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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디터의 신혼일기] 노안인 여자가 동안인 남자와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분노하기에는 내 인생은 단 한 번도 동안이었던 적이 없었다.

ⓒAndSim via Getty Images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나이차이가 좀 있는 커플의 경우, 나이가 더 있는 쪽이 동안이고 나이가 좀 적은 쪽이 노안일 때 잘 어울리는 것 같이 보인다. 마치 비슷한 또래의 사람처럼 보이니까, 그런 커플을 보면 다들 “잘 어울린다”고 한다.

하지만, 듣는 그들은 기분이 좋을까?

특히 노안인 쪽은?

나와 신랑은 일곱 살 차이가 난다. 은근히 큰 차이다. 내가 6학년 꿈자람반에서 반 대항 피구를 하고 있을 때 신랑은 쪼인엠티에서 다른 대학 여학생들과 ‘여왕벌 피구‘를 하고 있었고, 내가 여중 축제 무대에서 추려고 원더걸스의 ‘텔미‘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영상을 보고 있을 때, 신랑은 군대 내무반에서 ‘뮤뱅’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내가 수능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그는 취업 준비에 한창이었고, 내가 각종 알바로 20대 초반을 바쁘게 보낼 때 그는 수습사원 딱지를 뗐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내가 첫 인턴을 할 때였고, 그 해 그는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받았고 대리로 승진했다.

그 정도의 차이다. 일곱 살은.

지금, 그래서 나를 처음 만났던 당시 그의 나이에 가까워진 내가 돌이켜보니 그는 나에게 맞춰주기 너무 편했을 것 같다. 이미 그 나이를 오래 전에 지난 사람의 입장에서 그 당시의 생각과 고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덕분에 우리의 연애는 매우 편안하고 즐거웠다. 어떤 때는 동네 오빠 같았고, 어떤 때는 보호자 같았다.

문제는 외모로는 내가 누나 같아 보였다는 것이다.

왜?

무려 일곱 살 차이가 나는데?

하지만 분노하기에는 내 인생은 단 한 번도 동안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노안이었다. 이제는 아주 내성이 생겨서 마음아프지도 않아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래도 노안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내 인생을 회상해보았다.

초6, 시내버스

초딩뉴: (버스에 타며 천원짜리를 낸다)초등학생이욤

기사: ??초등학생?

초딩뉴: 넹 ㅎㅎ

기사: 뭔 소리야 아가씨? 속일 걸 속여야지... 아가씨가 무슨 초딩, 뭐? (코웃음) 내가 어이가 없어서.

초딩뉴: 저 초등학생 마자요...

기사: 아니 참, 허, 어이가 없어서. 일단 타요. 사람들 기다리니까.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건 천원에서 그당시 성인요금(720원)을 뺀 280원이었다.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진짜 진심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 #버스기사 #해명해

고 2, 엄마 심부름으로 유치원생 막내랑 마트

고딩뉴: 막내야~ 손 꼭 잡고 따라와. 길 잃어버린다.

지나가는 할머니: 아이고~ 새닥이랑 아가 똑같이 생겼네.

고딩뉴: (내 말하는지 모르고 엄마가 준 심부름 종이 보는 중)

할머니: 새닥, 야가 몇 살이우? 아가 참 크네. 얼굴은 아가인데.

고딩뉴: 네? 저요? 새댁? 저요??

할머니: ㅇㅇ You... 말고 여기 새댁이 누가 있지?

고딩뉴: 얘는 제 동생이예요!!!! 그리고 전 새댁이 아니고 고등학생이예요!!!!!!

할머니: 애기 증말 귀엽넹ㅎ(쌩까고 감)

살아오는 내내 이런 비극이 벌어진 것에는 모델 제안은 아니고 배구선수 제안을 몇차례 받았던 장대한 기골도 한몫했겠으나 타고난 얼굴 자체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사는 내내 성숙해 보인다는 말은 오조오억번 들었지만 어려 보인다거나, 귀엽다거나 하는 소리는 들어본 바가 없었으니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 자꾸 그런 얘길 듣다 보니 옷차림도 점점 그렇게 됐다.

그렇게 점점 더 나는 나이들어 보이게 됐다. 반대로 신랑은 얼굴 자체도 동안인데, 갓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한 남학생처럼 옷을 입고 다닌다. 그렇게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서 더 젊어 보이기만 한다. 

그나마 연애 때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미안한 척이라도 하더니, 결혼하고 나니까 다들 “어머, 그래도 동갑 같고 잘어울리시네요”, ”비슷한 또래 같아 보여서 좋네요” 같은 소리밖에 안 한다. 이제 결혼도 했겠다, 세상은 노안인 사람들을 전혀 1도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 덕분에 아직까지도 어디 가면 20대 후반 같다는 소리를 듣는 동안 신랑은 나랑 다니면 매일매일이 즐거운 모양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희망은 있다! 어릴 때 노안이었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동안이 되고, 동안이던 사람들은 팍삭 늙는다는 세간의 속설이 있으니까. 그 날이 올 때까지 노안을 무시하는 세상 속에서 버텨 볼 생각이다.

하지만 만약 그 속설이 만약 진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나는 70이 되고 80이 되고 100세를 맞이했을 때도 노안이면… 그러면… 그러면… 아… 벌써 뚁땽해..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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