경향신문은 당시 ‘헌법재판소가 오는 4월 11일 특별기일을 정해 형법상의 낙태 관련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기사를 냈다. 퇴임을 앞둔 서기석 재판관과 조용호 재판관 모두 낙태 조항을 손대는 데 신중한 입장이라는 관측이 제시되는데 만약 이들 퇴임 전에 낙태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가 심판된다면 낙태죄가 합헌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올 2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75.4%가 낙태죄 개정에 찬성하는 등 여론이 낙태죄의 개정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퇴임을 앞둔 재판관들이 여론의 압박을 느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만약 내부에서 ‘합헌‘으로 기울 경우 작년에 취임한 이은애, 이석태, 김기영 재판관 등이 ‘검토시간 부족’ 이유 등을 들며 뒤로 미룰 가능성도 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새로 합류한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 체제 하에서 낙태죄를 다시 심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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