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영업 약탈자들' 신도시 텅빈 상가에는 왜 꼭 망해가는 약국이 있을까?

의사는 '배우'고 각본가는 창업 컨설팅 업체다

  • 박세회
  • 입력 2019.03.22 11:37
  • 수정 2019.03.23 14:13
경기도 시흥시의 상가 건물 외벽에 약국을 모집하는 홍보 펼침막이 걸려있다.
경기도 시흥시의 상가 건물 외벽에 약국을 모집하는 홍보 펼침막이 걸려있다. ⓒ한겨레

편집자주>한국은 사실상 세계 1위 자영업 국가다. 대략 한해 100만여명이 새로 창업하고, 80만여명이 폐업한다. 고용 규모로 보면 대기업 몇곳이 매년 생겼다 사라지는 셈이다. 이 거대한 창업 시장의 회로를 돌리는 ‘신흥 엔진’이 ‘창업컨설팅’이란 이름의 산업으로 존재한다. ‘권리금’이라는 연료를 태워 돌아가는 이 신흥 엔진은 자영업자들의 소박한 꿈과 정직한 땀마저 함께 갈아넣어 삼켜버린다. 자영업자에게 기생해 번성하는 컨설팅의 세계를 3차례에 걸쳐 깊이 들어가본다.

‘약국 확정 병원 특별 지원’

경기 남부권의 한 새도시, 반듯하게 구획된 대로 사이로 아직은 황량한 건물들이 노려보듯 서 있다. 외벽에는 뜻을 알듯 말듯 한 문장이 쓰인 펼침막이 펄럭인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어가 물었다. “병원 특별 지원이 무슨 뜻이죠?” “병원이 들어온다는 얘기죠. 왜 뭐 하시게? 여기 자리 좋아요.” 누가 병원에 특별한 지원을 해준다는 것일까. 건물주일까. ‘약국 확정’은 무슨 말일까.

# 독점 약국이라는 덫

경기도 화성시 남양신도시의 한 상가 건물. 약사 최준식(이하 모두 가명·53)씨는 약국 매물 중개 사이트를 통해 약국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거기서 알게 된 한 약국 창업컨설턴트가 남양신도시 건물을 소개했다.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그리고 정형외과까지 병원 4곳이 입점한다고 했다. 분양값은 7억원으로 비쌌다. 4억원의 ‘병원 지원금’까지 포함하면 모두 11억원으로 같은 층 점포의 최대 4배 수준이었다. 병원 지원금은 병원 입점을 대가로 약국이 내는 일종의 ‘독점 수수료’를 말한다.

최씨는 망설였다. 그때 컨설턴트가 병원과 시행사가 맺은 5년짜리 임대차 계약서를 꺼내들었다. “하루에 180건 이상 처방전이 보장되는 자리 5년 이상 독점 운영은 흔치 않다”며 “세브란스 출신의 유능한 원장이 4, 5층 전체를 자기 병원으로 임대”했음을 강조했다.

컨설턴트는 “이런 자리 없다”며 수수료 1억원을 요구했다. 최씨는 결국 수수료를 4500만원으로 깎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인테리어 비용과 시설비까지 합쳐 약국 개설에 14억원 가까이 들었다. 대출만 10억원 넘게 받았다.

병원 공사는 약국 분양 계약 이후 시작됐다. 최씨가 낸 ‘병원 지원금’ 4억원은 고스란히 병원 인테리어 비용으로 사용됐다. 최씨는 건물주가 병원 입점 조건으로 병원 창업컨설팅 업체에 10억원을 주기로 했단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 ‘의사’라는 이름의 배우

병원을 끌어오고, 약사의 돈을 얹으면 신도시 상가 분양의 ‘판돈’이 만들어진다. 이 판돈을 끌어오는 데 가장 중요한 ‘선수’는 의사다. 의사는 병원 임대차 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배우다. 판돈의 10%를 챙긴다. 10억원짜리 약국이 들어서면 1억원이 의사 몫이다.

병원 특별 지원 건물의 공통된 특징은 주 출입구 옆 점포 자리다. 그 자리는 ‘독점 약국 자리’다. ‘독점’의 의미는 두 가지다. 우선 분양값이 시세의 몇 배다. 그리고 병원 지원금을 따로 내야 한다. 지원금에도 차등이 있다. 처방전이 잘 나오는 내과·소아과·이비인후과는 1억~1억5천만원, 나머지 과들은 5천만원 수준이다.

의사의 무대가 되는 병원은 배우가 ‘캐스팅’되기 전에 약사의 돈으로 굴러간다. ‘자영업계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전문직 자영업자가 신도시 상가 분양의 불쏘시개로 전락한 셈이다. 건물주로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병원 입점 결정은 다른 점포 분양가를 끌어올린다. 보통 평당 200만~300만원 이상 높아진다. 병원이 들어선다고 해야, 식당 자리가 팔리고 카페 자리가 팔린다. 병원에 다닐 유동인구를 반영해 분양값이 부풀려진다. 약사의, 식당 주인의, 피시방 사장의 돈이 건물주를 거쳐 병원 창업컨설팅 업체로 흘러들어간다.

ⓒ한겨레

#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친 의사

“약국 ‘눈탱이’ 쳐서 병원 짓는 거죠.” 최씨 약국 인근의 신축 건물을 분양하고 있는 분양업자가 말했다. 최씨는 사기를 당했다. 계약서와는 달리 진료실은 3개뿐이었고, 병원 개원 날짜는 지켜지지 않았다.

항의하자 바로 분양금액을 5천만원 낮춰 계약서를 다시 써줬다. 병원 인테리어는 형편없었다. 새 병원에 어울리지 않는 중고 병상과 안내데스크가 전부였다. 의료기기는 없었고, 개원한다는 원장 얼굴은 좀체 보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최씨는 뜻밖의 장소에서 병원 원장을 발견했다. 김진수(60대) 원장은 남양신도시에서 40여㎞ 떨어진 시흥시 배곧신도시에서 다른 병원을 개원하고 있었다. 현행 법률상 의사는 병원 한 곳만 운영할 수 있다.

김 원장은 태연했다. “여기 왜 왔냐, 뭐 대수냐”고 했다. 김 원장은 남양신도시 병원 이름이 바뀐 것조차 알지 못했다. 적반하장이었다. 사실상 협박조로 “내가 당신한테 직접 돈 받은 건 없지 않으냐. 나는 계약대로 개업만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 줄줄이 피해 보는 자영업자들

“명색이 세브란스 출신 의사인데, 멱살 잡혀 끌려다니는 기분을 아십니까?” <한겨레>와 만난 김 원장은 억울해했다. “병원 인테리어 공사비를 제때 내지 못하게 되면서 인테리어 업체 요청으로 여기저기 임대차 계약서에 사인만 해준 것”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컨설팅 업체가 캐스팅한 배우였다. 본인도 답답하다고 했다. 컨설팅 업체는 그에게 “일단 명의만 빌려주면, 다른 상가 분양 끝내고 나중에 의사를 따로 구하겠다”고 했다. 의사는 끝내 구해지지 않았다.

사기를 깨달은 최씨는 약국 폐업을 결정하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병원 입점 약속을 믿고 비싼 임대료를 내고 들어온 편의점 주인은 다른 상가 인부들에게 쌍화탕과 커피를 팔며 버티고 있다.

병원 입점 약속에 식당을 차린 사장님은 아예 “병원은 안 들어온다”고 단념했다. 약국 계약 조건에 맞춰 병원 입점 흉내를 내던 분양팀과 컨설턴트는 떴다방 영업이 끝나자 모두 사라지고 다른 분양팀이 들어왔다.

# 또 하나의 반전

하나의 반전이 더 있다. 김 원장의 개원을 기다리는 병원이 또 있었다. 경기도 용인 역북지구의 한 신축 건물도 김 원장 명의로 병원 임대차 계약이 돼 있었다. 개원을 앞둔 화성 남양신도시와 50㎞ 떨어진 곳이다. 그 병원 역시 지난해 11월 말에 개원할 예정이었는데, 이달 말까지 개원이 늦춰진 상태다. 그 건물의 다른 점포 역시 병원 입점을 조건으로 분양됐다.

김 원장처럼 병원 분양에 가담하는 의사는 주로 신용불량자나 70대 이상 노인, 빚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물 입지가 좋고 상가가 안정화되어 실제로 병원을 운영할 의사가 잘 구해지면 문제가 없지만, 공급 초과 상태로 개발된 경기 남부권 새도시들의 경우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의사를 못 구하면 문제가 줄줄이 터질 수밖에 없다. 최근 분양하는 대부분의 수도권 새도시가 이런 실정이라고 분양업자들은 말한다.

# CGV, 스타벅스 그다음 병원

새도시 건물 분양에서 무상 임대료 혜택까지 받으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던 것은 씨지브이(CGV) 등 프랜차이즈 극장이었다. 극장은 유동인구의 보증수표다. 극장 입점 확정은 다른 점포 분양을 촉진한다.

스크린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그 자리를 ‘스타벅스’ 등 다른 유명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이어받았다. 스타벅스마저 점포 확장에 한계가 생기자 병원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김 원장처럼 명의를 빌려줘 병원을 설립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건 불법이다. 약사 출신인 우종식 변호사(법무법인 규원)는 “의사 면허를 빌려주는 행위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고, 약사에게 처방전 등을 대가로 금품을 받는 행위도 약사법 위반”이라며 “다른 자영업자들에게 병원이 들어올 것처럼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기죄까지 해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폐업한 화성 남양신도시 약국 앞에서 김완 기자가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폐업한 화성 남양신도시 약국 앞에서 김완 기자가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자영업자 위에 컨설팅

이렇게 세 곳의 신도시에서 유령 병원을 통한 건물 분양의 판을 계획하고 설계한 것은 병원 컨설팅을 겸하는 한 병원 전문 인테리어 업체였다. 이들은 아직 분양되지 않은 새도시 신축 건물을 노렸다.

시행사와 건물주한테 접근해 ‘건물 2~4개 층에 병원을 입점시킬 테니 지원금을 달라’고 제안했다. 시행사와 건물주는 병원이 입점할 경우 분양값이 높아지고 다른 점포 분양률도 높아지게 되니 이런 제안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판을 설계한 병원 창업컨설팅 업체는 지금도 ‘이비인후과·소아과 전문의 입점확정 2019년 2월 개원 예정’이라고 광고 중이다. 이미 인테리어가 완료된 병원 사진을 내걸고 ‘인테리어 비용 필요 없이 새 병원을 운영하실 원장님’을 기다린다.

사실상의 ‘사무장 병원’ 아래 또 다른 약사가 먹잇감이 될 것이고, 다른 자영업자들은 부풀려진 분양값에 신음할 것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자영업자 위에 창업컨설팅 회사가 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사기 #의사 #자영업 #신도시 #약사 #창업컨설팅업체 #사회 이슈